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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Jan 09. 2024

머리카락을 버리고 싶다

무쓸모의 쓸모

내 주변에 있는 사람 중 미용실에 안 가는 사람은 나랑 언니, 그리고 ㅇㅇ이(친구)뿐이야.


동생은 말하며 덧붙였다. ㅇㅇ이는 엄마가 미용사셔서 안가는 것이고 본인은 앞머리 때문에라도 가끔 가지만 언니는 진짜 너무하다고.






맞다. 스무살 때부터 줄곧 긴 파마머리였던 나는 한벙 파마하면 참 오래도 유지되어 미용실에 많이 가봐야 일년에 한 번 갔더랬다. 스무살 때부터 1-2년에 한 번씩 동네 미용실에서 3만원 정도 주고 펌을 했고 그때마다, 아니 그때만 커트를 했다. 돈을 주고 커트만을 한 기억은 스무살 이후 단 두 번뿐이다. 한번은 고깃집에서 불을 붙이다 긴 머리에 불이 붙어서 어쩔 수 없이 잘랐다. 미용사는 머리가 고데기에 타서 온 사람은 많았어도 진짜 불에 타서 온 사람은 처음이라며 웃어도 되냐고 물었다. 또 한번은 코로나가 막 시작되던 2020년에 집에서 아이 머리를 잘라주다 엄마 머리도 잘라도 되냐는 말에 아이에게 가위를 내주었다. 아이가 숭덩숭덩 자른 머리길이를 맞추기 위해 하는 수 없이 미용실에 가서 길이만 맞춰 잘랐다. 그게 미용실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다.


나는 아이의 머리를, 아이는 내 머리를 서로 잘라주었다



처음이 어렵지 두번은 쉬웠다. 머리가 좀 길다 싶을 때마다 혼자 문구용 가위로 머리를 잘랐다. 머리숱이 많아도 머리를 곱게 빗고 한 움큼씩 잡아 가위질을 하다보면 가위질 열 번 내로 모든 머리를 자를 수 있게 된다. 머리길이를 어깨선 이상으로 유지하는 편인데다 반곱슬이라 그렇게 잘라도 그렇게 자른 티가 별로 나지 않았다. 펌은 당연히 안했다. 2019년이 마지막이었던가. 기억조차 없다. 필요한 날엔 다이슨 에어랩으로 머리를 말아주면 되니 필요성을 못 느낀다. 염색은 원래 안 했다. 웨딩촬영할 당시 염색하고 오라는 말에 했다가 뿌리 염색을 해야할 시기가 왔을 때 다시 검은 머리로 덮어버린, 딱 두 번의 염색 경험이 평생의 전부이다.






머리에 대한 시간 및 비용 투자가 이정도 수준이니 애를 하나 더 낳은 23년엔 가위질조차 시도하지 못했다. 집 좀 치워보려는 마음이 들어 이것저것 버리고나니(버릴 게 또 쌓이고 또 보이지만), 좀 달리며 나에 대해 관심을 갖다보니 어느덧 등을 덮은 긴 머리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또 잘라야겠다 싶어 가위를 들었다가 하게 된 맥시멀리스트다운 생각.


아까운데?



버리지 못하고 쓰일 때와 쓰일 곳이 분명 있을 거라며 쌓아둔 물건은 여기서 시작된 것이었다. '아깝다'는 생각. 그냥 버리면 쓰레기이고, 나중에 필요해서 또 사게 되면 돈 낭비이자 자원 낭비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많이도 쌓아뒀다. 실제로 팔아 돈이 된 것도 많고 누군가에게 주어 도움이 된 것도 많다(아직 그 차례를 기다리는 짐들도 많다는 게 문제지만). 그런데 머리카락은 아까워도 어쩌겠는가. 버려야지. 버리지 못하는 게 문젠데 하다하다 머리카락도 아까워해서 못 버리다니 참나.



그러다 문득 기억났다. 암환자를 위해 머리카락을 기부할 수 있다는 것. 몇 번이고 하고 싶었지만 머리카락 상태가 좋지 않아서, 혹은 길이가 적당치 않아서, 염색이나 펌을 했기에 하지 못했던 그 일을 이번에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카락도 충분히 길었고, 다음 달 둘째 돌이 지난 뒤에 자를 예정이므로 아마 더 자랄 것이니 문제없다. 염색이나 펌도 안 한지 오래(너무 오래) 되었고 최근 일년은 출근도 하지 않아 다이슨 사용도 적어서 머릿결도 나쁘지 않다. 게다가 요즘엔 염색했거나 펌을 했어도 기부를 받는다는 안내를 보았으니 여러모로 안심이다. 비단결은 아니어도 쓸모가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어머나 운동본부 캡쳐







정리를 하다보니 아깝다고 생각하며 궁상맞게 군 스스로가 답답하고 그러면서도 정리가 되지 않아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날들이 많다. 완전히(그런 날이 올까) 정리하지 못하였기에 그런 마음이 여전히 든다. 그러나 생각해본다. 장자가 말했듯 아주 쓸모없어 보이는 것도 어딘가엔 쓸모가 있다. 그렇다면 나도 내마음에 마뜩찮아서 그렇지 생각보다좀 쓸모있는 존재이지 않을까.



적어도 필요한 것만 하려고 노력을 하는 스스로를 조금 더 높이 쳐주고 싶다. 그렇게 좀 오냐오냐 해주면 더 힘을 내서 멈췄던 정리를 다시 할 수 있지 않을까. 비우면 비울수록 자신을 기특하게 생각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좀 더 열심히 비움을 실천하지 않을까. 그러다보면 어느샌가엔 마음에 드는 공간에서 마음에 드는 모습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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