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데자뷔 (Déjà Vu)

[증언의 세대] 아마겟돈으로 모으다

by 아반


31번 구역 낡은 공장


낡은 건물,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곳,

다섯 명은 건물 구석, 숙소로 쓰는 빈방 옆 조그마한 창고, 갈라진 벽 뒤에서 숨을 죽이고 있다.


어슴푸레 어둠이 내려앉으려는 이른 저녁,


이따금 고함 소리와 경적 소리가 들리고, 서치라이트 불빛이 어둠을 이리저리 갈라놓고 있다.


네다섯 명의 군인들이 건물 바깥을 수색하고 있다.


누군가 지나간 듯한 살짝 끌린 흔적을 발견한 군인은 이내 건물의 내부를 서치라이트로 비춰 본다.


갈라진 벽 틈 사이로 스며든 불빛이 살갗을 스쳐 지나간다.


의문의 작은 방,

숨소리조차 귓가에 울리는 것 같은 공포가 온몸을 얼어붙게 한다.


"저벅, 저벅"


군인이 방 쪽으로 걸어온다.


모두들 바닥에 엎드려 눈을 질끈 감고 있다.

속으로 간절히 기적을 바라는 기도를 한다.


군인이 문고리를 툭툭 건드려 본다.

그리고 발로 문을 살짝 밀어 본다.


"삐이익- 턱" 문이 무언가에 걸렸다.


시간이 멈춘 것 같다.


더스틴의 짧은 한숨이 새어 나온다.

"하- 여기까지다."


그때 번쩍!

섬광이 번쩍인다.


군인도 흠칫 놀라 건물의 깨진 창문 바깥 하늘을 살펴본다.


잠시 후 "우르릉 쾅!"

천둥이 친다.


잔뜩 흐렸던 마른하늘에 벼락이 내리치고 천둥에 땅이 흔들린다.

곧 "후드득" 굵은 빗줄기가 떨어진다.


"삐익, 삑, 삑-"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퇴각 신호다.


군인은 밀리지 않는 문을 한번 "쾅!" 발로 걷어차고는 뒷걸음질 치면서 되돌아간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문틈 사이로 뒤돌아서는 순간까지 서치라이트를 비추어 본다.


건물 밖으로 나간 군인들은 곧 차에 올라타고 그곳을 떠난다.


지붕의 틈 사이에서 빗방울이 한 방울씩 맺힌다.


벽에 기대어 죽은 듯 서 있었던 더스틴의 입김이 하얗게 피어오른다.

이내 작은 흐느낌이 들린다.

그들은 서로서로 부둥켜안고 소리 없는 울음을 터뜨린다.


시간이 흘러 어둠이 완전히 주위에 깔린 후

로버트는 건물 바깥으로 나가 큰길로 이어지는 길목 끝까지 살펴본다.


"갔어요."

"여기는 수색이 끝난 것 같아요."


더스틴과 로버트 부부 그리고 70대 모건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더스틴은 건물 한편에 구겨진 듯 버려져 있던 넓은 천막으로 건물의 깨진 창문을 가린다.


그리고 낡은 페인트 통을 가져와 옆면에 구멍을 뚫고 흩어진 잔가지와 쓰다 남은 목재 그리고 오래된 신문지 뭉치를 구겨 넣어 사무실 책상 서랍에서 찾은 성냥으로 불을 붙인다.


따뜻한 온기가 페인트 통 주위를 맴돌고


반쯤 닫힌 페인트 통에서 나오는 붉은빛에 얼굴이 따뜻하게 변하고 등뒤에는 커다란 그림자가 일렁거린다.


더스틴은 붉은 불빛을 응시하면서 도망치느라 지친 피로가 몰려오면서 스르르 눈이 감긴다.




고개를 드니 아침이다.

여자들이 먼저 일어나 매트를 정리해 놨다.

불이 다 피어서 재 속에 붉은 불빛만 남아 있다.

아침 햇살이 가려진 천막의 갈라진 틈 사이로 새어 들어오고 있다.

모건이 밤새 몸이 곱아서 웅크리고 있다.

아침에 먹을 게 없다.

어제 받아 놓은 물을 끓이기 위해 붉은 재속에 잔가지를 집어넣고 부서진 판자 조각으로 부채질을 한다.

빨간빛이 살아나더니 화염이 인다. 신문지를 좀 더 넣고 긁은 각목 쪼가리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물 끓이는 코펠에 물을 붓고는 페인트 통의 열린 부분에 끼워 넣는다.

바라보는 물은 끓지 않는데 바닥에서 기포가 올라온다.

어제 먹은 종이컵을 씻어 뒀다.

로버트가 아침 일찍 일어나 주위를 둘러봤다.

다행히 수도에서 물이 나온다.

얼마 간은 여기서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커피를 끓여서 아침 대신 먹는다.

종이컵에 담긴 커피에서 김이 피어오른다.

얼마 되지 않는 커피를 아껴서 츄릅츄릅 먹는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장이 움틀거린다.








배경음악 : 비지스의 홀리데이 (19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