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인턴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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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대략 오후 10시경 병원에 혼자 있다.
젊은 엄마와 5살쯤 되어 보이는 예쁜 어린 여자 아이가 잡종 강아지를 데리고 병원에 들어온다.
"우리 아이가 길 잃은 강아지를 데리고 왔어요. 병원에서 맡아 주실 수 있나요?"
"동물병원은 보호 센터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우리 애를 봐서 부탁드립니다."
여자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이 간절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다.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이다.
(저 예쁜 여자 아이를 실망시킬 수가 없다. 정말 인형같이 생겼다)
"네 그럼 이번만 특별히 맡아 드리겠습니다."
강아지, 아니 지금부터 개를 입원 철장에 넣고 당직실에 들어가 눈을 붙인다.
다음날 아침 11시.
원장이 병원에 들어온다.
입원실에 개가 한 마리 있는 걸 보고 화색이 돈다.
"오~ 입원받았져~?"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원장의 안색이 변한다.
폭언을 하며 (빤스. 똥구멍 등등으로 나를 부른다) 화를 낸다.
다른 수의사 선생님 앞에서 나를 "이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놈"이라고 부른다.
"이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놈"이라는 소리에 참을 수가 없다.
내가 왜 이 개 때문에 그런 소리까지 들어야 해.
원래 집 없는 떠돌이 개, 그냥 병원 밖에 내보내면 그만이지.
홧김에 개를 병원 문 밖으로 내놓고 돌아선다.
병원 대기 의자에 앉았다. 씩씩~ 분이 났다.
잠시 후 그 개가 걱정되기 시작한다.
병원 문을 열고 두리번 거린다.
아니, 저건...!
8차선 대로 한가운데 개가 오도 가도 못하고 있고 차들이 멈춰 서고 있었다.
개를 구해야 해.
개를 잡으러 차들을 손으로 막으며 차도 한가운데로 달렸다.
그런데 놀란 개가 잡히질 않는다
잠시 후
8차선 대로를 개와 함께 이리저리 달리고 있다.
이러다 차에 치일 것만 같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개가 골목길로 달아난다.
오르막길이다.
개가 지쳤다.
헥헥거리더니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고 그대로 서있다.
개는 마냥 달릴 줄 알았는데 개도 지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개를 안고 나니 학교 정문 앞에 있다.
개를 안고 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구석 벤치에 앉았다.
얘를 데리고 다시 병원으로 갈 수는 없다.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같은 동네에서 동물병원을 하는 여자 선배 병원이 생각났다.
그래 그곳에 가면 얘를 맡아 줄지도 몰라.
개를 데리고 동네 여선배네 동물병원에 갔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개를 맡아 줄 수 있는지 물어본다.
안된단다.
갑자기 설움이 북받쳐 오른다.
선배한테 신세 한탄을 한다.
열악한 환경에 언어폭력에 시달리고 있습니다.(빤스, 똥구멍)
동정심을 자극해 본다.
안된단다.
실패다.
병원을 나와 길을 걷다 보니 파출소가 보인다.
파출소라면 개를 받아줄까?
수의사인걸 숨기고 개를 길에서 주웠다고 개를 맡아줄 수 있는지 물어본다.
안된단다.
동물병원에 가보란다.
아무도 받아주질 않는다.
놀이터 그네에 앉아 있다.
애들 몇 명이 뛰어놀고 있고 노숙자가 대낮부터 취해 벤치에 누워있다.
혹시나 해코지할까 멀찍이 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한다.
하는 수 없이 개를 데리고 다시 병원에 돌아왔다.
원장이 열심히 돈을 벌고 있다.
어떤 보호자가 원장이 참 열심히라며 칭찬을 한다.
지금 생각하면
나보다도 더 불쌍했을 그 개의 심정을 헤아렸어야 했는데...
다음날 그 개는 보호소 직원이 데리고 갔다.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수의사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