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의 세대] : 피로 변한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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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찰구를 지나 플랫폼이 있는 아래층 계단으로 내려간다.
마침, 역내로 열차가 진입하려 하고 있다.
열차의 도착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들린다.
더스틴은 발걸음을 서두른다.
계단의 맨 아래 단에 다다랐을 때,
열차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사이를 뚫고 지나가려고 몸을 모로 세우고
이리저리 비켜 나아간다.
열차 안에는 사람들이 많이 내려서 빈자리가 듬성듬성 있다.
문 옆, 철제 난간이 있는 제일 끝자리에 앉았다.
바로 뒤이어 풍채가 좋은 몸집이 큰 사내가 옆자리에 앉는다.
몸을 최대한 기둥 쪽으로 붙여서 자리를 내어 준다.
문이 닫히고 열차가 출발한다.
잔잔하게 덜컹거리며 흔들리는 열차의 움직임에 따라 몸이 좌우로 흔들린다.
이른 출근길의 고단함이 묻어 있는 서 있는 사람들도 열차의 진동에 몸이 좌우로 흔들린다.
점퍼를 입은 남자가 모자를 눌러쓰고 손잡이에 매달려 손잡이를 잡은 한쪽 팔에 머리를 괴고 있다.
지난달에는 내내 비가 오고 날씨가 고르지 않았다.
다행히 이번 달에는 날씨가 나쁘지 않다.
겨울이 오기 전까지 최대한 많이 일할 수 있을 때 일해야 한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현장 반장이 내일도 일찍 오라고 언질을 줬다.
여기서 겨울 전까지 3개월 이상 버텨야 한다.
흔들리는 열차의 흔들의자에 깜박 고개가 숙여진다.
그렇게 아침 일찍부터 작업 현장에 도착했다.
하루하루 경기가 곤두박질친다.
작업반장이 전화기 너머 관계자와 실랑이를 한다.
"뭘 넣어줘야 일을 하지."
"안된다니까"
"내일까지 이대로면 철수해야 해."
"이게 몇 번째야?"
바라보는 우리에게 일하라고 손짓을 하고 뒤돌아 선다.
소리가 점점 작아져서 그다음은 들리지 않았다.
휴식시간에 노동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수당 받았어?"
"이대로 가면 힘들 수 있어."
"기다리다 다 죽어."
"여기서 그만 손 떼고 다른 데 알아보는 게 좋아"
못 받은 임금이 얼마 되지 않지만 아쉬운 금액이다.
저녁 뉴스에 00 건설회사가 최종 부도 처리되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는 뉴스가 나온다.
"어머 저기 자기 일하는 건설사 아니야?"
받지 못한 돈이 눈앞에 어른거려 내일까지 기다릴 수가 없다.
작업반장에게 연신 전화를 돌려본다.
수화기 너머 신호음이 멈추질 않는다.
다음날 아침도 거르고 일찍 현장으로 달려간다.
공사장에 가보니 임금을 떼인 노동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고,
예비입주자들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건설사 대표를 만나게 해 달라고 아우성이다.
00 건설 현장은 폐쇄됐고 건설사는 최종 부도 처리됐다.
현장 감독에게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
속이 쓰려온다.
막막했다.
첫 달 빼고 임금을 받지 못했다.
찬바람이 귓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다.
건설사 현장 사무소의 임금 체불 확인서에 사인을 하고
실낱같은 희망을 남겨본다.
정처 없이 걷는다.
도로 양쪽의 상가들이 반 넘게 문을 닫았다.
아니 여기서부터는 전멸이다.
폐업 임대가 나붙었고 어지러운 집기들이 쇼윈도 너머로 보인다.
3일째 집에서 누워만 있다.
아침 햇살이 방안에 들어와 문쪽에서 벽장 쪽까지 완주를 하면 어둠이 밀려온다.
라면 먹은 냄비가 싱크대 위에 쌓여 간다.
뉴스에 나오는 경제 상황은 더 심각하다.
매일 아침 새벽 신문에 나오는 헤드라인에 가슴이 두근대던 IMF때가 떠오른다.
그날은 택시 기사가
대한민국이 망했어요. 이게 말이 돼요?
라고 되물었던 날이었다.
조금씩 조금씩 그날의 기운이 다가와 숨통을 옥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