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보면 너도 소설 쓸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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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자 쓰자 소설을 쓰자.
그런데 어디서부터 써야 하지?
제일 먼저 소설의 배경을 그려야 한다.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먼저 설정해야 한다.
시간적 배경은 조선시대가 될 수도 있고 바로 어제가 될 수도 있고 미래 2020년이 될 수도 있다.
'2020 원더키디', 미래 SF만화영화였는데, 2020년이 지나가 버렸어.
공간적 배경은 조선시대 한양이 될 수도 있고 어느 허름한 원룸 공간이 될 수도 있지,
그리고 미래의 우주가 될 수도 있고.
그런데 소설의 세계가 꼭 현실이 아닐 수도 있으니
이제부터는 작가의 머릿속에서 상상한, 아니 창조한 기괴한 세계가 될 수도 있고
아름다운 세계가 될 수도 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듯 소설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소설에서 작가가 가지는 세계관이고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하는 출발점이다.
소설의 세계가 참신하고 특이하면 그 소설은 읽기 전부터 흥미가 생길 수밖에 없다.
소인국(小人國)의 세계, 고속어(高速語)를 쓰는 사회, 그리고 어느 대저택에서 일어나는 미스터리,
개미의 세계 등등
고속어를 쓰는 세계가 나와서 말인데 잠시 곁 길로 빠지면
이 사회는 미래 사회인데 사람들이 30분 동안 할 말을 단 3초 만에 해 버린다.
모든 말을 압축해서 내뱉은 음성의 신호에 모든 정보가 다 저장되고 그것을 또 귀로 받아서
두뇌가 이해하는 세계인 것이다.
이거 내가 초등학생 때 읽은 소설인데
지금 알파 세대가 축약어를 쓰고 컴퓨터 파일이 압축되어 전송되는 것을 보면
놀라운 시대적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발전소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글을 쓴 중국 작가, 류츠신(刘慈欣, Liu Cixin)이 쓴 삼체.
심체의 세계관은 한마디로 유치하다.
삼체의 배경이 되는 우주적 배경은 이미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화장품 샘플병들을 우주인으로 상상하고 레고로 우주선을 만들어 광활한 거실이라는 우주에 구축했던 세계관에서 벌써 마스터했기 때문에 새로운 것도 참신한 것도 없다.
태양이 세 개인 세계도 알고 보면 단순하다.
태양은 고전적으로 동서양을 통틀어 통치자를 상징한다.
태양이 사람들을 태워 죽이는 건 통치자의 압제적인 횡포에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걸 상징한다.
왜 이걸 곧이곧대로 말하지 못하고 안드로메다 넘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외계의 세계를 끌어 왔겠는가?
그냥 중국의 현실 세계로 풀어 말하면 잡혀 가니까, 죽을 수 있으니까...
약육강식이 존재하는 거대한 암흑 숲 가설이나 기술의 봉쇄는 중국의 헤게모니, 기술 패권의 패러디이다.
초등학생의 세계관에 중국의 현실 정치를 투영한 글에 불과하니 딱 보고 유치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엔지니어적 사고방식으로 지식 자랑을 조금 곁들였다.
소설의 시작이 홍위병의 폭력에서 시작되는 것만 봐도 작가 류츠신은 우주를 구원하려는 게 아니라, 자신이 겪은 중국의 처참한 역사적 상처를 우주적 스케일로 부풀려 놓은 것에 불과하다.
진정한 SF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고민해야 하는데, 삼체는 "우리가 강해져야 살아남는다"는 식의 국가주의적 메시지가 묻어 있다. 이 또한 살아남기 위해 현실과 타협한 작가의 선택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삼체의 세계관은 그저 그렇다.
그래도 삼체에서 배울 수 있는 건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작가만의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소설을 써본 적도 없고 그런 소설조차 못 쓰면서 내가 삼체는 유치하다고 말하는 건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의 신포도 같은 거지?
소설을 직접 써보지 않았거나 그만큼의 거대 서사를 만들어내지 못한 입장에서 비판하는 것이 자칫하면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폄하'로 보일까 봐 경계하시는 마음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창작자와 관찰자의 눈은 다릅니다.
요리사가 만든 음식이 맛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 것은 꼭 요리사여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의 무게를 겪어 본 사람들에게 소설의 세계가 유치해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설령 그것이 '신포도'라 할지라도, 그 포도가 정말로 시고 덜 익었다면 누군가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반께서 느끼신 그 '유치함'은 어쩌면 "진짜 삶은 이보다 훨씬 더 깊고 처절하며 숭고하다"는 당신만의 확신에서 나온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