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열심히 사는 사람인 줄 알았다. (1화)
나는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다.
하고 싶은 것을 모른채.
2024년 1월, 찬 바람이 많이 부는 겨울이었다.
나는 퇴사를 하고 모아뒀던 돈으로 잠시 동안 수원의 원룸에서 쉬며 지냈다.
길거리가 얼어 있었을 때가 많아서 밖에 자주 나가지 않았고, 집 앞의 편의점에서 소주 한병을 사와 저녁 식사를 하며 시간을 보냈던 때가 많았다.
그곳에서부터 차를 타고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에이바우트라고 하는 커피숍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 날씨가 따뜻해질 무렵, 그곳에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 먹으며 지금까지 내가 달려 왔던 길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지금까지 너무 열심히는 달려 왔지만, 내가 정작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지금까지 내가 온 이 길이 맞았던 걸까?'
나는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다.
'진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의미 없는 부지런함은 퇴사 후의 나에게 허무함만 안겨줄 뿐이었다.
퇴사했던 회사에서 예전에 일본인 부장님께서 하셨던 말이 떠올랐다.
"유빈은 5년 뒤, 혹은 10년 뒤에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아? 생각해 본적 있어?"
이번에 되서야 이 부분에 대해 곰곰히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었다면, 2024년 여름~가을 즈음에 베트남 주재원으로 넘어가 있었을 것이고,
평소 베트남 문화와 베트남 사람들을 좋아하던 나로서는 거기에 눌러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퇴사한 이 시점부터 내 인생은 어떻게 바뀔까.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다
나는 반 정도 남은 커피를 마시며 곰곰히 생각했다.
내가 회사에서 기술영업직을 하며 무엇이 힘들었는지, 무엇이 즐거웠고 재밌었는지.
첫번째로, 사무실에 앉아 있는 환경이 나에겐 맞지 않았다.
턱 막힌 사무실 공간에서 조그마한 노트북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던 것은 때때로 지루하기도 하고,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었던 때도 있었다.
메일과 Teams로 일을 하는 것보다, 자료를 준비하여 영업용 차량을 직접 운전하여 고객사에 찾아가서 담당자 분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얼굴을 맞대고 논의하는 것이 더 즐거웠고, 보람찬 일이었다.
그렇기에 평소 자주 외근을 나가지 않았던 부서 내 분위기 속에서도, 나는 최대한 고객사 쪽과 대면 약속을 잡기 위해 회사 분들에게 양해를 구하곤 했었다.
두번째로, 제품 결함이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품질 관련 부서와 회의를 하며 원인을 찾는 것이 재밌었다.
때로는 품질 부서를 돕기 위해 현미경이나, 외관 검사를 직접 하기도 했었고, 신뢰성 평가 등의 결과를 해석하기도 했었다.
결함이 발생했던 당시 상황과 고객사의 신뢰성 평가 조건 등 전반적인 환경 등을 미루어보아 여러 근거들을 가지고 최종적으로 '원인이 OO이다.'라고 밝혀질 때, 그래서 고객사에서도 납득을 했을 때의 쾌감은 이로 말할 수 없었다.
내가 공대에서 하던 프로젝트들이 이런 맥락과 비슷했다. 원인을 찾아내기 위한 끊임없는 분석.
그래서 그랬었던건가? 일본인 부장님께서 '유빈은 품질 보증쪽에 성향이 조금 더 맞아보이는데..'라는 말씀을 한번 했던 기억이 난다.
세번째로, 이건 회사에서 자주 있었던 일은 아니었지만, 출장 갔을 때의 이야기이다.
해외로 출장 갈 때마다 보았던 비행기들. 그 비행기는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사실 회사를 다니기 전부터, 대학교 1학년 국제선 비행기를 처음 탔을 당시부터 나는 이미 비행기라는 것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저 큰 고철 덩어리가 고작 2개의 엔진으로 하늘을 자유롭게 난다는게 참 신기했기 때문이었다.
공항 게이트에서 비행기를 기다릴 때마다, 저 멀리서 비행기들이 착륙하는 모습은 마치 백조가 날개를 펴고 물에 사뿐히 앉는 모습처럼 보였다.
하지만 비행기는 단순히 나에게는 그저 멋있는 대상일 뿐이었고, 대학 전공도 달랐고 졸업 후 하던 일도 다른 분야였기에, 그 쪽으로 일을 가지거나 공부를 해보려고는 생각조차 안하고 있었다.
나는 조금 더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위에서 첫번째로 얘기했던 것처럼 바깥 체질이었다면, 내가 일본 홋카이도에서 일하고 있었을 때에도 똑같이 바깥 체질이었던가?
그랬다. 사무실에서 CAD 설계를 하고 있을 때보다, 시공 현장이나 농기계 정비공장에서 일하는게 더 즐거웠고 시간도 잘 갔다.
특히 농기계나 농업시설 설비들을 공구로 조립하거나 분해하고, 기계에 문제가 생겨서 가동이 안될 때 원인을 찾아서 부품들을 갈아끼우거나 고치는 것들에 대한 재미를 그 때 처음 느꼈다.
내가 모르던 부품들에 대해서는 이 부품의 역할이나, 수리 방법, 가격, 교체 주기, 조립 및 분해 방법을 선배들이 알려주곤 했었는데, 배워가는 즐거움이 있었다.
인생 제3막 시작
그 날, 커피를 다 마시고 근처 동탄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대학교 때 평균 학점 4.4로 졸업했던 화공과의 미친 괴물 동기와 함께 만나서 저녁을 먹었다.
(이 친구는 지금 현재 건축쪽 설계 부서에 있다.)
내가 얘기했다.
"OO아, 생각을 해보면 기계는 참 복잡하면서도 단순하다고 생각하는게, 항상 문제가 발생하면 그 원인은 내부에 있잖아.
예를 들어서 자동차라고 친다면, 냄새나는 흰 매연이 나온다면, 엔진오일을 심하게 안 갈았다던지, 엔진 오일이 연료랑 같이 타고 있다던지 하는 그런 원인들이 딱딱 있고.
기계는 배신을 안하는게 장점인거 같다.
자동차가 오늘 자기 기분 나쁘다고 갑자기 흰 매연을 내뿜거나 그러지는 않잖아."
그러자 그 친구가 웃으면서 얘기한다.
"그거 딱 메카닉 마인드인데? ㅋㅋ"
그렇게 동탄에서 친구와 헤어지고, 수원의 원룸으로 돌아왔다.
집에 들어와서 침대에 누워서 또 곰곰히 생각해봤다.
'그렇다면 나에게 적성에 맞는 것은 현장 + 공구 + 기계 라는 것이고,
그 중에서도 내가 미칠 정도로 좋아했던건 비행기...'
여러분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가?
새로운 인생 제3막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고양시에 위치한 한국항공대로 찾아갔다.
다음 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