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대학을 또 다시 들어가다

나는 내가 열심히 사는 사람인 줄 알았다. (2화)

by 임유빈

처음으로 마주했던 항공대의 모습은 신선했다.


캠퍼스 정문 바로 앞에는 헬기들이 날라다니는 활주로가 한 곳 있었고, 그 옆으로는 경의중앙선 전철이 다니고 있었다.


정문을 통해 캠퍼스로 들어가보니 저 멀리 대한항공 비행기가 한 대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정말 거대하네.
이 비행기도 예전에 하늘을 수 없이 날아다녔겠지?'


지금은 잠들어 있는 이 거대한 비행기는 지금 보잉과 여객기 시장을 다투고 있는 에어버스의 초기 모델 A300B4로, 에어버스를 크게 성장하게 만들어 준 모델이기도 하다.


항공대 에어버스 A300 내부 (2024년)



듣보잡 비행기 제작사와 한 개발도상국 항공사의 인연


당시 보잉이 여객기 시장을 장악하던 당시였고, 신생 비행기 제작사였던 에어버스는 유럽에서조차도 인기가 없을 정도로 힘을 못 쓰고 있었다.

에어 프랑스 외의 다른 항공사들은 해당 기종을 신경도 안 쓸 정도로 판매량은 저조했다.


그 때, 대한항공에서 갑자기 해당 기종을 4대 주문했었고, 성능에 만족한 대한항공은 36대를 추가 주문하면서, 세계에서 A300B4를 가장 많이 운용하는 항공사가 되어 버렸고, 에어버스 역시 당시의 폭주하는 물량 주문으로 인하여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여객기 시장을 거의 독점하던 보잉에게 에어버스는 대항마로서 덩치를 키워가기 시작했다.


이 후, 신생의 무명 회사였던 에어버스는 A330, A320시리즈에 이어, 세상에서 가장 큰 2층 점보 여객기인 A380까지 생산하며, 현재는 보잉의 독점 체계였던 여객기 시장을 양분할 정도로 큰 기업이 되었다.

(* 참고 : A380 기종은 이코노미 클래스 단일로 좌석을 꾸겨 넣을 경우 최대 800명까지 탑승 가능한 거대한 항공기이다.)


당시 개발 도상국이었던 한 동아시아의 항공사와 무명 신생 비행기 제작사의 인연이,

현재는 대한항공을 전 세계에서도 인정 받는 항공사로 성장하게 만들어주었고, 또한 에어버스를 보잉에 대항할 수 있는 제작사로 만들어주었다.


항공대에 위치한 대한항공 A300 (2024년)



대학에 또 다시 입학하다.


나는 거대한 A300 항공기의 풍채에 넋이 나갔지만, 이내 상담 약속 시간까지 얼마 안남았기에 대학교 건물로 들어갔다. 건물의 계단을 올라 한 방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내가 오늘 상담을 받기 위한 것은 '항공정비 대학'에 관한 건이었다.


내부에 있는 회의실에서 대기하고 있으니, 얼마 안되어 안경을 쓰신 교수님께서 들어오셨다.

"유빈 씨는 일본어가 유창할테니 국내 면장을 따는 것보다는, 해외로 나갈 생각을 하는게 좋을 것 같아요.
미국 쪽의 항공정비 면허인 FAA A&P 자격증을 따면, 우리나라 항공 법규만 시험보면 국내 면장으로도 전환이 가능하니까 나중에 한국에 돌아오더라도 문제는 없을거에요."


면장이란, 곧 기술 분야에서의 면허를 의미한다.


항공정비사 면장은 우리나라에서는 국토 교통부 인정 교육 기간에서 2,100시간 이론 및 실습 교육을 받아야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고, 따라서 수많은 2년제 전문대학이나 직업전문학교에 다녀야 한다.

물론 충분한 몇 년동안의 경력이 있으면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고는 하지만.. 애초에 항공정비 분야는 다른 분야와는 다르게 '면장이 없이는 채용을 안하는 시스템'이다보니, 실질적으로 공군 정비 경력이 없는 상황에서는, 학교에 다녀 교육을 받고 시험을 보는 방법밖에는 없다.


국내 항공정비사 면장을 따게 되면, 국내의 여러 항공사에서 일할 수 있지만, 면장을 땄다는 그 자체만으로는 해외에서 인정되지 않으며, 국내 면장을 가지고 3년 정도 일을 해야 미국 면장을 시험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하지만 미국 면장을 따게 되면 국내에 돌아오거나 일본으로 넘어갈 때, 그 나라 법만 시험보고 합격하면 바로 전환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고, 싱가폴부터 시작해서 해외의 여러 나라까지 진출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기에, 나는 미국 대학을 알아보는 쪽으로 결정했다.

(미국 대학 역시 약 1,900시간 정도의 교육을 이수해야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그 중에서도 12개월 간 온라인 이론 수업을 진행하고, 남은 8개월 동안 미국 현지에서 실습하며,

면장 시험을 볼 수 있는 할 수 있는 학교가 한 군데 있었고, 일하며 돈을 벌며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생활비를 절약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기에, 그 학교에 등록하기로 했다.

(한국인 국제 학생을 위한 장학금 혜택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학교가 100년 가까이 된 전통 있는 학교였고, 세계대전 당시에는 비행기까지 만들었던 제작 회사였다.)


어짜피 나는 항공정비 면장을 따는 것이 목적이었고, 이미 한국 대학교의 공학 학사가 있기에,

굳이 유명한 대학에 비싼 학비를 들여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여 거들떠도 안봤다. (무엇보다 거긴 학비만 1억은 훌쩍 넘어간다..)

내가 들어간 곳은 그래도 가성비가 좀 괜찮은 대학이었다.


신 학기는 3월 말부터 시작이었기에, 입학 절차를 조금 서둘러 진행했던 기억이 난다.


얼마 안되어, 내가 그동안 모았던 퇴직금 등을 쓸어 넣고, 마침내 학교에 입학 허가를 받게 되었다.


항공대 학식 (2024년)



자고 있던 어느 날 아침, 누군가 집 문을 두드린다.

"UPS에서 왔는데, 본인 맞으시죠?"

잠에서 덜 깬 상태로 이게 뭔가 하고 보니, 미국 대학에서 온라인 수업 들으라고 Lenovo 노트북과 계산기 등을 보내주었던 것이었다.


노트북을 꺼내서 전원을 켜보니, 학교 로고가 박혀 있는 화면과 함께 Student라는 이름으로 로그인되었다.

배터리 용량이 거의 없어서, 충전기를 찾아봤는데 아뿔싸.

'아 미국은 우리나라랑 코드 방식이 다르지..'

노트북을 조용히 덮고, 쿠팡에서 돼지코를 하나 주문했다.


썼던 노트북은 생각보다 사양이 심각하게 떨어졌기에 실망했다. SSD 용량은 81gb 짜리였고,

책과 자료를 몇개 넣으면 금방 용량 없음 어쩌고 떴기에 USB를 별도로 들고 다녔다.

CPU 또한 저가형이었기에 PDF 교재에 마우스로 밑줄이라도 그으면 바로 응답 없음이 뜨는 수준이었다.

'이럴거면 그냥 정해진 금액 한도 내에서 내가 노트북 고를 수 있게 해주지.. 참..'


학교에서 바다 건너 넘어온 노트북 (2024년 2월)


그래도 주는거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새 학기가 시작하기만을 기다렸다.


인생 제3막 시작.





다음 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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