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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유빈 Jul 19. 2024

3화 : 처음 해봤던 학원 강사 생활

내가 일본에 취업했던 이유 (3화)


연고도 없던 천안에서의 생활


학원에서는 초등학교 고학년 + 중학교 1,2,3학년을 담당하였는데,

중2,3 친구들은 고등학교 화학1,2까지 공부하던 엘리트 친구들이었다.


첫 수업에서 보았던 초등학교 친구들은 말수도 적고 (소심해서 그런걸까), 잘 웃지 않는 모습이었다.

최대한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눈높이에 맞추려고 했다.

가끔씩 던진 농담들, 그리고 수업하다 지루해보이면 잡지식들도 얘기해주고. '이건 너네들이 예상못할걸?' 같은 퀴즈도 내주고. 그리고 정답을 알면 눈이 똥그래지며 신기해하는 모습들이 너무 귀여웠다.


어느 날은 어떤 아이가 초등학생 답지 않게 아재 드립을 치길래,

"뭐야 80년대 '깔깔 유모아'에서나 볼 법한 개그인데?" 라고 얘기하니, 주위 아이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깔깔'이라는 말이 너무 재밌다더라.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수업에 더욱 더 힘이 되었다.


중학교 친구들은 사춘기 시즌답지 않게 의젓한 모습이었고, 장난끼가 많은 친구들이었다.

그 중 아직도 기억나는 친구는 중1반의 남자 아이 한 명이었는데, 궁금한게 너무 많아서 수업 도중에도 항상 질문을 수도없이 했던 아이였다. 지금은 뭐하고 지낼까 궁금하다. 잘 지내겠지?


학원 강사 생활 당시 내 판서 모습 (2020년)
학원 수업 준비 당시 (2020년)

퇴근을 기다리던 냉면


고시텔과 학원 사이에는 족발집이 하나 있었다.

그곳에는 냉면도 따로 팔고 있어, 냉면을 좋아했던 나는 밤 11시 퇴근 후 항상 냉면 하나를 포장해서 고시텔에 가져와서 먹곤 했었다.

자주 먹다 보니 사장님도 퇴근 시간 맞춰서 미리 포장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퇴근 후 냉면과 함께 했던 일본어 공부.

그리고 공부가 끝나고는 일본 외무성 사이트에 들어가서, 외무대신 (우리나라로 치면 외교부장관이다.) 기자회견과 대사관 공지를 계속 보곤 했다.


당시 거의 매일 포장해서 먹었던 냉면 (2020년)


처음엔 코로나 입국 금지 방침 변동 사항을 체크하기 위해 들어갔는데,

매일 보다보니 일본 외무대신이 다른 국가와 회담 했던 내용들, ODA 정책 (주로 동남아에 많이 한다.) 등 꽤 많은 정보들이 보였다.

그래서 일본어 실력도 쌓을 겸, 매일 올라오던 외무성 공지를 한국어로 번역해보는 연습도 했었다.



굳게 잠겨 있던 일본의 문이 서서히


그렇게 몇 개월이 흘렀을까, 일본도 기업인의 비지니스 목적의 왕래를 허용하는 등, 걸어잠군 방문을 슬슬 여는 분위기였다. 이대로라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될 시기.

학원에는 정말 아쉽지만 그만두겠다고 말씀 드렸다.


내가 그만두기 하루 전날 원장선생님께서 소고기를 사주셨고, 같이 술 한잔 했다.

원장선생님께서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초등학교 애기들이요. 웃지도 않고 말도 안하던 애들이었는데, 선생님 오시고 나서 애들이 밝아졌어요.'


원장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 한 마디가 보람을 느끼게 해주더라.


학원 강사 생활이 끝나는 마지막 날, 마지막 타임이었던 중학교 2학년 친구들을 데리고 치킨을 사 먹였다.

그동안 못했던 얘기들을 다 하고,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다 주려고 하는데, 아이들이 이렇게 얘기한다.

'선생님 집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괜찮다는걸 한 5번은 얘기해서 거절하고, 시간도 시간인만큼 아이들 택시태워 보냈다.

기분이 참 묘하더라. 얼마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벌써 아이들과 정이 들었나보다.


(사실 예전에도 아이들이 몇번 선생님 집에 놀러가도 되냐고 물어봤었다.

맘같아선 초대하고 싶었지만, 좁은 그 고시텔에 사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진 않았다.

그 땐 고시텔에 사는 것조차 아이들이 몰랐으니까.)



일본 입국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 길지 않았던 첫 학원 강사 생활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왔지만, 오히려 아이들로부터 내가 배웠던 것들도 많았다.

바로 생각치도 못했던 아이들의 상상력, 그리고 순수함.


그리고 원장 선생님께도 배웠던 것들이 많았다.

핵심만 찝어 요점만 빠르게 전달하시는 요약력, 어떨 때는 카리스마로, 또 어떨때는 다정함으로 아이들을 대하시는 모습.


나는 천안에서의 생활을 막을 내리고,

다시 고향에 내려와 이젠 진짜 일본 갈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다.


고시텔에서 당시 아이들 시험 채점하던 중에



다음 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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