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본에 취업했던 이유 (4화)
2020년 10월, 내정을 받고 1년 1개월이 지난 시점,
재류자격이 있는 외국인에 대하여 입국을 일시적으로 허용하겠다는 일본 외무성 입장이 나왔다.
이 시기를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에 회사에 바로 메일로 연락을 넣었다.
회사와 얘기해서, 입국 일자를 빠르게 잡고, 대사관에서 비자가 새겨진 내 여권을 받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긴장이 풀린 나머지, 생전 걸리지도 않던 감기에 걸린 모양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입국 전날 PCR 검사를 해보니 코로나는 아니었다.)
잘 있어 한국
2020년 10월 23일 금요일.
드디어 텅텅 빈 적막 속의 인천공항에서 일본행 비행기를 타고 넘어갔다.
(그 땐 정말 사람이 없었다. 마치 유령도시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옆 자리에는 어머니 뻘 되는 분이 앉으셨는데, 내가 아침을 먹고 오지 않은 탓에 기내식을 빨리 해치우는 모습을 보셨던건지. 젊을 때 많이 먹어야 된다고, 기내식 자기 것 하나 더 주시더라.
원래대로라면 홋카이도에 위치한 치토세 공항으로 들어가야 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일본에서는 나리타, 간사이, 후쿠오카 3군데의 주요 공항만 문을 열어놓았기에,
나리타 공항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당시 일본에 들어가는 모든 입국대상자들은 14일 간 호텔 격리를 의무적으로 해야 했었다.
감사하게도 회사에서 나리타 공항 근처에 있는 호텔 방과 조식을 예약해주었고,
그곳에서 2주 간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호텔 격리 생활 시작
호텔 밖을 나갈 수가 없다보니, 격리자들이 전부 호텔 내에 하나 있던 편의점에서 점심 저녁 식사를 사갔다. 그래서 미리 도시락이나 오니기리를 사놓지 않으면 다 팔리고 없기 십상이었다.
호텔에는 사방팔방에서 입국한 외국인들이 다 모여있다 보니,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호텔 내에서 할 게 없으니, 가지고 온 노트북으로 일본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당시 '사슴남자 (鹿男あをによし)' 라고 하는 드라마를 봤었다.)
밤에는 욕조에 들어가 따뜻한 물을 받아놓고, 킨들 전자책으로 일본 원서를 읽었다.
호텔 복도의 창문 밖으로는 약 15,000㎢ 면적에 해당하는 관동 평야 (関東平野)가 보였었고,
높은 산 없이 저 멀리 지평선이 보이는 진풍경은 볼 때마다 신기했다.
(우리나라 경기도 + 서울 면적을 다 합친것보다 넓은 면적이라고 하더라.)
호텔은 나리타 공항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에,
호텔 방에서 멍 때리고 있으면, 저 멀리 창밖으로 비행기가 날라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호텔에서 한국인을 처음 만났다.
1주일이 지나도 한국인이 하도 안 보이다보니, 처음엔 '나 혼자 온건가?' 생각이 들었다.
나랑 같은 비행기에 타고 왔던 그 많은 한국인들은 다른 호텔에서 격리중인건가? 싶었다.
어느 날 호텔 세탁실에서 세탁을 하며 기다렸던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나 포함 세명이 세탁실에 있었다. 한 친구가 나에게 한국어로 말을 건낸다.
'한국인이시죠?'
아 한국인이 있었구나. 굉장히 반가웠다. 그걸 들은 옆에 있던 다른 사람도 말을 건넸다.
알고보니 세명 다 한국인.
나에게 말을 걸었던 친구는 당시 토호쿠대학 (東北大学, 일본에서 도쿄대와 함께 1위, 2위를 다투는 명문 대학이다.)에 재학중인 친구였고, 다른 한 분은 나와 똑같이 일본에 취업하였던 한 형이었다.
그렇게 세 명이서 얘기를 주고 받고, 함께 편의점에 도시락을 사러 가기도 했었다.
서로가 자가 격리 중이었기에 쉽게 만나서 얘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같은 땅에서 자라고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함께 도시락 사러 가는 그 시간에 잠깐이나마 나누는 말들이 큰 힘이 되었다.
우리 세명은 지금도 라인이나 인스타그램으로 가끔씩 서로 연락을 주고 받고 있다.
당시 토호쿠대학에 다니던 친구는 동 대학원에 진학하였고, 4년이 지난 지금 현재 취업 준비중이라는 연락을 받았고, 일본에 취업하기 위해 왔던 형은 같은 회사에서 프로그래밍으로 일을 계속 하고 있다.
그렇게 2주 간의 자가격리가 끝나고,
이제는 국내선을 타고 저 먼 홋카이도로 떠날 날이 되었다.
다음 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