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삶은 대확행!

프랑스, 그후의 이야기

by 전윤혜


나는 그해 겨울 초입 칸에 도착했다. 지중해의 겨울은 그리 춥지 않아 얇은 니트만 걸쳐도 충분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모아둔 돈을 다 쓰고 돌아온 니콜라스는 직업도, 차도, 모터바이크도 없었다. 그의 친구가 처음 프랑스에 온 나를 위해 한 달 동안 모터바이크를 빌려줬다. 남프랑스 골짜기의 작은 마을들을 구경하고 니스와 모나코를 달렸다. 겨울이 되자 새조니에(saisonnier, 특정 시즌에만 일하는 노동자 개념. 프랑스는 여름과 겨울 휴가가 길어 이를 상대하는 일이 발달했다.)인 니콜라스는 겨울엔 알프스 별장 마을에서 일을 했다. 우리는 산속 부자 별장 사이에 낀 작은 통나무집에서 겨울을 보냈다. 1,000미터가 넘는 고도. 뜨는 해가 강렬하고 구름이 오래 머물렀다. 집집마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반짝였으며 마을 거리엔 짤랑짤랑 마차가 지났다.


알프스 므제브.jpg 스위스와 가까운 알프스 마을 므제브(Megève). ⓒ Yoonhye Jeon

산의 눈이 녹아갈 무렵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졌다. 마크롱(Emanuel Macron) 대통령이 “우리는 지금 (바이러스와) 전쟁 중입니다.” 하며 전국민 이동제한을 선포한 날, 다시 칸으로 내려와 그로부터 두 달 동안 꼼짝없이 집에서만 머물렀다. 말이 이동제한이지 전국민 자가격리였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었던 니콜라스 할머니조차 해본 적 없던 세기의 경험이었다.


밖으로 바이러스가 나도는 동안 나는 방 안에 틀어박혀 책을 썼다. 계획했던 파리 여행은 무산됐다. 해가 강해지며 여름이 되었다. 이동제한이 풀린 뒤에도 간접적 이동제한이 이어졌다. 점진적으로 상점과 레스토랑, 카페가 오픈했지만 호텔들은 문을 열지 못했다. 호텔이 멈추니 니콜라스도 일이 없었다. 호텔 영업 금지령이 풀린 7월 초로부터 보름이 지나고도 그에게는 별다른 소식이 오지 않았다. 몇몇 호텔은 아예 문을 닫고 리노베이션에 들어갔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그때 니콜라스의 또 다른 친구가 모터바이크를 빌려줬다. 한 달을 여행했다. 한여름 남프랑스의 해와 바다는 반짝였다. 거리두기로 테라스 테이블이 많아져 운치는 더 좋았다. 겨우내 모은 돈을 조금씩 꺼내 썼다. 가방과 신발을 안 사니 살아졌다. 바다에 가서 수영하는 덴 돈이 안 들었다. 파도 없는 지중해에 잔잔히 누워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앙티브 곶(Cap d'Antibes). ⓒ Yoonhye Jeon

새 계획을 세워야 했다. 백수로 살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파리 여행을 하려고 모아둔 돈을 발견했다. 니콜라스가 프로젝트 노트(니콜라스가 인생 계획을 세우는 커다란 노트. 오스트레일리아 프로젝트, 사우스이스트에이시아 프로젝트, 한국어 프로젝트, 프랑스-코리아 모터바이크 프로젝트 등이 적혀 있다.)를 꺼냈다. 그리고 ‘Motorbike’ 하고 썼다.


“우리, 이 돈으로 모터바이크를 사는 건 어때?”


가끔 친구들이 “칸에서 사는 건 괜찮아? 파리를 그렇게 가고 싶어 했잖아.” 하고 물었다. “최고의 휴가 중이야! 남프랑스 날씨와 여유는 말로 다 못하네.”하고 대답하곤 했다. 저금 통장을 깨던 날 나는 나에게 물었다.


“괜찮아?”


파리로 갔다면 어땠을까? 니콜라스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계획대로 호주에서 프랑스 파리로 넘어갔겠지. 그렇지만 겨우 정착했을 때쯤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지고, 북프랑스의 겨울 봄 우울한 날씨를 혼자 좁은 방에서 견뎌야 했을 것이다. 결국엔 일을 할 수 없으니 살인적인 물가를 감당하지 못해 조기 귀국했겠지. 아니, 혹여 더 아름다운 일들이 펼쳐졌다 하더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책의 모든 이야기들이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


막연히 해보고 싶던 일을 버리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택했다. 파리가 제 몸을 희생해 모터바이크가 되었다. 프랑스판 중고나라를 뒤져 혼다의 2001년식 1,000cc 바라데로(Varadero)를 샀다. 굉장히 낡은 모델이지만 인터넷으로 새 부품을 주문해 하나씩 바꿔나갔다. 점화 플러그와 브레이크를 갈고 녹슨 파이프를 닦고 칠하고 USB 포트를 심었다. 옆집 아저씨에게 30유로를 주고 낡은 사이드백을 샀다. 짐을 채워 떠났다. 로맨틱한 생폴드방스와 앙티브, 니스와 모나코. 해안을 따라, 남알프스 험산을 넘어 이탈리아로 달리기도 했다. 고흐가 살던 아를과 이민자들의 천국이 된 마르세유를 지나고 베르동협곡의 실같은 도로를 달리면서 나는, 내가 이러려고 칸에 왔구나, 깨달았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남알프스 국경. 콜 들 라 롬바르드르(Col de la Lombarde) ⓒ Yoonhye Jeon

서른. 호주에 살면서 알게 됐다. 아무 데나 누워 해만 쬐더라도 하루가 충분히 의미 있고, 그 충만한 여유에서 오는 기쁨이 나를 만든다는 사실을. 서른하나에 시작한 여행에서 이제 나는 무엇이 마음을 여유롭게 만드는지, 내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차츰 알아갔다. 소울메이트를 바라던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사람을 만나 여행하면서, 철저하게 본인답게 살던 그와 함께 하면서, 인생이란 ‘내가 바라는 모습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진짜 ‘나답게 살아야 하는 것’이구나, 깨달았다. 서른둘의 프랑스에서는 사람의 삶의 모양이 이토록 다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남의 나라를 다닐수록 나의 선입견과 관점이 무너지고 바뀌고 새로워졌다. 남의 나라에서 살며 그들의 삶이 만든 광경들을 보았다. 작은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모르던 산과 바다와 그것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보았다. 그런 것들을 마주할 때마다 삶은 소확행, 보다 대확행으로 가득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대단해서 확실한 행복이랄까. 시드니로 떠나게 만들었던 어렴풋하던 기분, 뭔진 잘 모르겠지만 이대로 멈춘다면 평생을 후회하며 살 것 같았던 그 기분이 맞았다. 이 세상엔 정말 볼 것이 많았다. 그냥 살다 죽기엔 아깝구나. 이 지구라는 별과 사람과 삶의 모습 모든 다름이, 그걸 모르고 살다 가기엔 아깝구나.


그러니까, 나는 계속해서 여행을 할 것이다. 아니, 우리는 계속해서 여행을 할 것이다.







그동안 니콜라스와 윤혜의 동남아 여행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의 응원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저는 프랑스에서 건강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니콜라스와 함께여서 더욱 행복하고요. 프랑스는 다니면 다닐수록 정말 아름답고도 복 받은 나라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만간 프랑스 여행기로 다시 돌아올게요. 아마 이 에필로그의 확장편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두들 건강하세요!


* 메인 사진은 베르동 협곡(Goerge de Verdon)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우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짧은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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