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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다루는 작지만 즉각적인 전환

by 헤스티아

불안은 우리가 지구에서 살아가는 동안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다.

보통 나의 의식적 통제를 넘어가는 상태이기 때문에.


나는 20년 이상의 명상, 10년의 태극권 수련을 통해 불안을 다루는 방식을 오랫동안 훈련해와서,

스스로는 불안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불안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불안을 다루는 방법을 알아서 불안 앞에 공포를 느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이미 여러 글에서 다루어와서, 이 글에서는 아주 간단한 방법 하나만을 더 소개한다.


바로 불안이란 단어로부터 우리의 주도권을 되찾는 것이다.



그 주도권은 불안의 실체를 나누어서 정의해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불안을 뭉뚱그려서 대하면 답을 찾기가 훨씬 어렵다.


내가 명상과 태극권을 통해서 몸과 마음을 의식적으로 다루는 훈련을 오래하다보니,

내게는 자연스러운데 사람들이 잘 구별하지 않은 지점이 보였다.

불안을 말할 때마다 불안의 정의를 구별하는 것이다.



불안은 몸에 작용하는 신경계 불안과 삶의 통과의례로 작용하는 존재형 불안이 있다.


신경계 불안은 생존을 위한 불안이다.

사실이든 아니든, 신경계는 지금 이 상황을 몸에 대한 위협으로 감지하고 경보를 울린다는 것이다.

에너지가 몸 안에서 소진되고 갇힌다.


존재형 불안은 창조로 이어지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우리가 삶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선, 알을 깨고 나가기 직전의 불안이고,

이건 영원한 제거가 불가능하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우리 삶은 우리를 조금이라도 나은 단계로 이끌어내려 한다.

그 과정이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가 느끼기엔 고통스럽거나 폭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어쩌겠나.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내 삶이 그렇게 이끈다.



이렇게 불안의 실체를 알고나면, 나의 몸과 마음의 주도권을 찾기 위한 작업을 꾸준히 해야한다.


나의 몸을 바라보고 마음을 바라보는 의식적 작용을 꾸준히 하는게 도움이 된다.

평소에 몸과 마음의 주도권을 구체적으로 되찾겠다는 자세,

그리고 존재형 불안은 그냥 삶에 껴있는 공기 같은것으로 생각하고,

일단은 없애는 것이 아니라, 다루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해준다.


사실 이 과정이 마냥 쉽지만은 않고, 좌절과 어려움도 많기 때문에

중간에 진짜 신경계 불안의 신체 증상은 신뢰할만한 의료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런게 아니라 존재형 불안이라면,

이 단어에 대한 주도권을 되찾고 내가 다룰 수 있는 근력을 조금씩 키워나가야 한다.

그게 내 삶에 대한 예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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