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 말하는 명상은 나의 마음을 메타적으로 들여다보는 단계의 마음 챙김 명상에는 해당되지 않을 것이다. 이 때는 스스로 혼자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마음 챙김 명상이라는 건, 사실 특별한 방법이 정해져 있지 않다. 정확한 자세의 가부좌를 할 수 있으면 그 자세가 장시간 유지할 때 오히려 허리 부담을 줄여주기 때문에 가부좌를 권하는데, 자세가 틀어져서 오히려 무리가 간다면 가급적 흐트러지지 않은 상태로 편안한 자세를 유지하기만 해도 된다.
그리고 관심을 외부로부터 내면으로 돌릴 수만 있다면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 외부자극으로부터 관심을 내면으로 돌리는 게 쉽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시작할 때 들이쉬고 내쉬는 숨을 바라본다든지, 숫자를 센다든지, 내 몸의 한 지점을 바라본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시작하라고 권한다. 익숙해지면 생략 가능한 과정들이다.
우리는 살면서 어지간하면 외부의 기대, 외부에서의 보상, 외부 환경 등 외부의 조건들에 둘러싸여 판단을 한다. 그렇기에 이런 것들을 좀 떼어내고 나를 중심에 놓고 생각해 보라는 게 마음 챙김 명상이다. 나는 요즘 조금 더 넓은 의미로 이런 행위를 리듬정렬 과정이라고 표현한다. 나의 중심에 돌아가고 그에 맞는 삶의 꼴에 가까워지면 몸과 마음이 동시에 편안해진다. 이런 리듬을 찾을 때까지 나를 중심에 두고 메타적으로 질문을 던져보는 과정들, 당연히 필요하다.
참고로, 그 과정에서 잡생각이 많이 일어나고 집중이 잘 안 되는 것. 이것마저도 원래 자연스러운 과정이니까, 잡생각이 일어나서 잘 안된다고 스트레스 받을 필요 없다. 그냥 지금 이 순간 잡생각이 일어나는구나.. 알아차리고 가급적 다시 한번 집중을 시도해 보면 된다. 이걸 여러 번 시도하다 보면 점점 잡생각은 줄어들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들이 늘어난다. 이런 정도의 리듬 정렬, 혹은 마음 챙김 명상은 얼마든지 혼자 해도 된다. 아니, 일단은 혼자 하는 게 맞다.
그런데 이렇게 고요히 앉아서 몰입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면, 내면에너지가 특정 임계치에 도달할 때마다 어떤 반응들이 일어나게 된다. 단순히 하얀빛을 간헐적으로 보는 정도라면,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알아차리고 내려놓으며 계속 자기 내면 탐구를 해도 되는데, 그 이상으로 스스로 생각해도 '신기하다' 싶은 체험을 하게 되면 가급적 그때부터는 신뢰할만한 스승을 찾기 바란다. 만약 부득이하게 신뢰할만한 스승을 찾을 수 없다면, 나의 명상 스승으로부터 10년 동안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가르침을 하나 내려놓겠다.
"체험은 다 과정일 뿐이니 내려놓아라."
그렇다.
하물며 스승 밑에서 수련을 할 때도, 제일 많이 듣는 이야기가 이거다.
명상 수련하면서 수많은 신기한 체험을 하고, 살짝은 기대에 부풀어, 살짝은 자랑삼아 스승께 확인을 받을 때마다 스승의 반응은 대부분 내가 미리 예측할 수 있을 정도였다.
"오오... 좋은 경험 했네~자, 내려놓고 계속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내면 반응이 시작되면 스승이 필요하다.
스승에게 구해야 할 것은 답이 아니라 점검이다. 다른 글에서 위험한 스승을 피하거나, 위험한 수련이 되지 않기 위한 이야기들을 할 텐데, 일단 기본적으로 스승을 절대시 하고 그로부터 모든 답을 구하려는 태도가 위험한 수련으로 이끌 수 있다. 그러므로 명상 스승이라 할지라도, 스승은 수행 코치, 안내자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때 스승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 내 체험이 지금 어느 지점에 있는지
. 의미 있는 체험인지, 내려놓아야 할 체험인지,
. 지금의 수련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를 함께 살피는 것이다.
(그래서 진짜 스승은 상하관계, 복종, 믿음을 강요하지 않고, 제자의 독립적인 성장을 지원한다.)
나의 스승이 대부분의 내 명상 반응에 '내려놓고 계속해라'라고 하지만, 나는 전혀 신경 안 쓰지만 의외로 중요한 반응 같은 건 방향을 다시 잡아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지도해 주셨다.
특히, 수련에서는 작은 방향이 미세하게 잘못된 채로 누적되면 나중에 엉뚱한 곳에 도달하기 쉽다.
하긴, 뭐 수련뿐이랴.
운동해본 사람들은 다 안다.
혼자 운동할 때, 아주 미세하게 자세가 잘못되었더라도
누군가가 언급해주지 않고 그 자세를 꾸준히 유지하면
어느 순간 자세가 많이 틀어져있거나, 운동을 잘못하고 있게 된다.
명상도 마찬가지다.
스승은 내 대신 내가 가야 할 길을 가주지도 않고, 답을 주는 절대자도 아니다.
(사실 많은 경우 명상 스승들이 답을 쥐고 있다고 할 수도 없고,
드물게 정말로 답에 가까운 것을 쥐고 있는 스승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스승이 답을 쥐고 있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답을 스승에게서 구하려는 태도가 문제다.)
대신, 수시로 나의 명상 방향의 미세한 어긋남을 점검해 주는 역할을 하고,
이게 정말 크게 중요하다.
나는 명상 수행을 에베레스트산처럼 높은 산을 가급적 수직으로 올라야 하는 것으로 비유한다.
(삶에는 수직 비유가 꼭 맞지는 않지만,
명상에서는 내면 진동수를 높이는 과정이 이 비유에 알맞다.)
스승이 정상으로 향하는 큰 방향을 알려주고,
지금 내가 있는 지점이 정상으로 다가가는지, 정상에서 멀어지는지를 수시로 살펴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혼자 하는 내면 체험을 좇다 보면,
샛길로 빠져 산등성이 어딘가 옆길에서 부차적인 것들에 신경이 팔릴 수가 있다.
뭐, 명상의 목표가 산 구석구석 구경하기 (비록 높이 올라가지는 못하더라도)라면,
그 자체를 잘못됨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내가 지금 산의 어느 지점에 있는지도 모른 채,
자신의 신비 체험을 엄청난 것으로 착각한다든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단순 신비 체험으로 자신이 '깨달았다'라고 착각 중이라면,
여기서는 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왕 이번 생에 가장 귀한 자원인 시간을 들여 명상 수행을 하는데,
가급적 내면 에너지의 온전한 통합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