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이 글은 무려 2500년이 넘게 전해오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전제로 한다.
고정된 실체로서의 사람은 없다.
이건 내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이 찰나의 나는, 바로 직후의 나와 다를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 누구든 '저 사람은 이래'라고 고정시키지 말고,
'지금 이 순간 내가 대하는 저 사람은 이러하구나'로 이해해야 한다.
이 말인즉슨.... '저 스승은 안전하다' '저 스승은 위험하다'라고 특정인을 고정해서 지칭할 수 없다는 거다.
다만 내가 지금 대하고 있는 스승의 말, 스승의 행동을 살펴서,
동서고금의 지혜, 나의 체험, 현실에도 상식적으로 부합하는 얘기인지를 보고 내가 받아들일지 아닐지를 구분해야 한다. 이건 다른 글에서 더 다루기로 하고...
다만, 위험한 수련 구조는 있다.
어떤 스승이 그런 수련 구조를 지속적으로 의도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면,
이런 스승은 좀 주의할 필요가 있겠다.
그래서 위험한 수련이 될 수 있는 구조를 말해보겠다.
1. 제자의 성장과 독립을 지원하는지, 제자를 자신의 전능함? 밑에 의존하는 구조로 두는지를 잘 보라.
진짜 스승들은 제자를 위해 멈추는 곳, 제자의 손을 잡고 끌어줘야 하는 지점을 정확히 구분한다
나도 명상 수련을 하면서, '이 지점에서 왜 스승은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가?' 서운한 지점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 지점은 내 몫이며, 이걸 스승이 대신 알려주거나 대신 넘겨주면, 이번 생에 내가 배워야 할 배움의 기회를 스승이 대신 차지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진짜 나를 위한 멈춤인지, 스승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여기서부터는 특별한 수련이니 고액을 내라'는 구조인지를 살펴봐라. 상식적이고 안전한 스승들은 특정 단계라고 해서 멈추며 특별히 알려주는 고액 수련 같은 걸 내세우지 않는다. 또한 진짜 나를 위한 멈춤인지, '내가 부족한 탓' 프레임을 씌우는지를 잘 봐야 한다. 이건 수련자의 몫이기도 해서 다른 글에서 더 풀 수도 있다.
무엇보다 제자가 자신의 과제를 스스로 잘 넘겨 독립하기를 바라지, 자기 조직 아래에 계속 머무르길 바라지 않는다.
2. 기본부터 쌓는 것이 아니라, 명상 과정의 부산물인 특정한 결과를 위해 욕심내는 수련을 피하라.
명상 수련에서 가장 경계하는 부작용 중 하나가 상기되는 것이다.
심하면,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한 의식적 고삐를 놓쳐버리는 것이고 회복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조심하라고 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내가 어떤 순간에도 몸과 마음에 대한 의식적 고삐를 놓지 않는 수련을 기본기를 닦을 때부터 시킨다. 그래서 보통은 단전을 바라보고 단전에서부터 에너지가 각성되라고 한다. 그런데 특정 차크라니, 상단전 등을 일부러 각성시키는 수련은 경우에 따라 위험할 수 있으니, 가급적 기본기를 쌓는 방식을 시도하기 바란다.
3. 명상 스승이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자신의 위치에 열려있는지를 살펴라.
이건 좀 애매하게 각성되다가 만 명상 스승들이 자기가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렀다고 착각하며, 권위를 내세우면서 부작용이 나는데... 이 지점은 사실 스승을 자처하는 사람도 더 멀리 가본 스승의 인연이 없어서 몰라서 저러고 있을 확률이 매우 크다. 문제는 명상 초보자들이 스승의 레벨을 판단하는 건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피아노 같은 경우를 보라.
누군가 쇼팽 콩쿨에서 한 음 치자마자 느껴질 정도로 압도적으로 잘 친다면, 음악을 잘 몰라도 저 사람이 아주 잘 친다는 건 얼추 안다.
그런데 전공자들의 피아노 연주를 일반인들이 들으면,
다들 나보다 잘 치는지는 알겠는데, 누가 어떤 차원에서 더 잘 치는지, 이 연주와 저 연주가 어떻게 다른지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그걸 구분하려면 일반인도 귀가 열릴 만큼 피아노 연주를 많이 들어보고,
잘 친다는 연주, 좋다는 연주의 기준들이 어떤 건지 공부도 해야 한다.
그래서 초보자들은 나의 명상 스승이 어디까지 갔는지를 판단할 수도, 판단할 필요도 없다.
대신 그의 행동을 보라.
이 글을 시작할 때, 어느 누구도 고정된 실체가 없다고 했다.
그 명상 스승이 어떤 체험을 했든, 얼마나 멀리 가봤든,
한 번의 체험, 혹은 임계점 통과만을 가지고 자신이 특정한 정체성을 영원히 획득했다고 생각하는 스승에 대해서는 주의가 필요하다.
스승 역시 매 순간 자신이 중심을 놓칠 수도, 중심을 잡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수행을 계속하는 경우라면, 내가 가르침을 받을 때의 행동만을 기준으로 살피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나의 명상 스승 역시,
"수행에서 일정 임계점을 통과한 후,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실제로 내면에너지 통합이 될수록,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더 에너지를 써야 할 부분들이 많기도 하다.
아무튼, 이상적인 스승이라면 가급적 멀리 가보고,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제자를 이끌어주면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스승의 존재는 극소수인 데다, 그런 스승으로부터 직접 지도를 받을 기회가 모두에게 열려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우리는 현실적으로 내가 배울 수 있는 인연 닿는 스승들로부터,
내가 필요한 만큼, 인연 닿는 만큼 배워가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이, 앞서 말한 대로 고정된 실체로의 스승을 찾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스승의 행동과 가르침이, 동서고금 시대를 살아남은 지혜와 큰 무리가 없는 것이라면 나의 명상 수행 체험과 비교해 가며, 제한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실, 어느 명상이든 어느 접근법이든 말로는 대부분 좋은 말을 한다.
기존 선수행 경전이라든지, 유불선 텍스트들에 들어있는 말들을 가지고 주장을 한다.
다만 그 말들에 대한 해석 차이가 문제다.
거기서 문제가 생긴다.
그 해석은 자신들의 경험치 수준으로 해석을 하게 되고,
때로는 나쁜 의도라 생각들 정도로 왜곡한 해석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애초에 말에 대한 해석 프레임을 넘어서라.
그냥 그 명상 수련법을 주장하는 사람의 행동을 보면 된다.
행동이 구조적으로 동서고금의 지혜와 일치하느냐 여부를 보라.
그리고 일치하는 정도까지 잘 배우고, 모순되는 지점부터는 잘 살펴라.
일시적 모순이면, 스승도 찰나마다 감정에 휩싸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고
그 지점에서는 멈추고 거리를 두면 된다.
지속적으로 위험한 구조라 판단이 들면, 그 스승과의 인연은 정리하고,
또 그다음 단계를 이끌어줄 스승의 인연이 닿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