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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스티아 Oct 03. 2023

2580일을  아침마다 꼬박 태극권 하게 하는 힘

2580일 아침 6시 30분. 어쩌다 태극권, 가족.

우리 태극권 관장님은 새벽잠은 다 그르셨다. 우리  가족이 오기 전엔, 새벽반에 한의사 한 분이 2년 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열심히 수련해서, 그 한 명의 수련생이 있어도 새벽반을 열어야 했다. 그리곤 그분이 태극권을 다 배우고(?) 자습의 길을 택하자, 또 한 명의 회원이 나타났다. 70대 어르신이었는데, 몇 달간 그만둘 듯 말 듯 가늘게 수련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곤 우리 가족과 바통 터치를 했다. 


우리 가족이 수련을 시작할 즈음 그 분과 몇 번 수련 시간이 겹친 적이 있었는데, (우리가 하는 태극권은 개별 진도로 각자 개인 운동을 한다) 길게 함께 하진 않았다. 그리곤 우리 가족이 만 7년을 채우고 이제 8년 째 매일 새벽에 가고 있다. (2580일은 7년이 넘어 8년째 들어섰다는 의미에서 임의로 표현한 것이다.) 그냥 눈 뜨면 출근에 고민 없이 가는 것처럼, 그냥 간다. 어느 날은 비가 좀 많이 온다 싶었더니, 폭우주의보가 내린 날이었다. 그래도 그냥 갔다. (태풍이 오거나 눈이 와서 길이 미끄러운 날은 안간다.)


이쯤 되면, 태극권에 엄청난 열정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난 태극권 시작할 때의 내 모습을 보면, 한 치 앞도 못 보는 내 모습에 웃음이 난다.

 

그 당시 난 수영과 요가를 병행하고 있었다. 수영장에서 요가원까지 걸어 다녔는데 그 사이에 내가 태극권 수련을 시작한 건물이 있었다. 하지만 몇 개월간이나 태극권 수련장이 있는줄 모르고 지나쳤다. 주로 앞만 보며 목적지를 향해 직진하는지라 주위를 둘러볼 일도 별로 없었는데, 어느 날 횡단보도를 기다리며, 건너편 건물을 우연히 올려다봤다. 태극권 수련장 창문에 현수막이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남녀 무술인 모집"


 훗. 난 저곳에 가는 여자 무술인은 어떤 사람일까 싶었다. 막연하게 '무술인'은 엄청나게 그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고, 더욱이 '여자 무술인'은 더욱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 여겼다. 한마디로 나와는 아예 상관 없는 카테고리. 그리고 몇 달 후, (여전히 딱히 무술인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그 곳에서 태극권 수련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 마디 더 보태자면, 그 현수막을 보고도 태극권 수련장인 줄도 몰랐다. 그저 간판에 '태극권요가'라고 붙어있기에, 플라잉요가처럼 좀 특이한 요가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간판 비용을 좀 줄이고자, 같은 층을 쓰고 있던 태극권과 요가를 붙여 써서 그렇게 보인 거였다.) 


그렇게 한 번 스쳐 보낸 지 얼마 후, 당시 수련하던 요가 방식에 변화를 주고 싶어 졌다. (그냥 직관적으로 떠오른 느낌이었는데, 나는 종종 이런 느낌을 따라갈 때 정말 의외의 인연을 만나곤 한다.) 원래 내가 처음 요가를 시작할 때는 호흡과 명상 중심의 요가로 수련을 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선 그런 요가를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대안으로 선택한 요가를 몇 년 간 꾸준히 했다. 이 방식의 요가도 선생님이 친절하고 성실히 잘 지도해 주셨지만, 내 몸이 이제 요가 호흡을 원하고 있었다. 꼭 예전에 내가 했던 방식이 아니더라도 적당한 요가 호흡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았는데, 놀랍게도 내가 지나다녔던 '태극권요가'에 인연이 있었다. 


이 곳 요가 선생님이 내가 처음 요가를 시작했고, 꽤 오래전에 지도자 과정을 거친 곳에서 수련을 하신 분이었다. 나보다 3기수 선배셨는데, 그 분은 꾸준히 요가 지도를 계속 해왔다는 점이 달랐다. (난 개인수련만 해왔기에 지도자로 남을 가르칠 수준은 되지 않는다.) 그런 우연으로 다시 호흡 중심 요가 수련을 하게 되었는데, 바로 앞에 있는 곳이 태극권이었다. 그리고 태극권 관장님과 요가 선생님이 원래 친한 형 동생 사이여서 한 건물에 마주보고 입점해 있었다. (그래서 처음 상담할 때부터 신기한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이건 다음 기회에...)


이렇게 태극권의 존재를 알게 되었지만, 태극권은 그리고 몇 개 월 후에 시작했다. 수영을 계속하는 게 추위를 많이 타는 내게 좋지 않은 것 같아 양생 차원에서, 몸을 더 따뜻하게 하는 운동을 하는게 좋을 것 같아서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관장님 밑에서 배우는 태극권은 양생과 명상 수련에 더 가깝다. (양가 태극권인데 양가로는 세계대회 1위를 하신 분이니 태극권 실력이야 당연히 출중하신 분이다. 그럼에도 관장님이 태극권을 지도하는 궁극적 목적도 명상 수련을 도와주는 것이다.)


움직이는 명상으로서의 태극권 수련을 통해 분노, 공포, 불안을 다룰 줄 알게 되면서 굉장한 자유로움을 느낀다. 사람의 마음은 매 순간 다르기 때문에, 수련을 오래한다 해도 매 순간 어리석음, 분노, 집착에 빠질 수는 있다. 다만 그걸 금방 알아차리고, 나를 컨트롤하기가 쉬워진다는 말이다. 특히 유용한 건 불안, 공포에 대한 내 반응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불안, 공포를 일으키는 상황을 내가 바꿀 수는 없다. 그리고 분노와 달리 불안, 공포는 이미 내 의식으로는 어쩔 수 없는 감정이라는 점에서 다루기가 더 어렵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의식 수준을 넘어서서 훨씬 더 고요한 마음을 언제든 낼 수 있어야 컨트롤이 가능하다. 이 단계는 명상에서도 상당히 깊은 수준의 진척을 요하긴 하지만, 내 삶의 불안, 공포의 반응을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다는 점은 나를 굉장히 자유롭게 만들어 준다. 이 정도 명상의 진척이 없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걱정 속에서 살고 있었을 것 같다.


또 하나 크게 달라진 점은 가족들과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개선된 점이다. 원래 가족들 사이에 크게 문제가 있진 않았는데  다만, 가족이란 관계 속에선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대할 때 쓰는 필터를 걷어내게 된다. 그래서 훨씬 원초적이고 민낯의 나로 서로를 대하다 보니, 자잘한 갈등들은 있게 마련이다. 그 정도 수준이면 건강한 상태인데, 태극권을 시작할 시점엔 서로에 대한 불만이 가득 쌓여있고 늘 화가 나 있었다. (분노조절장애가 의심될 정도의 태도를 보이는 가족 구성원도 있었다. 원래 그렇지 않던 사람이었는데 너무 당황스러울 정도로 변해서 답답했다. 하지만 진짜 원인에 대해선 글 아래에서 밝히겠지만, 태극권 명상 수련을 한참 한 후에 이해하게 되었다.)  처음 1,2년 동안은 함께 매일 운동을 하는 과정도 수시로 지뢰가 터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근원적으로 관계가 바뀌었다. 


사실 가장 큰 원인은 내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도 바뀌었다. 그러자 문제를 일으키던 또 다른 가족도 바뀌었다. 보통 상대를 바꿀 수 없으니 내가 먼저 바뀌어야한다고 한다. 말이 쉽지, 당장 눈 앞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상대를 보면서 먼저 마음을 내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태극권 명상 수련을 하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가족 구성원들이 내가 단절시키고 가둬둔 그림자 에너지들을 대변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열등하고 흉측한 그림자를 끊어내고, 밝고 잘난 에고로 살고자 하는 태도 때문이었다. 그림자 에너지는 자신을 인정해서 온전히 통합할 때까지 문제를 반복해서 일으켰다. 이걸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문제를 일으키는 누군가를 비난하고 그 사람과의 수준에서 문제를 수습하고 나면, 어느 순간 가까운 또 다른 사람이 같은 차원의 문제를 일으키는 걸 겪게 된다.


결국 내면의 나와의 통합은 지금 내가 하는 태극권 명상의 궁극적 목적이다. 처음부터 이걸 의식적으로 알고 시작한 것 같진 않다. 그리고 태극권을 하는 처음 몇 년동안도 이 부분을 제대로 자각한 것 같지는 않다. 다만 그 전에 내가 삶에서 느끼는 나의 근원적 갈증들이 결국 내면의 통합을 요구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던 것이라고 뒤늦게 이해했다. 


내면의 통합을 지향하는 것을 융은 개성화 과정이라 이름 붙였고, 선불교에서는 참나를 찾는 것이라고 한다. 방법과 도달할 수 있는 지점에 대한 지향점은 다를지라도 내면을 통합함으로써 보다 완전한 나, 완전한 삶에 가까워질 것이다. 


내면이 통합되는 지점은 명상 수련의 진척으로 확인받기도 하고, 가족들의 관계가 근원적으로 바뀐다든지, 필요한 정보가 자석처럼 끌려온다든지, 그런 직관이 발달한다든지 등의 삶의 변화로 체험하고 있다. 매일 매일은 별다른 진척이 없는 것 같고, 인생의 많은 숙제들에 대해서 아직 답답한 부분도 많고, 수련의 진척에 따라 또 더 넘어야 할 다른 형태의 과제가 생기기도 하지만, 7년 전과 비교도 안될 정도로 평온하고 윤택한 삶을 살고 있다는게 매일의 힘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수련이 절대 허투루 흘러가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다. 그래서 오늘도 새벽 5시 반 경에 눈을 떠서 태극권 갈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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