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매트릭스를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늘 꿈꿔온 능력이 있습니다. 아마 비슷한 소원을 가진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필요한 능력을 바로 다운로드할 수 있는 것!! 특히, 책을 느리게 보는 편인 저는 언제나 읽고 싶은 책들을 물리적 시간으로 따라잡을 수 없어서 답답해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인공지능이 점점 발달하면서, 불가능한 소망의 완전한 패배를 눈앞에 두고 있네요. 아무리 열심히 읽으려고 한다한들, 인공지능이 긁어와서 요약하는 속도만 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창의성'이란 주제를 붙들고 3000권 이상의 책을 읽었던 10년의 시간이 지금 제게 큰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 같은 게으른 완벽주의자가 스스로에게 확신을 갖는데 말이죠.
그냥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문제의식을 갖고 관련 책들을 찾아 읽으면 몇 가지 효과가 있습니다. 그렇게도 원하던 속독 능력 비슷한 게 생깁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책을 빨리 읽는 능력이라기보다는 그 분야의 다른 책에서도 중복되는 내용을 안심하고 건너뛸 수 있으니 한 책에서 읽어야 할 분량이 줄어드는 효과입니다. 그러니 한 권의 책을 읽는 시간이 점점 줄어듭니다.
또한, 모든 책들을 똑같은 비중으로 보지 않고, 강약을 조절해서 보다 보니 빨리 읽을 수 있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이 관련 주제에서 어떤 맥락의 이야기를 하는지 알다 보니, 흐름을 빠르게 훑는 게 가능합니다. 그런 책들은 빨리 읽을 수 있습니다.
대신 어떤 책들은 여전히 한 줄 한 줄 곱씹어 읽어야 합니다. 제가 상상력 연구에 크게 빚지고 있는 질베르 뒤랑, 바슐라르, 그리고 결이 맞는 미학자들의 이론서 같은 책들은 여전히 그렇습니다. 창조적 원형의 활성과 관련해서 칼 융의 이론을 공부할 때도 한 줄 한 줄 곱씹어 보아야 합니다. 이런 책들은 책의 난해한 한 줄을 경험으로 이해하고, 그 책을 반복해서 읽다 보면 그나마 읽는 시간이 조금씩 빨라지지만 이 책들은 곱씹어 보는데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많은 책을 읽으면서 얻게 된 속독의 능력을, 이런 책들을 곱씹는 시간을 확보하는데 활용하는 것이죠.
비슷한 이야기를 제가 영화 이론 공부 시작할 때 교수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영화는 게으른 완벽주의자가 공부하기 좋은 매체입니다. 역사가 100여 년 조금 넘는 예술 매체이기 때문에, 영화 세계 전체를 대략적으로 훑으며, 전체 지도를 갖추고 공부할 수 있으니까요.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그렇지만 게으른) 사람이 철학이나 문학부터 파기 시작하면, 이번 생에 책을 다 못 읽고 끝이 나겠네요.
저희 교수님이 학부에서 공부하던 시절엔, 영화 관련책이 지금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도서관에서 몇 개의 서가만 차지할 뿐이었다죠. 그래서 교수님은 서가에 꽂힌 책들의 목차를 전부 베껴 쓰셨다네요.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앉아서 그 작업을 했더니, 2주 정도면 책들의 목차를 다 베낄 수 있으셨대요. 그러다 보니 영화 예술에서 다루는 이론들의 맥락 지도가 잡히더랍니다. 아마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굉장히 성글고 작은 영역의 지도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지도를 손에 쥐고 책을 읽기 시작하니, 맥락을 파악할 수 있어 책을 읽는 시간이 빨라졌다지요. 그리고 영화 관련 책들을 보다 보면, 저자들이 반복해서 인용하는 부분들도 많아서 그런 부분들은 다 넘길 수 있으니까 지금은 한 시간에 한 권 보는 게 어렵지 않다고 하시고요.
작은 도서관의 예술 코너에서라면 지금도 시도해 볼 만한 방법일 수 있겠습니다. 저는 영화를 마스터한다는 생각보다, 창의성, 상상력, 예술로 관심사가 확장되어 넘어오다 보니 시도해보지 않았습니다. 한 분야를 진득하게 파고들기에는 창의성이란 개념이 워낙 광범위해서, 경영, 디자인, 광고, 예술 (미학, 문학, 창작 포함) 등을 넘나들며, 그때그때 일어나는 호기심을 채우기에 급급했거든요.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창의성과 예술 분야의 책들을 3000권 이상 읽다 보니, 속독 이상의 효과가 생겼습니다. 제일 좋은 것은 '내'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어디서 찾을지 금방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추천이 꼭 내게 맞는 것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얻으려면, 사실 질문이 정확해야 합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질문을 정확히 하려면, 일단 그 분야를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가능하니까요.
제가 창의성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사람들마다 고유한 잠재력이 있을 텐데 어떻게 하면 그것을 최대한 끌어내며 살 수 있을까를 모색하기 위함입니다. 지난 글에서 '오리지널'을 언급하며 말씀드렸죠. 나의 오리지널함(고유함)을 오리지널 (뛰어난 독창성)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요. 그러려면 내가 하는 일, 내가 지금 진행하는 프로젝트에서 나만의 자료를 빨리 찾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나만의 자료는 나의 취향을 정확히 알 때 찾을 수 있습니다. 3000권 정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정보가 비슷한 맥락에서 분류됩니다. 그런 분류 가운데서 취향도 생겨나더군요. 그리고 이제 내 취향의 자료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지도를 갖게 된 겁니다.
또 하나 부수적으로 따라온 것이 있는데요, 특정한 문제의식을 갖고 책을 읽다 보니 책에 쓰인 문장의 힘을 느끼는 감각이 생긴 것 같습니다. (이건 다독가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감각이겠지만요.) 저자가 급하게 여러 자료를 짜깁기해서 쓴 책은 문장도 날아다닙니다. 저자가 어떤 주제에 대해 자기 인생의 상당한 시간을 들여 경험한 후 적은 문장은 문장에 확신이 있습니다. 자기가 세상에 내놓은 문장을 저자가 뒤에서 온 힘으로 지지하고 받쳐주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 문장을 만날 때면, 단지 문장이 건네주는 새로운 지식이나 주장만 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경험과 시간과 열정까지 건네받는 거지요.
제가 상당히 좋아하는 책 시미즈 가쓰요시 님의 '성공한 사람들의 독서 습관'은 지금도 읽을 때마다 저자의 열정이 묻어납니다.
제가 창의성이란 주제와 관련해서 예술 분야의 책들을 읽다가, 저자가 삶으로 자신의 취향을 받치고 있는 책들을 몇 권 발견했습니다. (물론 그런 책들도 많지만, 10여 년 동안 제 마음에 남아있는 책들입니다.)
미술 분야에서 취향의 열정이 건네지는 문희정 님의 '나는 미술관에 놀러 간다',
음악 분야에서 국악 평론가인 윤중강 님의 평론집들입니다.
(다만, 윤중강 님의 평론집은 공연을 대상으로 한 내용이 많아서, 글 속의 감흥을 제가 다시 감각적으로 경험하지 못한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대신 저자의 국악에 대한 열정만은 그대로 전해집니다.)
이런 책들을 읽을 때면, 책 문장 뒤에 있는 저자의 삶의 열정까지 함께 읽는 것입니다.
AI 시대에, AI보다 빨리 읽으려는 속독의 시도는 이미 부질없습니다.
대신 나만의 취향을 찾고, 삶의 열정이 뒷받침하고 있는 취향의 감각은 AI가 전해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열정을 전달받고, 감각을 열고 읽는 책 읽기가 끝내 어디까지 데려다 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