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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월 moon Mar 12. 2024

싸움의 기술

#부부싸움 #그럼에도결혼을장려합니다

지난 주말, 아이들과 함께 외출했다.

바람도 쏘일 겸, 맛있는 점심도 먹을 겸, 남편이 알아둔 브런치카페로 갔다.

정말 동네에 덩그러니 그 카페만 있었는데, 수영장이 딸리고 개별 파티룸이 있는 이색적인 곳이었다.


주문을 하고 나서 바로 결제를 하지 않은 채, 메뉴를 골라만 둔 상태라는 걸 20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요즘에는 앉은자리에서 주문을 하고 바로 결제를 하는 시스템을 가진 식당이 꽤 많다.)

우리 앞 테이블의 사람이 나가고 다른 손님이 들어왔는데, 그 손님들의 메뉴가 먼저 나오기 시작했다.


그제야 주문내역을 확인하는데, 우리가 결제를 하지 않아 메뉴가 들어가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순간 약간의 짜증스러운 감정이 올라왔다.

단전 밑으로 그 감정을 꾹 누르고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의 짜증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격한 감정의 다툼이 우리 앞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우리 아이들은 등을 돌려 그 테이블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부부인 듯했다.

갑자기 남편의 목소리가 커졌다.


"야 이럴 거면 집에나 있지 왜 왔냐. 아우 정말 집에 있어야 했는데 괜히 왔네."


여자가 뭐라고 대답을 했는데 들리지 않았다.

남편이 계속해서 말했다.


"너 아까부터 그랬어. 아까부터 그 표정이었어. 야 가자. 그냥 가자. 나가나가."


남편은 아내가 있는 맞은편으로 가서 여자의 팔을 잡아끌기까지 했다.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왜 그래. 이거 놔."


"아오. 진짜." 남편은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그 카페를 혼자 나가버렸다.

몇 분 후에 시킨 음식이 모두 그 테이블에 놓였다.

아내는 조용히 종업원에게 물어봤다.


"포장되나요? 포장 용기 좀 주시겠어요?"





살면서 다투지 않을 수 없다.

다툼이 없는 부부가 있다고 간혹 듣기는 했는데, 개인적으로 의문이다.

정말 다툼이 없이 그 관계가 성장할 수 있는지.

그토록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시간 동안 생각의 차이, 감정의 굴곡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화하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우리 부부도 하루가 멀다 하고 다투었던 시간이 있다.

신혼이 시작하고 2,3 개월이 지나서부터 서서히 시작한 갈등이 첫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시간에 정점에 달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두 사람의 견해 차이는 꽤 컸다.

정말 우스운 주제도 있었는데, 우리는 '남북전쟁이 다시 일어나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북한 군인이 우리 가족에게 총을 겨눈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싸우기까지 한 적도 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에는 내 안에 자리하고 있는 '나만 손해 본다는 생각'에 남편이 화장실에 앉아 있는 모습까지 미워서 어쩔 줄 몰랐다.

선을 넘는 말들을 쏟아내고, 결혼의 마지막을 말하는 말들도 서슴지 않았다.

나는 화가 났고, 억울했다.

남편은 자존심이 상했고, 그도 억울했다.


이럴 때는 각자 마음을 차분하게 할 시간이 필요하다.

감정에만 사로잡히지 않도록 말이다.

감정은 그것이 늘 옳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와 내 가까이에 있는 이들을 불태워버릴 수도 있는 '화'라는 감정은 오히려 내 마음을 정직하게 돌아보는 데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그럴 때는 '화'가 나는 감정을 부정하기보다, 무엇에 화가 나는지 적어보거나 천천히 생각해보아야 한다. 약간의 시간을 나에게 주어야 한다. "약간의"


대화는 그 후에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어른다운 대화를 할 수 있다.

선을 넘지 않을 수 있다.

선을 넘는 다툼은 두 사람이 화해를 해도 감정이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선을 넘는 다툼은 이런 것이다.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상대에 대한 인신공격적 발언, 서로의 가족에 대한 비난, 과거 일을 현재로 가지고 와 싸움의 주제 흐리기.

상대의 신체를 공격하거나 비속어 등으로 욕하기.

혹은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상대를 투명인간 취급하기.


이러한 싸움의 방법은 도무지 해결점을 찾을 수 없다.

싸움은 합의점을 찾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부부는 싸움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싸움을 포기하고 입을 다무는 순간, 그 침묵과 냉기는 온 가족을 무너뜨린다.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자녀들이다.

쏟아지는 비를 그저 맞아야 하듯, 그 불안한 냉기는 아이들에게 쏟아진다.


결혼을 했다면 나 자신을 더 알아가야 한다.

내가 감정을 어떻게 다루는 사람인지, 무엇이 최근에 가장 힘들고 어려운지.

그리고 배우자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배우자의 마음도 들어야 한다.


싸움을 무서워하지 말고, 서로의 견해를 듣고 내 견해를 말하고 때로는 뒤로 물러나야 한다.

그렇게 되기까지 무수히 다툼의 시간을 지나야 한다.

싸움은 결코 관계의 끝이 아니다.

두 사람의 합의점을 찾아가기 위한 과정이다.






불구경하듯 돌아앉아 구경하고 있던 아이들을 다시 앉히고, 남편에게 먼저 나간 남자 욕을 한 바가지 했다.

어떤 상황이었든, 먼저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는 것은 정말 반칙이다.


그 장면이 엔딩이 아니기를 바란다.

포장 용기에 담아 간 음식이 식었어도, 다시 데워서 음식의 맛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두 사람에게 있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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