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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월 moon Mar 14. 2024

장이 우울한 남자

#피아노치는남자의장이야기 #집밥의이유 #그럼에도결혼을장려합니다

집밥을 한다.

가능한 냉동식품과 밀가루, 밀키트를 제외하고.

저녁마다 아침 메뉴를 생각하고, 점심을 먹으면서 저녁 메뉴를 고민한다.


우리 집 피아노 치는 남자의 장과 위 때문이다.

동시에 그의 유전자를 빼다 박은 우리 집 둘째 때문이기도 하다.


어제 회사 점심 메뉴였던 '중식'이 또 화근이다.

잘 지내는 듯하다가 주기적으로 소화불량을 동반한 몸살과 근육통, 두통은 일상을 멈추게 할 정도이다.

위내시경을 해보고, 헬리코박터균 검사도 해보고, 위염약과 소화제를 비롯해 한의원에서 처방하는 환까지 달고 지낸다.


이번에는 아직 병원을 찾을 정도는 아니지만, 쌔한 느낌이 몸에서 돌고 있는가보다. 아마 더부룩함과 답답함 정도 일거다. 하지만 이 증상을 무시하면 안 된다.

이 정도의 사인을 몸에서 보내고 있을 때는, '곧 온몸으로 나타날지도 모르니까, 몸 사려라.......'의 의미가 되겠다.


먹는 양을 줄이고, 인스턴트는 멀리해야 한다.

커피와 주스는 안 된다. 밀가루도 안 된다.

이럴 때 만약 고기나 튀김, 밖에서 사 먹는 음식, 냉동식품, 밀키트를 먹으면 바로 몇 시간 후 지옥을 맛보게 된다.


24시간을 꼬박 앓는 모습을 몇 번 보게 되니, 음식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유전자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해서 둘째에게도 똑같은 증상이 있다.

둘째가 아플 때는 더 불안하다.

고열로 치솟고 염증수치까지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틀을 꼬박 40도를 찍어야 나아진다.


평소에 먹는 음식들 중에 염증을 일으키는 요소가 최소화되도록 신경 써야 한다.

사실 2년 전만 해도 냉동식품과 밀키트가 냉장고에 꽤 있었다.

솔직히 많이 먹었다. 에어프라이어에 한번 돌리기만 하면 되는 요리들이다.


집안 식구들이 아프면서 가장 먼저 멈춘 일이 냉동식품과 밀키트를 멀리하는 것이었다.

주스와 과자, 밀가루를 하루 동안 얼마나 먹었는지 헤아리고 먹는 양을 조절한다.

계절별로 제철음식을 챙겨서 먹고, 한 주간 식단을 머릿속에 꼭 그려본다.

식구들의 먹는 메뉴와 양을 조절하는 관제센터의 역할을 열과 성의를 다하여하고 있다.

사명의식까지 가질 정도.


책을 잘 읽지 않는, 피아노 치는 남자의 올봄 첫 번째 책은 #내장은왜우울할까(_윌리엄데이비스) 이다.

제목이 정말 기가막히다!

시름시름 아플 적마다 정말 우울함의 극을 향하는 그의 위와 장이, 먹는 것의 관리로 한결 편안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 집 둘째도 마찬가지.


그러니 제발 먹기를 권하는 것을 먹고, 탈이 나는 것은 먹지 않기를.






밤 산책 길에 같은 동에 사는 이웃을 만났다.

그들도 아이들과 함께 산책 중이었는데, 그 가정의 가장 역시 우리 집 남편처럼 장이 많이 연약하시다.

우울한 장의 소유자가 가까운 곳에 또 있다. 그 둘은 동지애를 느낀다.

효과가 좋은 약을 공유하기도 하고, 요즘 장과 위는 어떤지 근황을 나눈다.


헤어지면서 나눈 그들의 저녁 인사가 정말 가관이다.


"언제 한번 같이 햄버거나 드시러 가시죠!"


"아우! 좋죠!!"


확, 정말 때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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