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공개수업 #아이들의자람 #고마움과감사 #선생님들 #고맙습니다.
코로나 시기 때는 공개수업이 없었다.
첫째가 3학년이 되고 나서 초등학교 공개수업에 처음 참석했다.
1, 2학년 때는 정말 친절하고 따듯한 여자선생님을 만나서 잘 가르침을 받았고,
3학년에는 남자선생님이 처음으로 담임을 맡게 되셨는데 공개수업을 가서 깜짝 놀랐다.
정말이지, 너무 잘 생기셨다.
키도 180은 돼 보이셨고, 흔히 말하는 훈남이셨다.
이렇게 외모가 출중하신 분이 공교육에 존재하다니!!
흐뭇한 마음으로 수업을 참관했었다. ^^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날 더 또렷하게 남은 것은 선생님의 외모가 아니라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였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와 발표 내용을 귀 기울여 들어주셨다.
(그 후로 선생님은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킨 우리 첫째를 내내 애정으로 지켜봐 주셨다.)
둘째는 1학년 때부터 공개수업에 참석했다.
1학년들은 수업 분위기가 남다르다.
1학년의 교실은 아직 유치원의 연장선에 가깝다.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책을 수업 시간 전에 준비하는 것, 책상과 서랍을 정돈하는 것, 발표하는 방법 등.
그 모든 '기본'을 배우는 시간이다.
그래서인지 가장 자유분방한 모습을 1학년 교실에 가면 볼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들께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 올해로 첫째는 6학년, 둘째는 3학년이다.
초등 3학년은 초등학교 시절의 황금기, 이제는 적당히 적응뿐 아니라 생활에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초등학생으로서의 생활패턴도 자리를 잡았고, 학교 생활, 친구관계, 선생님과의 관계 등에서 익숙해지는 시기다.
개인적으로 아들 둘을 키우면서 초등 3학년 시기는 본격적으로 아들들의 '자아'가 매우 '발현'되는 때인 것 같다. 이제껏 부모의 손 안에서 예측되는 모습으로 자라왔다면, 초등 3학년부터는 예상하지 못한 자기 본연의 모습이 힘껏 드러난다. 그 모습을 잘 받아주고, 애정과 훈육의 균형을 잘 조절해 나가야 하는 고난도의 육아 시기에 돌입한 것이다.
3학년 둘째의 공개수업이 먼저였다.
3교시. 저학년 공개수업은 이제껏 <국어>였다. 수업의 스펙트럼이 넓고, 모든 이에게 공감되는 수업을 할 수 있는 과목인 것 같다. 책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친구들과 나눔까지 가능하니 말이다.
쉬는 시간에 도착한다. (수업이 시작하고 나서 참석하는 것은 수업 전체 흐름에 방해가 될 수 있다.)
대안학교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는지라, 나는 수업의 짜임새와 교사의 진행과정을 유심히 살펴보는 편이다.
매해 공개수업에 참석하며 느낀 것은,
우리 아이들의 학교만의 행운일지도 모르지만
수업이 늘 알차고 재미있었다는 점이다.
수업 목표를 비롯하여, 활동 내용, 아이들 개인에게 적용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교과 내용은 단순히 '앎'에 머물지 않고 아이들의 실제 생활과 습관에 이르도록 구성되었다.
선생님들의 진행 방식도 참 매끄럽고 감사했다.
요즘 교사라는 자리가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우리는 잘 안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을 따뜻하게 이끌어주시는 선생님들을 만나면
그저 감사한 마음이 먼저 든다.
이제껏 만난 아이들의 선생님은 모두 그런 분들이었다.
가정에서 볼 수 없고, 파악하지 못한 아이의 모습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주신 분들이었다.
아이들에게 소중한 지식을 좋은 수업으로 담아내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당해 주신 고마운 분들이다.
첫째 아이의 공개수업일과 시간이 알림장으로 전해지고
첫째 아이는 단칼에 "오지 말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두둥!
'엄마, 이미 그날 입고 갈 치마 인터넷으로 주문했는데?!'
속으로만 말했다.
약간 서운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아이가 자랐다는 증거라는 걸 아니까.
내심 마음이 바뀌기를 기대하면서 둘째의 공개수업만 다녀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공개수업일 전 날, 첫째가 조용히 다가와 말을 건넨다.
"엄마, 내일 와도 돼. 연극하거든, 조별로."
아이의 허락이 떨어졌다.
내 시간을 내서 가는 일인데도, 아이의 '허락'이 필요해진 것이 서운하면서도 웃음이 났다.
아, 이 아이가 정말 자라고 있구나.
"오케이. 알겠어. 엄마 갈게"
6학년 공개수업은 참석하는 부모들의 숫자부터 다르다.
5학년까지는 엄마아빠 모두 참석하는 부모의 숫자가 꽤 된다.
아빠들의 참석률이 높다는 건 매해 놀랍다.
그만큼 우리 시대 부모들의 관심과 애정은 아이들에게 차고 넘친다.
5학년까지는 교실이 가득 찼다.
더 서 있을 자리가 없을 정도다.
6학년은 다르다.
교실 뒤편이 한산하다.
참석한 부모의 숫자는 나까지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이전학년 시절 내 아이와 주변 아이들, 선생님의 한마디 한마디를 매의 눈으로 살피던 모습도 이제는 많이 느슨해졌다. 중간에 살짝 나깔까, 싶기도 했다.
이제 나도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거다.
아이의 수업 모습과 발표하는 모습,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 선생님과의 관계를 맺는 모습까지도 어느 정도 파악이 되었다는 의미다.
유독 긴장을 많이 하고, 불안이 높은 첫째는 잠시 후 발표를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그 모습을 엄마와 주변 모르는 이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수업 시작 전부터 얼굴이 발그레하다.
아이가 맡은 역할의 연극 대사는 두어 줄 정도.
그 마저도 몹시 부끄러운가 보다.
그렇게 그럭저럭 공개수업이 지나갔다.
첫째의 수업도 참 좋았다.
요즘에는 발표할 아이들을 정하는 데에도 스크린으로 게임을 통해 뽑게 한다.
아이들 개인별로 패드를 제공하기도 하고, 게임으로 수업의 내용을 확장하여 아이들의 관심과 흥미를 이끌기도 한다. 교육의 환경이 우리의 시대와는 비할 수 없이 좋다.
해마다 참석한 공개수업에서 늘 흐뭇했던 건,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이었다.
그 자람의 순간마다
나는 늘 같은 마음을 배운다.
고맙고,
흐뭇하고,
그리고 감사한 마음.
시기마다, 때마다 아이들의 자라는 모습은
그저 웃음을 머금게 하는 고마움이었다.
그리고 그 '자람' 뒤에는
늘 선생님들이 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