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 #아이가아니라
우리 아이를 향한 주변 이모들과 친구엄마들의 평은 이렇다.
"인사도 잘해요!"
"사회성이 좋네!"
"논리적으로 말을 잘하네."
"사교성이 좋구나."
"리더십이 있네."
"생각이 깊고 배려심이 있어."
"항상 기분이 좋아 보여."
칭찬 앞에 입꼬리가 올라가지만, 겸손하게 손사래를 쳐본다.
그리고 그 칭찬에 버금가는 비슷한 말로 "그 집 아이"를 칭찬한다.
그 칭찬은 집에 돌아와 아이와 머무는 동안 오래지 않아 곧 사라진다.
집에 돌아온 아이는 방으로 들어가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고, 게임을 한다.
오늘 해야 할 숙제가 분명 많을 텐데.
미루다가 밤이 되면 또 피곤해져서 짜증을 낼 것이 뻔한데.
'사람들은 모르지, 니가 요모양인걸!'
다른 집 아이들도 이런가?
그 집 아이는 참 순하고 얌전해 보이던데.
학교에서도 문제 일으킨 적 없고.
참 차분해보이더만.
그 집 아이도 이런가?
씻어라, 치워라, 숙제 먼저 해라 말하면
"내가 알아서 할게요, 좀."
찌푸린 미간과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대꾸하고 방문을 닫을까.
내가 모르는 이 집, 저 집의 저녁 시간과 잔소리, 그리고 한 숨을 가만히 그려본다.
어쩌면 나는 내 아이가 결코 이길 수 없는,
이 집 아이의 이 모습, 저 집 아이의 저 모습의 조각조각을 이어 붙여
이 세상에 존재한 적 없는 "엄마친구아들"을 만들어냈는지도 모른다.
내가 만들어낸 그 엄마친구아들은 내 마음속에서 나를 비교하고 있다.
'저 아이는 어떻게 키워서 저렇게 차분할까?'
'어머나, 어쩜 저렇게 똑 부러지고 야무지게 키웠지?'
내 마음속 질문들이 나를 찌르고 괴롭게 한다.
비교하는 소리들이 나를 갉아먹는다.
점수를 매기고 등수를 알려준다.
'사람들은 모르지, 니가 요모양인걸!'
그 말은 사실, 아이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나에게 하는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이가 등교한 후, 아이의 방에 들어간다.
아직 아이의 온기가 남아있는 따듯한 침대.
사실 나는 아이들의 침대를 정리해 주는 순간을 좋아한다.
아이가 정리했어야 할 자리지만, 나는 이 자리를 그냥 두지 못한다.
아이가 자고 일어난 자리를 한번 쓰다듬고, 침대에 널브러져 있는 시트와 이불, 베개와 쿠션들을
제자리로 정리하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이 내게 행복을 준다.
가만히 이곳에 있던 아이의 모습을 그려본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드러누워,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숙제로 해야 할 문제집과 책들은 바닥에 늘어놓은 채,
짜증도 냈다가 게으름도 피웠다가 하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본다.
이상하게 밉지 않다.
이 아이는 누군가의 한 문장으로 모두 보일 수 있는 아이가 아니다.
그 모든 칭찬은 사실이다.
그치만 그 아이는 내게 짜증도 내고, 게으름도 피워서 나를 속상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 모두가 쌓여 지금의 내 아이를 만들었다.
아이를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비교는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아이를 비교하는 소리도,
나를 재촉하는 소리도
조금씩 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