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참 올바르게 사는 분이시네요."

#부모검사 #MMPI #숫자로보는기질 #검사결과

by Moonjours

아이의 풀배터리 검사를 마치고 결과를 듣기 위해 부부만 담당선생님을 만나게 된 날이었다.


'단순히 기질 때문일까?'

'혹시 반항장애가 있나?'

'ADHD인가?'

'정말 예민한 기질을 내가 받아주지 못해서 그런 걸까?'


많은 생각이 들어서 복잡했고, 알지 못하니 답답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인지적으로 사람과 환경을 이해하고 구조를 보려고 한다.

그것을 보고 나면 이해가 되고, 이해가 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원인이 무엇인지 몰랐던 그때는 무작정 답답했다. 때로는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괴로움과 슬픔이 아침마다 밀려왔던 시간이었다.



지난 이야기에도 기록했지만, 아이의 결과는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아이는 우울이 높게 나왔다.

아이의 검사 결과에 놀랐지만 동시에 죄책감과 슬픔이 밀려왔다.

동시에 남편 역시 우울이 높았고, 아이와의 관계에서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남편이 안쓰러웠다.

아이도, 남편도 참 안쓰럽게 느껴졌다.

이전의 시간이 스치듯 지나가며 미안하고 슬펐다.


검사가 당일에 모두 이루어졌던 아이의 검사과정과는 달리 부모 검사는 종이와 온라인상으로 여러 개의 검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남편과 내가 해야 했던 검사 역시 아이처럼 양도 많았고, 시간도 상당히 걸렸다.

2년마다 하는 건강검진에서 내 뼛속까지 보여주는 것처럼 내 정신을 탈탈 털어서 보여주는 기분이랄까.

주어지는 질문을 오래 고민하지 않고, 그때그때 드는 답을 바로 적는 것이 정직한 나의 모습일 가능성이 가장 크지만, 긴 답을 써 내려가야 하는 질문들도 있었기 때문에 검사는 며칠이 걸렸다.

아이의 모습을 주양육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보고식으로 기록해야 했던 검사도 있었고, 수백 개의 문항을 빼곡하게 읽고 답해야 하는 검사도 있었다.

검사 자체의 신뢰도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의심하지 않았지만, 유난히 아이로 인해 피로도가 높았던 지난여름을 되짚어보면 검사 과정이 부모인 나에게도 몹시 고단했다.

그런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듯, 나의 심리 상태는 아이와의 갈등 관계로 인해 지친 상태임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현재 양육에 대한 피로감이 상당한 것으로 보이며, 아동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감정적이고 미숙한 대처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MMPI-2 Ma=40; SCT25)




"어머님, 어머님은 참 올바르게 사시는 분이네요."


검사결과를 설명해 주시던 선생님의 나에 대한 위의 한 문장이 며칠 동안 내게 남았다.

처음에는 불편했고, 그다음에는 화가 났다.


'참 단정적으로 표현하시네. 검사결과를 말하는 것이겠지만. 왜 이렇게 그 말이 걸리는 거지?'

'올바르게 사는 게 나쁜 건가? 다들 그렇게 살지 않나?'


시간이 지나니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늘 내 할 일을 하고, 숙제를 안 한 적 없었어도 맨날 혼나고 매일 맞았던 나였는데 그럼 올바르게 살지도 말았어야 했나?'


자주 찾아왔던 연민이 다시 찾아왔다.

내가 내 아이의 나이였을 시절, 학교생활과 나의 할 일에 대해서는 한 번도 꾸중을 들은 적 없던 내가, 그렇지 않은 아이의 생활을 보면서 한심하고 어이없다고 느꼈던 많은 순간들이 겹쳐 보이면서 나의 삶의 기준이 아이에게 그대로 반영되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는 그저 그 또래 아이였을 뿐인데.

나의 지나간 삶이 특별했고, 내가 자라온 환경이 거칠었던 것인데.

그래서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고, 그때의 나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던 것을 삶의 기준으로 삼아서 익숙하게 그것을 기대치로 삼은 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다시 결과지를 차분히 읽어보면서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한편 대인갈등 및 정서적 스트레스를 느꼈을 때 부정정서를 회피하고 부인하는 경향이 있어 심리적으로 소진감을 쉽게 경험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윤리적, 도덕적 기준에 대해 지나치게 경직된 태도를 지니고 있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고 경험하는 기본적인 욕구나 감정에 대해서도 부정하거나 부인하며 회피할 가능성이 있겠다. 이런 사회적 관계에서의 방어적 태도는 타인과 함께 하는 것에 대한 피로감과 불편감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관된 규칙이나 한계를 설정하여 훈육을 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으나, 관계에 대한 좌절감은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머니는 부정정서와 욕구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데 방어적인 경향이 있어, 자녀가 느끼는 불안이나 분노와 같은 부정적 감정이 수용되고 다뤄지기보다는 억제되거나 회피되었을 가능성이 있겠다. 따라서 먼저 어머니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알아차리고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겠으며, 자녀와의 상호작용에서는 자녀의 감정과 욕구에 먼저 관심을 기울이고 깊이 이해하며 공감적으로 반응하려는 노력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감정에 대한 공감만큼은 자신 있었는데, 나는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좀 충격적이었다.

내가 알던 나는 내가 아니라 '되고 싶었던 나'였다.

공감을 잘해주고 싶었던 사람이기는 했다. 상대를 잘 배려해주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나의 마음과 부정적인 감정을 그대로 수용해 본 적이 없는 나는 제일 사랑하는 나의 아이에게도 그랬다.

아이에게 미안했다. 많이 미안했다.


내가 힘들고 싫고, 도망가고 싶을 때마다 어떻게 했었는지를 생각해 봤는데, 마땅히 기억나는 그림이 없었다. 무수히 느꼈던 절망과 슬픔, 분노, 외로움이 내 삶에 끝없이 있었는데 내가 그때마다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니...

어쩌면 그게 내가 살아온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대로 살아가는 것 말이다.

덮고 살기도 했고, 잊고 살기도 했고.... 그래서 지금껏 '잘 모르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지도.

그런데 그런 나의 방법을 보게 되니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내 모습이 보이니 아이를 대했던 나의 지나간 시간이 보였고, 그리고 나니 아이의 마음이 느껴졌다.


상담을 진행하는 두 계절 동안 갈등이 없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상담을 시작한 직후에는 갈등이 극에 달해 상담을 내가 먼저 취소해버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기에 어쩔 수 없이 지나가기도 했고, 죽지 못해 그냥 살아간 날도 있었다.

눈물이 제일 많았었다.

그런데 변화는 세 번째 계절이 오면서 시작되었다.

아무런 이벤트는 없었다.

딱 꼬집어 말할 사건도, 이유도 없었다.

아이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안 된다는 말에 "어쩔 수 없지."로 대답하는 날이 많아졌다.

남편과 나는 놀랐다.

무엇이 아이를 변하게 했는지 딱히 꼬집어서 생각나는 게 없었다.


그러고 보니 무엇이 아이를 우울에 이르게 했는지도, 생각나는 이벤트라 할 만한 것은 없었다.

그렇게 아이의 회복도 어떤 날을 계기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수없이 지나가는 일상의 변화가 아이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나는 그저 나의 마음을 바라보고 나를 받아주고, 아이와 시간을 조금 더 보냈다.

아이의 마음을 바꾸고, 교정해 주려고 말하는 것을 조금 줄였다.


(부모이므로, 아이에게 잔소리를 안 할 수 없다. 부모이므로, 아이의 모든 순간을 웃으며 너그럽게 대할 수 없다. 부모이므로, 아이에게 소리치지 않을 수 없다.)


한여름의 햇살처럼 쨍하고 강한 사랑을 주어야 하는 나의 첫째에게, 나의 마음과 시간이 허락되는 한 강렬한 사랑을 마구 표현해 주었다.

그 사랑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특별한 기술과 일정을 내야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쌓여간 일상이 아이의 변화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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