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이편안해지기까지 #나의숙제
오은영 선생님이 쓰신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책에 나온 글이다.
"원장님, 왜 자꾸 나 보자고 해요? 나 오늘 여기 오기 싫었어요."
"야, 그래도 좀 보자. 원장님은 너 보고 싶었어."
"나는 보기 싫었다고요!"
(웃으면서) "그래, 그래도 돼. 그래도 원장님은 너랑 이야기해야겠어."
"아이, 오기 싫었는데...."
"그랬겠다. 멀리서 오려면 좀 힘들긴 하지."
(중략)
처음 찾아왔을 때 이 아이는 누가 말만 걸어도 소리를 지르고 의자를 들어 어린이집 아이들을 위협하곤 했어요. 그러던 아이가 이렇게 상냥하고 자상해진 겁니다. 아직도 만남 직후엔 부정적인 태도를 조금 보이기도 해요. 이 아이는 조금만 불안해지면 부정적인 태도로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완화하거든요. 이때 편안하게 기다려주니까 아이에게 불안이 완화되면서 '겨를'이 생겼어요. '겨를'이 생기니 부정적이던 아이가 주변을 돌아보고 심지어 다른 사람을 챙기기까지 한 거지요.
낯설고 새로운 것이 주변에 가득한 우리 아이들, 지금은 불안할 수 있어요. 불편할 수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마음이 편안해야 여유가 생기면서 '겨를'도 생깁니다.
부모도 그렇습니다. 그 정도면 잘하고 있는 거예요. 믿으세요. 마음을 편안하게 먹으세요. 부모도 '겨를'이 있어야 아이의 '겨를'을 챙길 수 있습니다.
걱정 마세요. 아이도 당신도 분명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첫째 아이는 기질적으로 불안, 민감이 높다.
영유아기 시절에는 아이를 키우기가 "정말 힘들다"라고 느꼈다. 아이의 기질을 알기에는 이른 시기였다. 나도 아이도 처음인데, 정말 힘들다고 온몸으로 겪어냈다.
둘째가 태어났는데, '어라??' 싶을 정도로 매 순간이 달랐다.
유모차에 태워 몇 번 흔들어주니 잤다. 잠든 채로 유모차에서 두 시간을 푹 잤다.
카시트에서는 거의 모든 생활을 했다. 등이 안불편한가 싶을 정도로 카시트에서 잘 자고, 잘 먹고, 잘 잤다.
첫째에 비해 수유텀도 일찍 자리를 잡았다. 70일이 지나서야 완모의 루틴을 잡은 첫째에 비해, 둘째는 조리원을 나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루틴을 잡았다. 첫째로 인해 감기와 그에 따른 항생제 처방으로 일찍부터 약을 먹기도 했고 독감의 위험에 노출되기도 했으며 각종 낮잠 방해와 첫째의 공격이 수시로 있었음에도 말이다.
부모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는데, 둘째 육아는 정말 쉬.웠.다.
기질의 차이인 것을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저학년을 지나면서부터 말이다.
첫째가 민감도도, 불안도도 높은 아이였음에도 부모인 나는 그 사실을 잘 몰랐다. 그저 힘들다고만 느꼈고, 그래서 나는 나대로 답답했다.
고마운 점은 육아의 전반적인 부분에서 남편과 깊은 대화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수많은 갈등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기도 했다. 특히 첫째를 키울 때 그러했다.
다른 많은 부부들이 그러하듯, 우리도 첫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힘들고 사회적으로 바쁜 시기를 보냈기에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피로도가 상당했다.
(그 시기를 잘 지나기만 해도 서로 한숨 돌릴 수 있는 때가 온다.)
살면서 '여유'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가는 때는, 아마도 그 여유가 가져다주는 평화를 경험해 본 경험치가 쌓여갈 때쯤일 것이다.
몸을 갈아 넣어서 하는 육아가 마무리되면 곧장 정신적인 씨름으로 치러야 하는 순간이 온다.
이때부터는 자아통찰과 아이 기질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동시에 오은영 선생님의 글에서 언급된 "겨를"이라는 것이 물리적으로, 정서적으로 몹시 필요하다.
이제 부모의 영혼을 갈아 넣어야 하는 때다.
살면서 익숙한 대로 더 이상 말하고 행동할 수 없고, 아이의 기질과 성격을 이해하고 아이가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바꾸어야 하는 시기인 것이다.
이미 영유아기 때 많은 것을 갈아 넣었다고 생각한 나의 생각은 정말 오산이었다.
아이가 클수록 아이의 자아가 자란다.
몸이 클수록 자아도 눈에 보이게 자란다.
아이의 생각과 마음이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표현된다.
우리 집 아이들을 이야기해 보자면 첫째는 감정의 불편함을 부정적인 태도와 공격적인 모습으로 나타낸다.
근래 들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순둥이 둘째도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데, 신기하게도 그건 엄마인 나의 방법과 꼭 닮은 논리와 분석이다.
달라진 것은 첫째 때 수없이 놀라고 화나고, 반성했다가 후회와 낙심의 루틴을 지나고 나니 둘째의 기질은 크게 놀랍지 않다는 것이다. 한발 물러나 신기하고 가끔 신통하기도 하다.
한발 물러나서 반응하게 되는 것이 나에게 '겨를'이 된다.
이것은 육아하는 부모에게 필수다.
한발 물러남이 없이는 나의 삶, 아이의 삶, 나의 기질, 아이의 기질, 나의 단점, 아이의 단점, 나의 상처, 아이의 상처가 뒤죽박죽 되어서 누가 누구인지, 어디까지가 아이의 삶이고 어디가 나의 삶인지, 어디까지가 아이의 감정이고 어디서부터가 부모의 감정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덩어리가 된다.
그 덩어리로 살게 되면 결국 파국이다.
진짜, 파국이다.
아이의 불안함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부정적인 태도로 말하는 모습을 편안하게 기다려주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 그래서 어제도 나는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웃으면서 대답해 줄 수 있겠니!"라는 말로 아이를 혼냈다.
편안하게 기다리기란, 내게 정말 어려운 숙제다.
아이들이 등교한 후 읽은 책을 잠시 멈추고 생각해 본다.
내가 우리 아이들 시기에 엄마와 아빠에게 보고 싶고 듣고 싶던 말과 눈빛, 행동을 그려본다.
(물론 우리 부모님은 한 번도 그런 반응을 해주지는 못했다. 지나간 시절을 바꾸어낼 수 없지만, 지금 나의 모습을 나는 바꾸어낼 수 있다. 기쁘고 기꺼이 말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괜히 찌뿌둥하고 늘 잠이 모자라고 기분이 나빴던 중학교 시절, 나의 구시렁거림도 가만히 기다려주면서 따듯한 밥을 차려주는 엄마의 모습을 나는 바랐다.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아도 좋을 일이다. 이미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고 있었다.
세상을 향해 돌을 던지고 싶을 순간, 괜히 모든 어른들과 선생님들이 싫고 그들의 권위에 반항하고 싶던 시절에 설득이 아니라 가만히 들어주면서 등을 다독여주고, "그래서, 뭐가 그렇게 힘들었어?" 하고 알아주기를 나는 바랐다.
나의 부모에게도 '겨를'이 있었다면 가능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삶을 생존해 내는 것이 힘들었다.
건강하게 아이를 키워내고 싶다면 '겨를'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이 '겨를'을 사수하기 위해 글을 쓰고, 수업을 준비한다.
등교를 마친 아이들을 각자의 방에 사랑과 격려를 가득 담아 작은 엽서를 써서 붙여둔다.
이제껏 잘했고, 잘 해낼 것이다. 나와 아이들 모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