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코인노래방가본사람손 #중딩시절떠오르네 #요즘아이들그때의내시절
"엄마, 나랑 코노갈래?"
아이의 상담시간은 토요일 오전 9시였다.
상담을 마치고 나오면 10시. 대학가여서 몇몇 패스트푸드 가게가 열려있고 편의점, 오락실 등이 열려있다.
아이는 내 뱃속에서 태어난 이후 줄곧 아침형 인간이었고, 나는 우리 가족 중 유일하게 저녁형 인간이다.
아침시간에는 모든 장기가 잠들어있어서 먹고 싶은 것도 없고, 뇌도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몸으로 하는 활동 역시 가장 에너지가 많이 드는 시간대가 아침이다.
그런 내게 아이가 오전 10시에 코인노래방을 가잔다.
'하......'
한숨이 백번 나와야 마땅하지만 잠시 그런 내 솔직한 심정을 감춘다.
아이의 우울이 높다는 말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주의 모든 기운을 끌어모아서 대답했다.
"그래, 그러자. 근데 우리 우선 뭐 좀 간단히 먹자."
"오 좋아, 엄마! 짜장면 어때?"
아이는 아침 10시에 짜장면을 원했다.
놀랍게도 근처 중국집이 일찍 열었고, 우리는 아침 댓바람부터 중국 음식을 먹었다.
탕수육까지 주문해서 야무지게 먹었다.
우리의 식사 시간은 언제나 그렇듯 30분이 채 되지 않는다.
남자들의 식사는 늘 속전속결.
이들과 살다 보니 어느새 나도 보통의 여자들보다는 먹는 속도가 빠른 듯하다.
아침부터 중국음식으로 더부룩하게 속을 채우고 나와, 약속대로 코인노래방을 갔다.
노래곡수대로 선결제하고, 방을 지정한다.
아이 덕분에 요즘 노래방시스템을 처음 경험했다. 사람이 없어도 되는 방식이라 참 간편했다.
그럼에도 오전 11시가 채 되기도 전에 노래방을 입장한다는 것은 정말 내키지 않았다.
순전히 아이를 위해서 결제하고 들어갔다.
"엄마, 내가 먼저 부를게."
아이는 번호를 누르고, 마이크를 잡고 이제껏 가끔씩 흥얼거렸던 노래를 불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가 이따금씩 유튜브에서 찾아달라 했던 노래는 처음 들어본 것들이 많았다.
주로 매우 시끄러운 전자음악, 가사에 욕이 들어가 있는 노래들, 의미 없는 것 같은 우습지도 않은 유머가 가사였다.
나의 청소년 시절, 서태지와 아이들, 젝스키스, HOT에 열광했던 때가 기억났다.
나도 방에 브로마이드를 붙였고, 어른들이 '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냐'던 노래 가사와 랩을 따라 했고 안무도 연습했었다.
아이는 내가 지나온 그 시기를 고스란히, 진입한 것 같았다.
그거 아세요
저 모눈종이 샀어요
누워서 발로 박수치면
기분이 좋아져요 oh
그거 아세요
저 얼굴에 점 12개 있어요
할머니가 아빠 보고 도토리묵
가져가래요 oh
집에 와서 양말 한 쪽만 벗으면
누리죠 두 가지 쾌락
저는 귤을 먹을 때 꼭
마지막 두 개 남겨두고
오른쪽 왼쪽 볼에 넣고
같이 씹는 습관있죠
문어 심장 세 개 우리 집 콘센트 13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는
핑킹가위 입니다
가수 이혁의 노래다. (작사, 작곡 과나) 아이는 과나의 이름을 더 기억했다.
아이 덕분에 알게 되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했는데, 들을수록 재미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 곡 말고도, <당기시오 미시오> <망태할아버지> 등이 기억난다.
그 후로 아이는 마이클잭슨 노래를 듣기 시작했고, 지금은 1980년대 노래를 섭렵하고 있다.
아이의 취향은 볼 때마다 새로워졌고,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신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의 방에도 마이클잭슨의 사진이 붙여졌다.
아이 방 문을 열 때면 늘 가장 먼저 마이클잭슨이 웃으며 나를 바라봐 주었다. (아놔)
피곤했다. 솔직하게는.
외향형이지만 나이가 들어 이제는 내향형이 더 커지고 있는 내게 아이의 요구는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이는 새로운 것을 흥미로워하고, 탐색하기를 즐거워한다.
자신의 취향과 맞아떨어지면 그것에 푹 빠져 한참을 나오지 못하는 기질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함께하는 이들의 시선과 평가, 애정에도 크게 반응해서 엄마인 나의 피드백과 함께하는 시간, 애정 어린 시선을 늘 갈구한다.
에너지가 보통의 사람보다 적은 나는 (이것도 중년이 되니 발견된 나의 모습이다.) 처음 시작은 늘 과하게 아이와 함께하지만 끝으로 갈수록 힘이 딸려 사그라든다.
아이와 함께하며 발견한 나의 모습들도 적지 않아 "이제는" 아이에게 엄마의 이야기를 나누고 중간 타협지점을 찾기도 한다.
아이는 노래방에서 두세 곡을 부르고 내게 마이크를 넘겼다.
아침이지만 중학교시절부터 부지런히 드나들었던 기억을 되살려 나의 노래들을 불러재꼈다.
'에라, 모르겠다!'
요즘 노래를 모르는 나의 18번 곡들은 주로 80년대 노래다.
아이가 곡을 찾는 내내 내가 두세 곡을 불렀다.
"엄마! 노래방 와봤어?"
"무슨 소리야~ 엄마 중학교 때부터 엄청 자주 다녔어!"
"아 정말? 어쩐지 한두 번 아번 솜씨가 아니더라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와 소리 내어서 웃었다.
행복했다!
얼마만인지.
왜 이아이와 그토록 치열한 관계로 지냈을까.
나는 무엇을 지키고 싶었던 걸까.
나의 육아는 새로운 시기에 들어갔다. 나만 몰랐다.
어쩐지 아이의 옷을 사 오면 옷이 좀 작은 느낌이거나 딱 맞았다. 옷을 살 때에는 좀 크겠거니 싶은 사이즈로 골랐는데, 막상 골라와서 입혀보면 그다지 넉넉한 느낌이 나지 않았다.
나만 아이를 작게 보았다. 내 손 안에서 이루어졌던 아이의 발달이 계속된다고 여기고 있었나 보다.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내가 불안해서 놓아주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분리불안이 아이보다 부모에게 더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는데, 내가 그랬었나 싶기도 하다.
아이의 성장을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해서, 놓아주고 싶지 않아서 아이를 나의 규칙으로 묶어두었나.
아이는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었는데, 엄마의 규칙들이 날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답답하다고 말하고 있는 중이었나.
아이의 마음을 짐작해 보기 시작했다.
그전에도 하지 않았던 건 아닌데, 어렴풋하게 그려지던 것을 더 아이의 입장이 되어서 헤아려보고, 움켜쥐었던 손을 펼쳐내 아이가 원하는 사사로운 것들은 기꺼이 그렇게 하도록 두었다.
아이가 원하는 것들은 정말 별것 아닌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썩 내키지 않았지만, 기꺼이 내려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