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ne Eyre Nov 16. 2019

가지 같은 시간

페랑디 6주 차 (2019.11.11 - 2019.11.15)




자동차가 빗방울을 머금은 도로 위를 달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페랑디 휴게실의 벽시계가 6시를 지난다. 그곳의 불빛만이 페랑디의 깊고 어두운 새벽을 밝히고 있다. 자판기에서 방금 뽑아낸 커피를 두 손으로 감싸고 한두 명씩 페랑디 휴게실로 모여든다. 추위로 잔뜩 움츠린 각자의 어깨에 페랑디 로고가 새겨진 도구가방이 걸려있다. 한주가 지날수록 더 차가워지는 새벽이 야속하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을 특별한 새벽이 줄어들고 있어 한편으로 벌써부터 아쉽다. 문득 그들도 나와 같은 아쉬움을 느꼈으면 했다. 나에게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새벽. 아니 우리 모두에게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새벽. 그래서 우리의 새벽은 매일이 특별하다. 누군가는 꿈속에서 헤매고 있을 시간이지만 우리는 궂은 날씨에도 또 이렇게 하루를 준비한다.


아무리 빨리 새벽을 맞이해도 항상 길위에는 사람이 있던 비오는날의 새벽


한국의 제과 기능사
프랑스의 제과 CAP
한국의 제과 기능사 자격검정시험은 한국 산업 인력 관리 공단에서 주관하며 실기와 필기로 나뉜다. 일 년에 평균 4회 정도 실시하며 필기시험을 합격한 사람에 의해 (2년간 면제) 실기 시험을 응할 수 있는 조건이 주어진다. 필기는 전부 객관식으로 제조 이론, 재료 과학, 영양학, 식품위생이라는 4개의 과목으로 60점 이상이면 합격이다. 제과에 관해 숙련기능과 제과 제조에 대한 전문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전문인력을 양성하고자 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실기는 몇 가지 품목 중에 무작위로 선정되는 단 한 가지 품목만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개수를 만들어 낸다.


한국과 다른 체계적인 교육방법과 수많은 재료의 비교 수업은 참 값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 아직 정확하게 차이를 이야기하는 것이 조심스럽고 무엇보다 한눈에 보기 쉽게 정리하자는 의도가 아니다. 학교 입학한 지 한 달이 넘었다. 내외적으로 CAP에 관한 이야기들이 더 자주 오간다. 실기 시간에는 CAP 방식, 셰프의 방식, 일반적인 프랑스 제과점의 방식 등으로 크게 나눠서 설명해주는 시간이 많아졌다. 시험 당일 4개 품목을 만드는 순서를 적어야 하는 것부터 제품의 진열까지의 과정이 그들이 요구하는 실기이다. 단 한 가지의 제품을 만들더라도 수많은 순서와 다양한 방법이 있다. 그 순서 안에 중요한 부분을 놓치면 원만한 결과로 이어지기 어렵다. 한국의 기능사와 비교를 해보면 이 곳에서 요구하는 실기는 더 현실성 있고 전문적이며 다양한 제과사의 덕목을 요구한다. 그리고 재료는 물론이고 제과를 대하는 셰프의 태도나 교육방법이 섬세하고 체계적이다. 한국의 유명한 제과사들 이력에 프랑스가 빠지지 않는다는 것은 프랑스의 제과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침 식사로 셰프가 준비해준 무스케이크에 커피를 마시는 우리



프랑스는 알다시피 부인할 수 없는 제과제빵의 강국이다. 바게트를 만드는 것에도 법이 존재한다. CAP Pâtisserie 가 한국의 제과 기능사랑 비슷한 자격증 정도로 생각하고 시작한다면 언어적 문제의 장벽은 그 이후의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과감히 말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외국인으로써의이 자격증의 가치는 해년마다 이 자격증을 위해 유학을 오는 사람들이 줄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제과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것에 자격증의 목표가 있다면, 프랑스는 제과 문화와 제과를 대하는 태도를 계승하는 것에 더 큰 목표를 둔다고 생각한다.


저렇게 사람들이 다녀가면 주방에 새로운 것이 생긴다 / 매주에 한팀씩 돌아가며 발표하는 수업의 첫 팀




대부분이 좋아하는 디저트
 모두가 좋아하는 디저트
혼자 사는 학생에게 한주 동안 만든 디저트의 양은 많다. 주방 냉동고에 놔두고 오면 학교 식당에 디저트로 판매된다. 같은 제품을 만드는 시간이 반복되는 시간이 잦아짐에도 불구하고 각자 만든 디저트를 자기들만의 예쁜 통에 포장하는 것은 특별하면서 끝나지 않은 단계의 일부분이다. 자신이 만든 제품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공유할  있다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매주 금요일에는 가져온 제품을 지인들과 나눔 한다.  꺼진 차가운 방안에 아직 온기가 있는 제품들은 가지고 들어올 때면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너무나 생각난다. 이번 주에 부득이하게 나눔 하지 못한 제품이 생겼다.



처음 해보는것이 많은 제빵 경력 8년차 외국인. 누가틴 작업



파리에서 제일 많이 먹어 본 디저트는 단연 레몬 타르트다. 신맛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지만 설탕이 대부분 들어가는 디저트의 세계에서 레몬 타르트의 신맛은 특별하면서 단맛에 지친 혀를 달래주는 맛이다. 내가 직접 처음으로 만든 레몬 타르트는 특별한 것이 없는 레시피였고 모양은 화려하지 않아도 맛은 최고로 화려했다. 한국에서는 대중적이지 않지만 프랑스에서 타르트는 한국의 단팥빵처럼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 온 대중적인 국민 제과 품목 중에 하나다. 기본에 충실한 제품이 예상보다 큰 감동의 맛을 선사했다. 디저트에 호불호가 없을 수 있을까? 대부분이 좋아하는 디저트가 아닌 질리지 않고 오랜 시간 모두가 사랑할 수 있는 디저트. 정답은 어쩌면 화려하지 않은 정직한 기본이 주는 담백함에 있지 않을까 싶다. 내 가게가 생긴다면 이 레몬 타르트가 나에게 선사했던 것처럼 짜릿하지만 담백한 “신맛”의 디저트를 나의 고객들과 나누고 싶다. 우리는 모두 말없이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각자의 제품을 포장했다. 



앉은 자리에서 6인용 한판의 3/4을 다 먹어버린 그 레몬 타르트






페랑디 구내식당



입학 날 받은 페랑디 카드에 원하는 만큼의 돈을 충전하면 그 카드로 구내식당과 휴게실의 간이매점을 이용할 때 용이하다. 구내식당은 내가 얼마큼 먹는 것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다양한 메뉴와 음료, 우리가 만든 디저트와 신선한 과일들이 가득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쟁반 위에 담아서 페랑디 카드로 계산하면 된다. 페랑디 학생들이 만드는 것은 아니고 전문 업체에서 식사를 준비한다. 페랑디의 명성답게 밥맛은 외국인인 나에게도 전혀 이질감이 없이 훌륭하지만 매일 이용하기에는 사실 부담이 된다. 그래도 금요일은 가능하면 셰프와 우리 그룹 12명과 같이 점심을 구내식당에서 먹으려고 한다. 정하진 않았지만 우리들만의 암묵적인 약속이다. 매주 금요일은 하루 종일 실습이 있는 날이라서 다 같이 실습복을 입고 점심을 먹으러 가기 편리한 것과 일주일을 정리하며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기에 좋은 적절한 시간이다. 이론 수업이 지루 했던 이야기, 프랑스 어떤 제과점 셰프에 대한 이야기, 수업시간에 미쳐 물어보지 못한 제품에 대한 질문, 현장실습에 관한 이야기 등 식사시간 한 시간이 부족할 정도다. 구내식당 밖으로 아침부터 내리던 눈과 비가 반복해서 내리고 있다. 아직 눈이 쌓이기에는 따뜻했나 보다.



친절한 구내식당 직원분들과 오랜만에 닭고기 요리



Nous somme ensemble


엠마뉴엘이라는 친구는 브라질이 고향이고 남편이 프랑스인이다. 보통 우리는 엠마나 엠이라고 부른다. 영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를 구사할 수 있다. 보면 볼수록 외모가 영화배우 마리옹 꼬띠아르를 닮았다. 제과 도구와 전공 서적 욕심이 유별난 점은 나와 유사하다. 본인의 집에 작은 서점이 있다고 말했다. 매주 월요일이면 남들은 가지고 있지 않은 새로운 제과 도구가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다. 내가 물어보면 아주 친절하게 어디에서 구했는지 설명해준다. 나처럼 학교 입학 전에 실습을 구했는데,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셰프인 크리스토프 미셸 락이라는 제과점에서 하게 된다고 했다. 나중에 리츠호텔의 실습 이야기를 꼭 해달라고 했다. 입학 1-2주 차 어느 저녁, 우리 그룹에서 처음으로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Nous somme ensemble” (우리는 함께야) 그 메시지 하나로 내가 얼마나 큰 힘을 얻었는지 그녀는 모를 것이다.



목요일 아침 실습은 여느 때보다 분주했다. 이제 반복되는 제품은 셰프의 시연 없이 시작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는데 아침에 인사했던 건너편에 있어야 할 엠마가 한동안 보이지 않는다. 아침 수업이 끝나기 한 시간 전이였다. 그녀의 손에 파란색 헝겊이 감긴 채 애써 슬픔을 감추며 환하게 웃으며 들어오는 그녀의 주위로 모두가 뛰어갔다. 아침에 도구 소독하다가 떨어지는 빵칼에 왼쪽 손목이 베였는데 4바늘 꼬메고 왔다고 했다. 상처 부위가 완전히 봉합되기 전까지 물과 밀가루가 닿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심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무거운 분위기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일하는 11명과 셰프에게 그녀는 일일이 찾아갔다. 자신의 부주의로 같이 협동해서 해야 하는 것들을 하지 못하는 것에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그리고 모두의 설거지 할 것들을 걷어가서 싱크대에 담가 놓았다. 이후 다들 제품을 만들고 있는데 한 손으로 행주를 들고 주변을 닦기 시작한다. 그녀가 백번 이해되면서도 그 뒷모습이 많이 속상했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메시지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내가 이제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Cette fois, je te dis que nous somme ensemble. N’hésitez pas à me demander, si tu aurai besoin de m’aider” (이번에는 내가 너에게 말할게 우리는 함께야. 네가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망설이지 말고 나에게 요구해) 


실습할때면 검은색 라텍스 장갑에 갇혀 있던 그녀의 다친 손목



터져버린 응어리 그리고 차가운 시선



라자는 자신과의 싸움과 숙제에서 잘못된 방법으로 모두의 미움을 받는 일이 생겼다. 사실 그가 짧은 시간에 내가 전해준 메시지를 얼마큼 받아들이고 변해갈지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심 노력해주길 바랬었던 것 같다. 집이 페랑디에서 지하철로 2시간 남짓 걸리는 곳에서 가족과 떨어져 사는 그는 등하교가 큰 문제이다. 오후 실습이 있던 날이었다. 저녁 6시 30분에 끝나는데 그는 자신의 도구만 챙기고 자신이 작업했던 공간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탈의실로 향했다. 결국 남은 누군가가 정리를 했고 탈의실에 뒤늦게 온 다른 친구가 라자에게 큰 소리로 잘못을 지적하고 다들 너의 행동을 옳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안하다는 말 없이 탈의실을 떠난 그는 그날 저녁 단체 채팅방에서 오히려 자신이 분노가 찬 듯이 말했다. 문제가 있으면 직접 내 앞에서 이야기하라면서 자신은 기차 시간 때문에 그랬다고 했다. 끝내 미안하다는 말이 없는 그를 비난하던 친구들. 셰프의 개입으로 결국 끝이 났다. 다음날 모두가 웃으며 인사는 했지만 나는 그 웃음들이 진심이 아닌 것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분명히 그는 잘못된 행동의 불에 다른 잘못된 행동의 기름을 부어 버렸다. 그만의 방법으로. 라자는 결국 스스로를 더 밀어 넣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날 이후 셰프와 자주 이야기 하는 라자의 표정이 어둡다


누군가가 무슨 일을 하지 않아도 다른 구성원이 있기에 주방은 돌아간다. 물론 힘이 들겠지만 끈끈한 조직일수록 공백의 크기가 작게 느껴진다. 변수가 많은 주방이다 보니 한 명의 부재는 일상적이다. 부재와 갑작스러운 사건의 희박한 장점은 조직이 더 끈끈해진다는 것이다. 나는 지나간 시간 위의 그를 합리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일반 제과점에서 수많은 성격과 장단점을 파악하고 직원들을 인사를 담당하는 것 또한 책임자의 몫이다. “뽑으려 하면 잡초처럼 자라고 가꾸려 하면 꽃이 핀다” 는 것은 내가 8년이란 경력 안에서 책임자를 하면서 내가 내리고 느낀 가장 큰 교훈이다. 문제의 중심에 있는 대부분의 친구들이 그날 이후 셰프와 각자 이야기를 나눴다. 책임자로서 희박한 장점을 경험해봤기에 나는 이 결과에 관심이 간다.






이전 06화 가지 같은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