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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Eyre Nov 02. 2019

가지 같은 시간

페랑디 4주 차 (2019.10.28 - 2019.11.01)



주말이면 새하얀 페랑디 마크가 새겨진 조리복과 앞치마는 따로 빨래를 한다. 옷들이 마르면 일요일 저녁에 정성스럽게 다림질을 해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놓는다. 잘 다려진 페랑디 조리복은 언제 봐도 설렌다. 꿈에도 없던 학교에서 기술보다 더 값진 것들을 배운 지 16일이 지났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스며들고 있었다. 약간의 긴장과 설렘, 이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다.



11월 1일은 프랑스 국경일이다. 그래서 이번 주 이론 수업이 전부 인터넷 강의로 대체되고 4일 동안 하루에 평균 9시간의 실습이 있다. 제과점에서 근무하는 시간과 강도에 비하면 월등히 수월하지만 알다시피 여기는 프랑스다. 불어와의 불가피한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렇게 나는 10월의 마지막 주를 시작했다.



 보고 따라 그리기도 어려운 케이크 위에 글쓰기





같은 반죽 전혀 다른 제품
12명의 한 그룹은 2주 단위로 한 셰프를 중심으로 팀이 된다. 팀원은 고정이고 담당 셰프가 바뀐다. 그리고 매주 2명씩 다시 6개의 작은 팀으로 나뉜다. 그 이유는 청소구역을 정하는 것 때문도 있지만 믹서기로 돌려야 하는 빵 반죽을 만들 때 작은 팀이 한 개의 믹서기를 같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번 주는 24명 중 가장 손이 빠르고 항상 제품으로 셰프의 칭찬을 받는 친구와 한 팀이 되었다. 그녀는 제과 관련 방송 출연 경험이 있으며 제품의 이해도가 남들보다 빠르다. 그녀가 보이지 않을 때는 셰프를 찾는 것이 더 빠를 정도로 그녀는 늘 셰프 곁에 있는 학구열이 뛰어난 학생이다. 기대가 컸던 만큼 걱정도 컸다.


반죽 온도 내리기 위해 행주 얼려서 반죽기에 붙이는 열정과 온전한 수작업



크루아상을 만드는 날이다. 제과 CAP 과정이지만 비엔누아즈리라는 품목으로 한국에서는 빵이라고 불리는 크루아상, 브리오쉬, 뺑 오 쇼콜라 제품은 제과 CAP품목에 속한다. 둘 다 경험이 있어서 움직임이 다른 팀보다 갑절은 빠르고 제과보다 제빵에 능숙한 나는 다른 날보다 자신이 넘쳤다. 크루아상은 반죽 온도가 다른 빵 반죽보다 낮아야 하고 반죽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문제가 생기는 제품이다. 그리고 접고 밀어 펴는 과정을 반복하게 되는데 여기서도 다른 제품들보다 신속성과 정확성을 요구한다. 심지어 대부분의 매장에서는 이 제품을 만들 때 기계를 사용하지만 우리는 전부 손으로 다 만들었다. 나는 항상 제품이 나오면 그녀의 제품을 먼저 확인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녀의 제품은 늘 마지막 평가에서 칭찬을 놓친 적이 없기 때문에 좋은 교육 자료가 된다. 완성된 제품만 봐도 과정과 어떤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역추적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과 전문가의 시선이 같을 수 없다. 나는 지금 제품을 구매하려는 고객의 입장이 아니다.



완성 기준을 높이고 배울때는 누구보다 겸손하자



그녀와 나의 크루아상은 같은 반죽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달랐다. 일단 나와 그녀는 크루아상을 만들 때 서로 맞춘 건 아니지만 셰프가 알려준 방법대로 하지 않았다. 나는 가끔 여러 개의 제품이 나올 경우에는 나만 알아볼 수 있는 표시를 하고 제품을 다양하게 만들어서 결과물을 확인한다. 제과 CAP에서 원하는 태도와 방법은 있겠지만 그것에서 멈추고 싶지 않았던 것이 크고 몇 번 없는 기회에 다양한 결과물로 내가 원하는 제품을 만드는 방법을 찾아내고 싶었다. 크루아상 만들 반죽을 자르고 대부분의 반죽을 윗부분을 당기면서 단단하게 말았더니 선명한 결들이 사라지고 크루아상의 단면도가 좋지 않다. 단면도가 좋지 않다는 것은 식감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의 제품은 완벽에 가까웠다. 나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크루아상 대회에 나가도 될 정도의 제품이라는 셰프의 특급 칭찬을 받았다. 내가 틀렸다가 아니라 내가 부족했다. 실습실에서 나와서 내가 만든 크루아상을 한참 바라봤다. '고객이 만족하는 제품이기 이전에 전문가가 인정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자'



태어나서 처음 배우고 작업해 보는 초콜릿 장식물





하나의 꿈, 각기 다른 소리



라자라는 친구는 우리 그룹에서 키가 제일 크고 프랑스 남부 마르세이유가 고향이다. 윗입술을 반쯤 덮은 덥수룩한 수염과 이른 아침마다 뒤로 넘겨 단단하게 고정하고 오는 그의 곱슬머리가 인상적이다. 엄청난 거구임에도 불구하고 제품을 만들 때는 누구보다 섬세하다. 사진으로 본 제품은 제과점에서 팔아도 될 정도다. 보안 관련 일을 했었고 제과점에서 일한 경력은 없지만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제과의 이론과 실기를 익히기 위해 학교에 입학했다. 커피보다 차를 좋아하고 디저트를 만들면서 자신이 차분해졌다고 했다. 그는 나 다음으로 학교를 일찍 와서 우리는 수업 시작 전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나를 배려해서 불어를 끊어서 말해주고 느리게 말해주는 그는 나에게 개인 불어 선생님이다.


두 명 이상이 존재하는 주방은 관현악단과 같다. 사람마다 연주하는 악기들의 소리가 다르다. 한 무대에서 같은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만 있지 않다. 누군가는 일이 느리고 누군가는 그렇지 않다. 누군가는 꼼꼼하지만 누군가는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는 자신과 다른 소리를 내는 친구들이 불편했다. 라자는 차분하게 제과 일을 하는 것을 즐겨했기 때문이다. 주방에 첫 책임자가 되었을 때 라자와 같은 친구들도 난 필요했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줬고 해결해줬다. 그는 나보다 나이가 많고 두 아이의 아빠이지만 주방에서는 그의 나름대로 성장통을 겪고 있다고 느꼈다. 부족한 불어로 경험에서 우러나온 중립의 입장에서 내 의견을 이야기해줬다. 들어줘서 고맙다는 그에게 더 큰 힘이 돼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우린 아직 서로의 악기를 모른 체 무대에 오른 것뿐이다. 그리고 그가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숙제라고 믿는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 동안 내가 건네준 액상 홍삼을 마셨다.



갈레트 2가지 방법과 칭찬 받은 하트모양의 빨미에



그룹 발표 준비 그리고 "함께"

한국의 "제과 이론"이라는 수업과 비슷한 개념인 "기술"이라는 이론 수업이 있다. 12월 10일에 CAP제과 모의고사가 있다. 그전에 24명이 4명씩 팀을 만들어서 제과 원재료에 대해 셰프와 다른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시식하는 발표 수업이 있는데 요즘 우리들 사이에 큰 이슈다. 어학원에서 했던 발표 수업과는 무게 자체가 다르다. 우리 팀의 주제는 크림이다. 졸업생들이 했던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사실 이때부터 각 팀끼리 시간만 나면 삼삼오오 모여서 발표 계획을 짜기 바쁘다. 학교가 끝나고도 SNS로 노래 가사를 바꿔서 부르자거나 연극을 해보자고 하던가 또는 녹화용 카메라가 있는지 등등 이야기가 오간다. 혼자가 아니라 그룹으로 하는 하는 과제는 행여나 부족한 내 불어 때문에 그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강한 지원군이 생긴 것이다. "함께"라는 그들의 말이 외국인인 나에게 어찌나 힘이 되는지 모른다.







 Salon du chocolat
1994년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시작해 한국을 포함하여 16개국 32개의 도시에서 매년 열리는 세계 최대 초콜릿 박람회이다. 전 세계의 유명한 초콜릿 장인들과 명장들과 초콜릿 애호가들이 모인다. 프랑스에서 시작한 만큼 다른 나라에서도 일부러 이 박람회를 위해 파리에 방문하는 사람의 수도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각종 초콜릿 대회와 잡지, 재료, 도구, 원재료 등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다양한 트렌드의 초콜릿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도 가능하다. 일정에 따라 프랑스에서 유명한 셰프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기도 하다.


25번째 파리 Salom du chocolat


2019년 10월 31일부터 11월 3일까지 5일 동안 파리 14구의 Place de la porte de versailles에서 25번째 샬롱 뒤 쇼콜라가 열린다. 한국에서는 3번, 파리는 작년에 이어 두 번째 방문이다.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입장시간 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입구부터 가을비 냄새와 섞인 진한 초콜릿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프랑스인들 포함한 전 세계인들의 초콜릿 사랑은 남다르다. 초콜릿으로 옷을 만들어 그것을 입고 하는 패션쇼가 샬롱 뒤 쇼콜라의 개막을 알렸다. 이 곳에서 페랑디 유니폼을 입은 학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학교 소속 셰프의 시연을 볼 수 있다. 작년에 왔을 때는 초콜릿을 공부하는 동생과 함께 였다면 이번에는 페랑디와 함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그들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디저트를 만들 줄 꿈에도 몰랐는데 지금은 페랑디 학생이다. 페랑디 학생으로서 방문하는 샬롱 뒤 쇼콜라는 작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벅차다.



페랑디 초콜릿 책과 쉽게 볼수 있는 페랑디 학생들과 학교 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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