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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Eyre Oct 19. 2019

가지 같은 시간

페랑디 2주 차 (2019.10.14 - 2019.10.18)



지나고 보니 순간은 짧았지만 하루는 길었다. 길었던 하루가 모여 다시 짧은 일주일이 됬다. 비가 내리는 날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날도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파리의 날씨처럼 나의 감정도 그랬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는 설레고 있었다. 내가 처음 제과제빵을 시작하던 10년 전 겨울의 그때처럼.


같은 목표를 향한 24명이 함께 하는 온전한 첫 번째 주였다. 새벽과 아침의 사이에 우리는 있고 뜨거운 열정은 서로의 난로가 된다. 어두웠던 주방에 불이 켜지고 우리는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공간에서 같은 디저트를 만든다. 오븐이 적정한 온도가 되면 어김없이 해가 밝는다. 꿈이 있는 우리의 아침은 그렇게 조금 특별하게 시작한다.



매일 새벽, 첫 지하철을 타고 1등으로 학교에 도착한다






이번 주는 30시간의 실습과 5시간의 이론수업을 들었지만 매주 변경된다. 시간표를 학교 관리 프로그램으로 핸드폰에 입력하면 달력에서 수업 시간과 담당 선생님 확인이 가능하다. 어플을 통해 수업의 일부분을 진행하기도 하고 추가적인 이론 자료 확인 및 출력이 가능하다. 프린터기를 이용할 수 있는 카드가 있으면 페랑디 입구 왼쪽의 도서관에서 무료로 출력이 가능하다. 또한 이론 수업 강의실과 주방의 위치는 거의 변화가 없고 접근이 쉽다. 외국인인 나에게는 큰 이점이다. 적응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주방은 음식을 만드는 “공간”이다. 공간에서 이용자의 동선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주방에서의 동선은 많은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나는 낯선 곳에서 큰 것을 먼저 확인한다. 이후에 작은 것들을 확인하면서 공간을 익히고 동선을 파악한다. 나는 모든 것이 낯선 곳에 있다. 주방의 모든 것이 새롭고 나는 낯선 공간을 경험한다.



5시간이 넘는 실습시간은 2시간의 이론시간보다 더 빠르게 지나간다







흐르는 불어에 온 몸을 던지다




외국어는 귀로만 듣지 않는다. 온몸으로 듣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익숙하지 않은 문장을 하루에도 수천번 온몸으로 듣는다. 그것들 중에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은 많지 않다. 나에게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해할 수 없을 때마다 답답하다. 몇 번씩 친구들을 통해 재 확인한다. 완전하게 모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면 이해할 수 없을 때 답답해하지 않을 적당한 자신감이 필요하다. 나의 불어와 그들의 불어의 타협점을 찾아가고 있다. 이미 우리는 출발이 다르게 시작했다. 그러나 같은 끝에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오렌지로 작은 주방을 경험하다



제과 기술에 관한 이론 수업은 늘 흥미롭다. 정확히 말하면 그 수업에서 했던 조별과제다. 12명씩 2개의 그룹을 만든다. 그리고 각 팀원 모두의 손을 이용하여 오렌지를 최대한 빨리 처음 사람부터 마지막 사람에게 까지 신속하게 옮기는 것이다. 처음엔 오렌지를 다음 사람에게 던졌다. 그리고 수정한 방법은 서로의 손을 엇갈리게 잡고 빠르게 전달하는 것이다. 셰프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고 했다. 재치 있는 친구의 좋은 아이디어로 우리 그룹이 이겼다. 12명의 두 번째 손가락을 지그재그로 겹쳐 경사지게 하고 떨어지지 않게 오렌지를 굴렸다. 2초가 안 되는 시간이었다.


실무에서는 총괄 셰프의 순간적 판단이 매우 중요하며 그 판단으로 많은 제과사들이 움직인다. 오렌지를 떨어지지 않게 이동하는 것은 “안전”을 의미한다. 한 친구의 의견에 수긍하여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질서”를 의미한다.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는 것은 “동의”, 빠르게 오렌지를 이동하는 것은 “속도”를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는 12명이었으니 모든 것은 “협동”이었다. 오렌지 하나로 작은 주방을 경험했다.



2초가 안되는 시간을 더 줄여보기 위해 고민하는 상대 팀




왜 우리는 제과 CAP에 열광하는가?


8년이라는 시간의 절반은 매장의 책임자로서 시간을 보냈다. 페랑디는 책임자였던 나를 겸손하게 하고 내 이론과 기술을 풍부하게 한다. 수많은 유학생들이 프랑스에 와서 제과 CAP를 취득하기 위해 불어 공부를 한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교육방법과 제과사를 대하는 태도는 왜 그들이 제과제빵의 강국으로 불리지는 쉽게 알 수 있다. 불어를 배우는 시간에 비하면 CAP의 시간이 길지 않은 시간일 수 있다. 아무나 시작할 수 있지만 아무나 끝낼 수는 없다. 그들은 특별한 프랑스의 제과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나는 적어도 기술보다 더 준비된 제과사의 “자세”를 배우고 있다. 아니 어쩌면 잊지 말아야 할  10년 전 초심에 대한 복습일지도.



프랑스 노르망디와 알자스의 사과 타르트 비교 수업


칭찬 받은 타르트 반죽, 몸이 하나씩 기억해 나가고 있다



프랑스는 오랜 시간 이 나라만의 제과 문화가 확고하고 자부심도 강하다.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가 제과제빵의 본 고장이라고 이야기한다. 만드는 사람의 시간과 노력에 비해 비효율적인 제품이라고 생각했던 제품들이 다 이유가 있다. 이유 없는 재료는 없다. 제과사가 재료를 구매하고 생산을 하고 진열을 한다. 고객이 진열된 제품을 선택하고 더 나아가 구매한 고객의 의견을 듣는다. 고객과 생산자가 서로 존중하는 모습. 이 모든 것이 이유 있는 그들만의 자부심이자 문화이다. 나는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경험하기 위해 이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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