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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Eyre Oct 12. 2019

가지 같은 시간

페랑디 1주 차 (2019.10.10 - 2019.10.11)



8월 10일, 새벽 5시 20분을 지나는 공기가 낯설다. 지난 8년이란 시간의 새벽 공기가 옷깃을 파고들었고 그 공기는 생각보다 차가웠다. 8년이란 시간이면 익숙해질 줄 알았다.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몸과 마음을 이끌고 지하철을 탔을 때는 해가 뜨기 전이다. 파리의 새벽은 또 새로운 하루를 준비하고 있다. 첫 등교다. 그때까지는 전혀 몰랐다. 내가 얼마나 나약하고 부족한 존재인지를.



페랑디 파리 근처의 새벽 풍경, 낯선 차가움을 녹여주는 커피 한잔



새벽과 제과 제빵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매일 아침 우리가 맡는 구수한 빵 냄새는 새벽이 만들어낸 값진 결과물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제과제빵 실무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새벽은 친해져야만 하는 피할 수 없는 시간인 것이다.






내가 수업받는 과정은 제과 CAP 성인반(대부분이 제과 입문자)이며, 총 24명(프랑스인 20명, 외국인 4명)으로 구성된다. 나는 이 중에서 나이가 어린 편에 속하고 나를 제외한 한국인이 한 명 더 있다. 우리는 12명씩 2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실습을 하게 될 것이고 한국인 2명은 서로 다른 그룹에 속하게 된다. 수업 일정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은 입학 전에 미리 메일로 알려준 인터넷 사이트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학교의 이름이 새겨진 학생증과 프린터기를 이용할 수 있는 총 2장의 카드를 받았다. 선생님들과 학생들 상호 간의 어색한 소개를 시작으로 주로 이용하게 될 주방과 강의실을 둘러보고 학교에 대한 생활을 안내받는 것으로 첫날이 지났다. 어색하고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도 우리의 눈빛은 불탔다.



첫날 불어 이해 50% 눈치 30% 둘다 불가능 20% = 난국
페랑디에서의 첫 점심 식사. 평화로운 점심 시간





교육 현장의 불어는 나에게
철저하게 불친절하다

면접을 보기 위해 왔던 올해 2월의 페랑디 파리 캠퍼스와 장소는 같지만 나는 달랐다.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곳은 파리 안의 작은 프랑스였다. 외국인의 눈으로 보는 작은 프랑스는 작지만 않았다. 꿈이 있는 다양한 국가, 다양한 나이의 사람들 속에서 나 또한 작은 꿈 하나를 이루기 위해 이 곳에 존재했다. 스스로 대견했다는 것도 잠시다. 대화의 중점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논리적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갑작스러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늘 온 신경을 곤두 세우고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불어는 나를 스스로 작아지게도 커 보이게도 한다. 프랑스인들에게도 생소한 전문적인 단어가 외국인인 나에게는 쉬울 리 없었다. 친절한 설명은 프랑스어를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조건 이후에 주어지는 특별한 혜택처럼 느껴졌다.




 내 사물함에 붙여진 스티커와 학교 정문, 언제 봐도 멋있는 "페랑디"





페랑디 셰프가 생각하는 제과가
나에게 미치는 영향




제과 기술에 관한 두 시간 동안의 이론 수업이었다. 학생들의 질문에 대답을 하던 셰프가 우리에게 질문했다. 제과라는 직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대답이 다양했다. 개인위생, 청소, 자신감, 인내심, 기술, 협동심, 마무리, 겸손, 친절, 맛, 장식, 진열, 성실, 발전, 창의성, 이론과 연습 등이었다. 셰프는 그 모든 것을 포괄할 수 있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있다고 했다. "La régularité" 번역하자면 "일정함 또는 규칙성"이다. 우리의 대답이 모두 달랐지만 틀리지 않았다. 맛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닌지 이유를 말하며 다시 질문하는 학생에게 셰프는 "제빵의 가장 중요한 것이 제품의 냄새라면, 제과의 가장 중요한 것은 제품을 보는 시각에 있다. 제품의 맛은 모든 것들 중에 가장 마지막 중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제과제빵을 직업으로 가지려는 24명의 입문자인 우리에게 셰프는 무엇을 전달하고 싶었을까? 나에게 강한 여운을 남겨준 수업은 그렇게 끝났다.





생각해 보니 셰프는 초지일관 소비자의 관점에서 제품의 중요한 부분을 이야기했다. 제품을 생산하는 사람도 잠재적 소비자다. 소비자를 고려하지 않는 제품은 기술자의 자랑과 스스로의 만족에 그친다.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의 입장에서 제품을 접할 때 느끼는 순서를 매기면 셰프의 말이 옳다. 사실 정답은 없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정답이었다. 한국 제과점에서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을 하는 나를 끌고 온 원동력이 무엇이었을까? 나는 무엇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제과제빵이라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어떤 빵과 디저트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오랜 갈증이 페랑디를 졸업할 때는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하는 페랑디 제빵 주방의 막 나온 유럽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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