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랑디 7주 차 (2019.11.18 - 2019.11.22)
엘로디는 내가 그녀의 일을 도와줘도 이제 엄지를 들어주지 않지만 여전히 밝은 얼굴로 곳곳을 누비며 정리하기 바쁘다. 내가 오히려 그녀의 일을 도와주고 양손으로 엄지를 들어 올려준다. 시리엘은 파리에 있는 호텔에서 실습하기를 간절히 원했는데 그녀의 소원대로 파리 <Crillon> 호텔에서 6개월 동안 실습하게 되었다. 아직 조리모를 쓰지 않은 그녀의 금색 머리와 동그란 금색 뿔테 안경 틀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유난히 더 반짝거린다. 엠마는 이제 상처 부위를 겨우 가릴만한 작은 밴드를 붙였지만 그녀의 작은 왼손은 여전히 검은색 라텍스 장갑에 가려져 있다. 그녀의 색이 다른 두 손이 분주히 움직인다.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면 상처를 회복하는 속도가 이렇게 빠를 수 있다는 열정을 보여주고 있는 그녀다. 라자는 그날 이후 나와 수많은 대화로 무엇이 잘 못 된 행동인지 정확히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주변의 시선은 차갑다. 그런 그와 이야기를 하고 들어주는 시간도 나에게는 참 소중하다. 각자의 위치에서 우리는 또 한주 바쁘게 살았다.
그들과 대화하는 모든 순간이 그들의 시간인 동시에 나의 시간이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등교와 하교를 하는 순간들도 완벽한 나의 시간이다. 그들을 통해 프랑스인들을 바라보고 내가 나의 과거를 여행하고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나의 시간이다. 완전히 내 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받아 드리지 못한 시간도 있지만 그것 또한 피할 수 없이 나의 시간이다. 프랑스에 온 지 600일이 넘어서야 그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온전한 프랑스를 바라보는 나의 시간을 가지는 중이다
탈의실, 우리만의 공간
내가 항상 제일 먼저 학교에 도착하지만, 수업이 끝나고 옷을 갈아입을 때는 내가 제일 늦게 탈의실에 도착할 때가 많다. 그래서 혼자 옷 갈아입는 시간이 많다. 회사를 다니면서 직급이 올라가다 보니 제일 먼저 몸에 베인 습관 중에 하나다. 이것이 모범된 행동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누군가에게 이해 못할 행동일 수 있거나 직원들에게 불편할 수 있지만 나에겐 식사시간에 식사를 하듯 당연한 행동이다.
이번 주는 탈의실에서 친구들과 옷을 갈아입는 시간이 유난히 많았다. 유럽 영화에서만 보던 탈의실. 이 곳은 촌스러운 노란색이 도배되어 있는 곳이다.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거쳐 갔는지 이름이 부착된 곳은 마저 떼어내지 못한 졸업생들의 이름표들이 부착되어 있다. 탈의실이 가까워질수록 두 그룹의 친구들의 목소리도 가까워진다. 옷을 갈아입는 도중에도 입은 쉬지 않는 아직 해야 할 말이 많은 친구들이다. 누군가의 참아 왔던 방귀를 힘차게 터트리는 것으로 웃음바다가 되며 대화가 시작된다. 두 명의 셰프들의 시범에 대해 논하는 이야기, 다른 학교와 제품을 비교, 수업 내용을 확인하는 이야기, 어떤 친구의 오늘 한 행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던 그곳은 마침내 토론장이 된다. 어떤 친구들은 옷을 걸친 체 대화를 위해 완전히 바닥에 앉았다. 가만히 듣고 있다가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까지 설득해야 하는 이야기야?’ '이 이야기가 그렇게 웃긴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그들의 이야기를 뒤로 하고 그들을 위해 탈의실 문을 꼭 닫고 나왔지만 제법 멀리까지 그들의 희미한 소리가 탈의실 복도에 닿았다. 숨기지 않은 민낯의 이야기들이다.
가장 빠른 사람, 그들이 기억하게 될 나
10년 전 제과제빵 학교를 졸업하고 제과점에서 인턴으로 처음 일을 할 때다 생각난다. 선배들이 손이 너무 느리고 이해도가 부족하다며 아직 한참 어린 나에게 다른 일을 해볼 것을 권유했었다. 혼자 타지에서 힘든 시간을 가졌다. 어린 나이에 체력보다 마음이 힘든 시간이었다. 그리고 4년 만에 가장 느렸고 이해도가 부족한 나는 그 제과점의 부점포장이 되어 나에게 그 이야기를 했던 사람들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8년이 지나서 프랑스 파리의 페랑디의 학생이 되었다.
24명 중에 가장 빠른 사람은 나라는 것은 이제 셰프도 인정한다. 셰프가 알려준 작업 순서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는 제외한다. 그럴 때는 일부러 조금 속도를 늦춰 2~3번째쯤에 끝나면 앞선 사람을 보고 할 수 있는 눈치도 생겼다. 내가 일등으로 작업이 끝나면 그다음 할 것들을 다른 친구들을 위해서 준비한다. 현장 경력이 비록 제빵 위주이지만 책임자를 해봐서 인지 일을 하면서도 늘 그다음을 생각하고 전체를 보려고 하는 것이 속도에 큰 영향을 준다. 바둑을 둘 때 몇 수 앞을 본다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그리고 주변 정리를 하면서 제품을 만들면 잠깐 미루고 나중에 한 번에 정리하는 친구들보다 갑절은 빨리 할 수 있다. 눈치도 하나의 기술이다. 눈치와 센스가 없다면 어떠한 직업이라도 절반은 정도는 손해를 보고 시작하는 것과 같다. 그들이 몇 년이 지나도 혹시나 나를 기억해 준다면 가장 빨랐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 가장 성실했고 부지런했으며 누구보다 협동심을 잘 아는 친구로 기억되고 싶다. 앞으로 나와 함께 할 누군가에게도 제품을 만드는 기술이 뛰어난 사람보다는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올바른 제품을 만드는 한 명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그것이 내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처럼.
무거운 어깨, 발표 준비
12월 4일은 우리 그룹이 그룹 발표를 해야 하는 날이다. 라자는 우리 그룹이다. 월요일 오후에 발표 그룹 4명 친구들과 학교 근처 카페에서 발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나는 전체를 4개로 나눠 가장 쉬운 부분을 맡았다. 내가 그들에게 프랑스를 느끼듯이 그들도 나를 통해 한국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에 파워포인트 작업을 내가 하겠다고 그들에게 대뜸 이야기했다. ‘언어는 어쩔 수 없이 그들보다 부족하니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에서 나온 결론이었다.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그동안 발표한 그룹들의 문제점을 보안시켜서 나만의 스타일로 새롭게 만들어서 그들에게 소개하고 싶었다. 카페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고민이었지만 정말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다. 라자가 화장실에 다녀온 다더니 모두의 음료를 계산하고 와서 영수증을 우리에게 내민다. 작은 변화처럼 느껴졌다. 자신도 자신이 부족한 부분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나 싶어서 먼 곳을 쳐다보며 피식 웃고 남은 커피를 마저 마셨다. 나는 서툰 표현의 방법을 잘 알고 있다. 모임이 끝나자 멀쩡했던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그리고 이내 굵어진다. 갑작스러운 결정의 책임감에 어깨는 무거웠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창작의 고통
내가 뽑은 CAP 시험 중의 화룡정점은 ‘Entremets’라고 불리는 무스나 케이크 위에 초콜릿을 녹여 종이로 만든 주머니를 사용해 글씨를 쓰는 것이다. 일단 일반 글씨 쓰는 것처럼 손을 바닥에 댈 수 없고 짧은 시간 안에 끊기지 않고 빠르게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입학 이후 내 걱정 중에 하나다. 심지어 주제만 주어지고 창작을 해야 하는 것이다. 어느 위치에 글씨를 써야 할지 어떤 것을 선택하여 어떤 테마로 꾸미게 될지 색감의 조화도 봐야 하고 짧은 시간에 순간적으로 판단하고 정해야 할 것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프랑스인들에게도 흥미로울 수 있지만 쉬운 작업은 아니다. 두 번 정도 학교에서 시간을 측정해 가상 작업을 해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넉넉한 시간은 아니었다. 시험 당일날 이 것이 내 발목을 잡을지 나의 오랜 걱정에 종지부를 찍게 도와줄지 아무도 모른다. 창의성도 규칙 안에서 존재한다. 내가 어려워하는 부분과 그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이 동일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프랑스와 한국의 특별한 날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 기술이지만 경력자인 나에게도, 어느 제과점에서도 이 기술이 적용된 제품은 보기 힘들다. 특별한 행사 때문에 주문을 받아 고객이 원하는 글씨만 이색적으로 쓰는 개인 소규모 사업장도 그 이유가 될 수 있다. 다수의 동일한 제품의 방식이 사라져 가는 것의 공통점은 고객이 더 이상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프랑스 시험에서 이 부분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 ‘제과를 대하는 태도의 계승’ 그것 말고는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가장 혼자라고 느끼는 시간
삼일에 한번 정도는 불어로 인스타에 일기를 쓴다. 내가 바라본 프랑스에 관한 것이다. 프랑스 친구들과 셰프도 내 글을 본다. 그들을 위한 것도 있다. 그곳에 이런 글을 남긴 적이 있다.
여러 가지 제품의 순서가 얽혀 있는 주방에서는 셰프의 계획대로 어느 날은 준비만 하느라 제품이 나오지 않는 날도 있지만 어느 날은 그동안 밀려있던 제품이 한 번에 생산되는 날이 있다. 학교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오후 실습이 끝나니 이미 어둠이 찾아왔다. 왼쪽 어깨에는 도구가방이 걸려 있고, 두 손으로 내가 만든 제품 박스를 4개나 들고 나오는데 비가 내린다. 어두운 방에 불을 켜고 들어간 뒤 작고 작은 방의 냉장고에는 다 들어가지도 않은 양이다. 부모님이 무척이나 생각나서 전화하려고 보니 한국시간은 한 밤중이다. 13년째 문득문득 찾아오는 감정이지만 이런 날이면 마음이 좋지 않다. 나보다 더 빵과 디저트를 좋아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나가면서 보는 제과점 사진들과 기사들도 빠지지 않고 나에게 보내주시며 무뚝뚝하게 그의 방법으로 격려해주는 그에게 제대로 내가 만든 제대로 된 제품 한번 대접한 적이 없다. 왜 그랬을까 하는 마음에 또다시 같은 그리움과 슬픔에 뒤늦게 탈의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현장에서 만드는 제품은 학교에서 만드는 제품보다 조금 더 다양하고 완벽한 맛을 선사하지만 진정한 내 제품이 아니다. 각자의 공정에 많은 직원이 참여해서 만들고 이미 만들어진 배합표를 정해진 숫자만큼만 만드는 것이다. 학교에서 만드는 제품은 계량부터 오븐에서 꺼내는 순간까지 수량은 적지만 모든 순간에 내 손이 온전하게 거친다. 그리고 가족들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포장하는 순간까지도. 모양이 조금 예쁘지 않고 맛이 더 완벽하지 않아도 그 제품에 더 많은 정성을 들여가며 만들었는지를 나는 잘 안다. 피할 수 없는 온전한 책임감과 현장보다 더 쏟아낼 수밖에 없는 정성. 그래서 배움의 과정에서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보는 훈련이 이 길을 걸어야 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하면서도 특별한 시간 속에서 탄생하는 결과물이다.
셰프가 생각하는 나
금요일에는 테스트가 있었다. 2주 전 시뮬레이션과는 품목이 달라지고 조금 더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여전히 나의 속도는 제일 빠르다. 이제 친구들이 내 순서를 보고 따라오는 정도가 되었고 2-3등을 하기 위해 눈치 볼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내가 빨리 끝내면 친구들을 위해 공동으로 쓰는 것들을 준비했다. 우리가 테스트를 보는 동안 셰프는 한 명씩 데리고 나가서 면담을 했다. 학교 생활은 어떤지, 실습은 어디에서 하게 되는지, 문제점은 없는지, CAP 준비는 개별적으로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나 역시 셰프의 입장에서 수많은 직원들과 이런 것들에 대해 질문 내용들은 다르지만 나눠보았다. 가장 큰 목적은 직원의 현상태를 확인하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에 있지만 사실 직원들이 달가워하지 않는 오래된 의무 문화 같은 것이다. 그래서 직원이 자발적으로 요청하거나 자유로운 공간에서 많이 이뤄지는 추세다.
공동체 안에서의 서로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조직의 단합력을 의미하고 그것은 제품의 품질과 생산성까지 영향을 미친다. 난 궁금했다. 셰프가 외국인이고 부족한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말이다. 불과 2년 전에는 면담을 해주던 내가 외국의 한 제과 학교에서 셰프에게 면담을 받는 학생이다. 처음으로 그가 봤던 내 모습의 이야기를 들었다. 비록 손으로 잡을 수 있거나 기록될 수 없는 몇 마디였지만 나는 그의 말에서 진심을 느꼈고 한편으로는 감사했다.
나는 네가 우리 학교에 들어오게 돼서 너무 만족해. 문제에 대해 개선하려는 노력과 주변 사람들을 도와주는 너의 모습을 높이 평가한다. 불어가 부족한 것은 당연하다. 나는 그것을 어떻게 네가 극복하는지를 보았고 너의 태도를 보았어. 그리고 인스타에 올리는 불어 일기도 잘 읽고 있다. 나는 너의 생각을 가치 있게 생각한다. 지금처럼 잘해보자.
셰프는 그리고 나서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몇 번 툭툭 쳤다. 그의 작은 행동이 나에게는 큰 의미와 무게로 다가왔다. 학교는 기술자랑 하는 공간이 아니고 배우는 공간이다. 기술자랑은 그것을 평가해주는 각종 대회가 많다. 그들이 원하는 것들은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나는 그것들을 반복하고 복습하면서 그들을 통해 진짜 프랑스를 보고 있는 것처럼, 나를 통해 한국을 보게 될 그들에게 조금은 특별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