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여행기
라오스에 실제로 가본 적은 없었지만 어릴 때부터 매우 익숙한 나라였다. 아빠 때문이었다. 옛날부터 아빠 손엔 얼룩덜룩한 흰 반점이 많았는데 어린아이 눈에 그것은 매우 이상한 현상이었다. 나한테는 없었으니까.
‘아빠, 아빠 손은 왜 하얀 거예요? 상처예요?’
아빠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응, 라오스에 파견 나갔다 와서 그래. 거기서 생긴 상처야’
아, 라오스는 정글 같은 곳이구나. 우리 아빠는 라오스에서 싸우다가 이렇게 되신 건가? 물론, 아빤 파견 갔다 온 적이 없었고 손은 멜라닌 색소 부족으로 인한 백반증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미지의 세계에 열광했다. 만화로 보는 세계 역사를 끼고 살며 바다 건너 이름조차 생소한 저 나라에는 뭐가 있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쳤고 때마침 아빠는 거기에 MSG를 더해주신 거다.
나의 상상 속 라오스는 숲이 울창한 정글이었고 그곳에는 나보다 어두운 피부색의 원주민들이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그런 곳이었다.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 설사 20년 전 나의 상상 속 라오스가 실제 했더라도 나무와 산과 원주민의 터전 모두 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파괴되어 다른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특히 루앙 프라방의 방비앵과 블루라군은 전 세계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인기 여행지다. TV 프로그램에도 등장한 이 곳은 유독 한국인에게 인기가 많은데 오죽하면 근처에서 판매하는 뚝배기 라면을 시켜놓고 인증숏을 찍는 게 필수 코스일 정도다. 튜브를 타고 떠내려가다가 마음이 동하면 올라와 맥주 한 병 마시고 다시 첨벙 빠져드는 곳. 온갖 레저와 액티비티가 혈기방장 한 젊은이들을 유혹하는 곳이다. 하지만 나는 안정을 원했다. 번아웃으로 의욕, 식욕, 물욕, 탐욕 등 하고자 하는 모든 욕(欲)이 증발해 버리고 심지어 우울증은 아닐까 증상을 검색해보던 때였다. 지친 심신을 끌어올려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조차 사치라고 생각했던 때라 그냥 마음의 평화가 필요했다. 자연 속에 안기고 싶었다. 그리고 시기적절하게 팍세가 다가왔다.
라오스 비엔티안 국제공항에 도착하자 동남아에 왔다는 걸 실감했다. 내가 찬양해 마지않는 이 후텁지근한 날씨, 적당한 습도와 쨍한 태양 그리고 손에 닿을 듯 낮게 뜬 흰 구름까지. 내내 유럽의 쾌청한 날씨, 여름을 지나 가을로 향하던 서늘한 날씨 속에 있다가 라오스의 동남아형 날씨를 만나니 오히려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라오스는 지금(언제나) 여름이다.
30도가 넘는 기온에 정수리 한가운데가 타들어갈 것 같은 더위에도 마냥 좋았다. 수도를 피해 가는 건 나의 여행 숙명인 건지 이번에도 비엔티안은 공항 구경만 하고 곧바로 국내선을 타고 참파삭으로 이동했다. 수도 비엔티안이나 루앙프라방에 비해 비교적 덜 유명한 참파삭은 대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도로 위 차나 오토바이가 드물고 높은 건물이라곤 눈을 씻어도 찾아볼 수 없는 곳. 라오스 전체 면적의 80%가 산이라는데 그 산이 모두 참파삭 지역을 둘러싸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숙소에 도착하자 때마침 6시, 해가 들어가며 하늘이고 땅이고 구분 없이 곳곳에 흔적을 뿌리고 있었다. 메콩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달려가 마지막 한 줄기마저 화려하게 사라지는 팍세의 노을을 지켜봤다. 첫날부터 운이 좋네.
공장이 없어 유독 하늘이 맑고 공기가 깨끗한 팍세는 관광지라기보다 한적한 시골마을에 가까운 곳이다. 곳곳에 위치한 불교사원과 커피 농장을 제외하고는 관광 인프라가 전무하다. 그런데도 종종 등산화를 대롱대롱 매단 거대한 배낭을 짊어진 서양인들이 이곳저곳을 배회하는 게 눈에 띄었다. 대부분 프랑스인들인데 참파삭 지역이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던 곳이라 그들에겐 꽤나 잘 알려진 지역이라고 한다. ‘서양애들이 배낭 메고 오면 일본애들이 오고, 그다음엔 한국애들이 왔다가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문 닫고 들어온다’며 가이드는 농담을 했다.
참파삭 지역에는 굉장히 많은 사원이 분포해 있는데 그중에서도 팍세의 왓푸 사원은 규모가 앙코르 와트를 능가한다. 왓푸 사원(Vat Phou)은 시바신을 모시는 곳으로 푸 카오(Phou Khao) 산에 위치해 있다. 기원이 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현재 남아있는 구조는 11세기에서 13세기에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침식, 약탈 등 여러 이유로 사원 대부분이 파괴되어 실질적으로 남아있는 건 윤곽뿐이라 사원의 모습은 기록을 따라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기 나름이다. 그래서 평소 같았으면 내 속도대로 돌아다녔을 왓푸 사원도 가이드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자 발걸음을 맞춰 걸었다. 일단 ‘시바’라는 이름의 신을 모시는 것부터가 흥미롭지 않은가?
웅장했을 게 분명한 사원 입구엔 남근 모양의 조각상이 일렬로 서 방문객을 맞이했다. 산에 위치한 왓푸 사원은 산 전체가 사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넓고 가파르다. 끝없는 계단을 올라야만 사원 꼭대기에 오를 수 있기 때문에 강제 운동이 시작되었다. 땡볕 아래, 좁고 가파른 돌계단을 기다시피 올라가면 뒤에 숨어 있던 또 다른 계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76개라고 들었는데 거짓말일 게 분명하다. 체감상 150개는 되는 듯했다. 봉우리를 하나씩 넘는다는 심정으로 계단을 오르다 보면 눈앞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운 팍세의 전경에 터질듯한 허벅지의 아픔도, 목덜미에 내리쬐는 더위도 사라져 버렸다. 흔적뿐이라고 생각했던 왓푸 사원을 자세히 살펴보면 남아있는 벽에 새겨져 있는 조각상 하나하나의 상징과 의미가 보이고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시바신과 그의 아내 우마신에 관한 신화적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왓푸 사원 꼭대기에 올라 주변 산봉우리와 비슷한 눈높이에 서게 되면 내가 걸어온 길과 팍세의 전경이 한눈에 보인다. 머리 위 하늘은 손을 뻗으면 닿을 듯했다. 파괴된 사원, 말라버린 호수, 어느 것 하나 화려하지 않은데 입이 벌어질 정도로 아름답다. 자연의 힘이다. 쨍하게 내리던 햇살이 나를 뚫고 들어왔다. 구름이 잔뜩 낀 머릿속이 맑아졌다.
왓푸 사원은 팍세에서 가장 유명한 유적지인데 관광객이라곤 우리뿐이었다. 상업적으로 변한 현지인도 환경을 파괴하는 여행자도 없는 마냥 아름다운 곳이구나. 나조차 여행자 신분으로 이 곳을 왔으면서 영원히 알려지지 않았으면 싶은 그런 곳이었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와 라오스의 왓푸 사원을 비교하곤 하는데 원숭이마저 상업화가 되어 관광객을 괴롭힌다는 앙코르 와트와는 비교가 안 되는 곳이다.
나무 그늘 하나 없는 땡볕에 왓푸 사원을 오르내렸지만 충만한 자연의 기운을 받아 그런지 피곤하지도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팍세 시내와 왓푸 사원은 차를 타고 약 1시간 거리인데 늦은 점심을 먹으러 이동하면서 더위가 식자 점점 허기가 찾아왔고 온 몸에 힘이 빠질 지경이 되었다. 창문 너머로 방목하여 키우는 건지 소들이 눈에 띈다. 가죽이 들러붙어 뼈가 보일 정도로 왜소했다. 작은 사원도 여럿 지나치고 주황빛 천으로 만든 승복을 입은 스님 혹은 승가대학 학생들도 많았다. 사원, 불교, 자연. 팍세를 대표하는 것들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시내에는 현지 음식점도 있고 식료품점도 있고 시장도 있다. 해외에 나와서 시장 구경만큼 재밌는 게 또 있을까? 금으로 만든 장신구와 라오스 전통 복장을 판매하는 구역을 지나면 온갖 재료를 쌓아놓고 판매하는 ‘식품코너’가 나온다. 이쪽은 청과물, 저쪽은 육류 그 옆은 생선류. 이 세상 활기가 아닌듯한 분위기에 넋이 빠지고 말았다.
‘빵빵’ 유난히 싱싱하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저렴한 열대과일에 마음을 빼앗겨 멍하니 서있다가 나도 모르게 길을 막고 있었나 보다. 길이랄 게 없는데 좌판대와 좌파대 사이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법한 좁은 길을 오토바이가 슉 – 지나갔다. 이런데 오면 꼭 망고를 먹어야 해! 한국에선 비싸잖아! 1kg를 담았는데 가격이 2000원도 안된단다. 그 자리에서 껍질을 까 입에 쏙 넣으니 달콤한 과즙이 입 안 가득이었다. 망고에 빠져 허겁지겁 먹고 있는데 덜 익은 망고도 맛보라며 초록빛이 도는 단단한 망고를 썩둑썩둑 썰기 시작했다. 초록 망고는 새로운 맛이었다. 땡감처럼 단단하고 떫으면서 신맛이 강했지만 먹을수록 혀끝에 침이 고이는 감칠맛에 두어 개 더 집어 먹었다. 한 개도 못 먹고 신 맛에 뱉어버린 일행의 몫까지. 그리고 나는 탈이 났다. 덜 익은 날 것을 무리하게 먹어서 그런지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 오른쪽 입술과 그 주변이 빨갛게 부풀어 오른 것이다. 간지럽던 피부는 이내 한겨울 추위에 튼 것처럼 거칠해졌고 한국에 돌아와서까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