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아침인가? 방금 눈 감은 것 같은데 창 밖에서 요란한 닭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잔뜩 풀칠한 듯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힐끗 창문을 바라보니 아직 어둡기만 하다. 오로지 인테리어만 고려한 '있으나마나’ 시폰 커튼 너머로 일말의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다. 머리맡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니 자정이 조금 넘었을 뿐이다. 안계 주민 1일 차, 어김없이 닭 소리에 잠을 설친다.
그렇다. 이제 내 거주지는 경상북도 의성군으로 시작하고 세대주는 나 본인이다. 바로 어제 인터넷으로 해도 되는 걸 굳이 면사무소까지 찾아가서 전입신고를 마쳤다. 이제 진짜 안계면에 이사 온 귀촌 청년이 된 것이다. 이사는 일주일 전에 마쳤지만 이제야 주소를 옮기게 되었고 이 말은 즉, 닭 울음소리에 잠을 설친 지 일주일이나 되었다는 소리다. 한국식 주입교육의 산 증인으로서 어린 시절 학습지로 영어 공부를 시작했고 외국 동물들은 어떻게 우는지 직접 입으로 의성어를 흉내 내며 배웠었다.
‘미국 닭은 카커두둘두 하고 운답니다.’
‘네? 꼬끼오가 아니라요? 그렇게 길게 울 시간이 없는데….’
미국 닭은 폐활량이 좋은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평생 ‘꼬끼오’ 이외의 닭은 안 만나 볼 줄 알았는데 더 특이하게 우는 닭을 만나게 될 줄이야. 안계 닭은 꼮끼이이이 하고 운다. 안다. 상상조차 안 가는거. 어릴 때 카세트테이프에서 들은 닭 소리보다 더 거칠고 높고 길다. 한낮에도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며 자정 무렵부터 몇 시간 단위로 울어댄다. 일주일 간 보통 잠자리를 설친 게 아니다. 오늘도 더 이상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자정에 기상하는 극한의 미라클 모닝을 실천했다. 잠자리 적응에 애쓰는 도시 여자의 귀촌 여정은 집 구하기에서 시작된다.
연고도 없는 곳에서 집을 어찌 구하나 막막했다. 시골 특성상 부동산에서는 주로 전답, 논, 임야만 취급하고 월세, 전세는 직접 발품을 팔아야 한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벽에 붙어있는 ‘하숙 구해요’가 떠올랐다. 계약서라곤 노동 계약서에 사인만 해본 ‘어린이’가 뭘 알겠는가! 다만 시골이 좋은 점은 모두가 남의 일을 내일처럼 돕는다는 사실이다.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동생의 일일지라도 두 팔 걷고 나서서 집을 알아봐 준다. 그렇게 지인의 지인의 지인을 타고 새로 지은 원룸을 보러 갈 기회를 얻었다. 방이 하나니 원룸은 맞는데, 부엌 공간과 방과 화장실 공간 비율이 1:1:1인 정말 특이한 구조였다. 사실 직접 집을 알아보는 게 처음이라 뭘 꼼꼼히 봐야 하는지도 몰라 괜스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문을 두들겼다가 TV 프로에서 배수나 수압을 봐야 한다고 했던 게 생각나 부엌에 가서 물도 틀어 봤다. 원룸살이는 해본 적 없지만 친구들의 자취방을 전전해본 바 이 정도면 아주 훌륭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저 여기 와서 살고 싶어요!’
‘그래요? 잠시만요 집주인이랑 통화를 할게요.’
그분도 집주인은 아니셨던 것이다!
‘아니, 여학생이 (감사합니다. 저는 학생은 아닌데...) 내려와서 혼자 살라 카는데, 아니, 서울서 왔다 카네요. 혼자요 혼자. 아요 거 좀 깎아줘요. 그래요? 아 그리고 여기 에어컨이 없네. 좀 더울 텐데 이제. 벽걸이 싸다 카는데 하나 달아주고. TV는요. (아니에요 필요 없어요) 아 필요 없다카네. 아 그럼 그렇게 해요.’
그렇게 이 집의 첫 세입자가 되었다.
‘어머님, 벽에 벽지를 바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그거 편백나무야! 아주 비싼 거라고! 몸에 좋다고 해서 그걸로 했는데 마음에 안 들어요?’
편백나무는 멀쩡히 자태를 뽐내고 있고 대신 벽 한쪽을 하늘거리는 시폰 커튼으로 꾸며놨다.
전입신고는 생각 외로 간단했다. 상당히 긴장하며 면사무소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자 가장 먼저 정면의 부면장님이 맞아주셨다. 정말 정면에 계셨다. 마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KFC의 하얀 할아버지가 맞이해 주는 기분이었다. 한 장 짜리 서류에 나의 예전 주소(엄마 아빠 집)와 나의 새로운 거주지 주소(집주인 네)를 적고 사인 몇 번 하고 나니 끝이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내 것이 아닌 공간에 살고 있었다는 생각에 씁쓸했지만 독립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여 부정적인 기운은 금세 지워버렸다. 10분이 채 걸리지 않아 나는 안계면의 몇백 혹은 몇천 번일 수도 있는 청년이 되었다. 운전면허증 뒤에 붙은 새로운 주소 스티커를 보며 설레면서 허무한 기분으로 면사무소를 나섰다. 나름 뿌리를 내리고 살던 곳에서 큰 결심을 하고 왔는데 이렇게 쉽게 끝날 일이라니. 지난 3월, 잠시 동안 의성군 안계면에 내려가게 되었다고 이야기했을 때 주변 지인들이 그랬다. ‘뭐 일주일 있다 올라오겠구먼’ 그런데 나는 이곳의 주민이 되었다.
독립이란 무엇일까. 작은 원룸에 짐을 옮기기 위해 여기서 4시간 떨어진 '도시’에 거주하시는 부모님이 내려오셨다. 차 한 가득 바리바리 실고서. LP판과 턴테이블에서 두루마리 휴지와 반찬까지 작은 집이 하나 실려왔다. 하루 종일 걸려 쓸고, 닦고, 정리하다 보니 어두워졌고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일주일의 휴가 후, 안계로 내려오니 모든 게 새롭게 보였다. 그전까지 나는 여행자 신분이었다면 이제 진짜 이 마을의 주민이 된 것이다. 낮게 날아가는 제비조차 새롭게 보일 지경이었다. 사실 난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인간이다. 타자나 두드리고 종이나 넘길 줄 알았지 전입신고는 어떻게 하는지 실비보험은 어떻게 드는지 심지어 월세 계약도 이번에 처음 해봤다. 서류, 서류, 서류. 맨날 회사에서 사업계획서나 끼적거렸지 실질적으로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 - 에어컨 설비 기사님을 부르는 법, 공과금을 내는 법, 재활용 쓰레기를 보리는 법 – 을 몰랐다. 부모님 집에 살면 언제나 휴지와 샴푸가 떨어지지 않았고 냉장고를 열면 먹을 것이 즐비했다. 마치 집요정이라도 사는 것처럼 모든 게 채워져 있었다. 그런데 독립하고 나니 냉장고 빈칸은 쓸쓸해 보이고 화장실 두루마리 휴지도 아껴 쓰게 된다.
그렇다면 전입신고는 무슨 의미를 갖는가. 처음 ‘스타벅스도 없는’ 이곳에 내려오던 기차 안 내 모습이 보였다. 평생 소처럼 일해서 획일화된 기다란 콘크리트 건물 안에 입성하려 아등바등할 바에는 내가 원하는 곳에 살고 싶었다. 비록 스타벅스는 없을지라도 나는 이곳에서 더 쓸모 있는 인간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혹여 새로움에 취해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건 아닌지, 실수한 건 아닐까 내심 불안했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본인의 문제와 새로운 것을 비교하게 되는데 대부분 새로운 것에 긍정적인 자체 평가를 내린다. 아마 이곳 주민들은 도시 사람이 왜 내려오는지 이해하지 못할 테다. 그래서 주소지가 여길지라도 나는 여전히 이방인이자 호기심의 대상이다. 내게도 그런 때가 찾아올 것이다. 길가는 젊은이만 봐도 궁금해하고 아름다운 노을도, 화려한 복숭아꽃도, 경운기 다니는 농로도 더 이상 내게 감흥을 주지 못하는 때가 반드시 찾아오리라. 그럼에도 나는 새로움에 취해, 내게 감흥을 주던 요소에 반해 이곳에 내려왔다. 전입이 흔치 않은 곳에서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받으며 입장해 전입 신청서에 집주소를 적으며 전의를 다졌다. 확실히 마을의 중심을 방문해 직접 작성하니 각오가 남달랐다. 전입신고는 역시 인터넷보단 방문이다.
요즘은 괜히 골목골목을 걸어 다닌다. 남의 집 대문도 구경하고 지붕도 훔쳐보면서 걷는다. 이 동네에서 제일 크고 제일 새 건물은 최근에 신축한 어린이집으로 정원이 무려 100명이나 되는 대규모다. 그 옆에 어린이 놀이터가 있고 정면으로 논밭이 탁 트여있다. 여름을 맞아 지난 5월만 해도 물이 차 있던 논에 새파란 벼가 자라 있었다. 곧 무르익어 수확할 시기가 올 것이다. 전입한 감상에 젖어 나의 미래를 생각 중인데 논이 움직였다. 마치 지들끼리 수다라도 떨듯 이곳저곳이 흔들렸다. 논 한가운데 고양이가 빠져 있었다. 나비라도 쫓다가 들어간 건지 폴짝대며 논을 헤집어 놓고 있었다.
'하하하’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내가 이래서 여기 온 거지. 논에 빠진 고양이가 푸른 논을 헤집고 다니는 장면이 좋아서 정착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