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도, 룸메도, 상사도 인도인이던 시절을 경험하기 전까지 내가 아는 유일한 인도인은 간디였다. 위인전 속 간디는 동그란 안경을 쓰고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으며 흰 천을 몸에 두르고 있었다. 비폭력 운동 캠페인을 주도한 인도의 지도자는 감옥에서도 베를 짜며 요가 철학을 실천하는 인물이었다.
70억 세계 인구의 1/5이 인도인이라고 한다. 중국 다음으로 거대한 나라지만 한국에서는 먼 나라다. 비행기를 타고 10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래서 그곳이 중국과 맞먹는 인구수를 자랑한다던가, 차이나 타운에 맞먹을 정도의 커뮤니티를 전 세계적으로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길이 없었다. 내가 어디를 가든 그들이 있었다. 1년 동안 인도인 커뮤니티에서 생활해봤기 때문에 이제는 인도인이 채식만 하는 것도 아니고 흰 옷보다는 화려한 화장과 옷을 즐겨 입으며 세속적인 가치에 열광하는 부류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절대 요가를 하지 않았다.
카타르에 살던 시절 인도인은 카타르의 실질적인 주인이었다. 나의 인도인 룸메이트는 퇴근하고 돌아오면 쓰러져 잠만 잤고 옆 방에 있는지도 모를 정도였으며 언제나 난과 파라타 같은 인도 음식을 배달시켜 먹은 후 다시 방에 틀어박혀 남자 친구와 하루 종일 영상통화를 했다. (그녀는 성격적 결함이 1도 없는 친절한 룸메이트였다.)
‘나 요가 갔다 올게’
언젠가 요가 스튜디오에 다녀오겠다니 그녀가 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
'뭐 타고 가려고? 근데 힘들게 쉬지. 굳이 요가를?'
걸어서 다녀오겠다고 하니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 근처에 요가원이 있다고? 걸어서 간다고?’
그녀는 근처에 요가원이 있는지도 모르는, 요가를 하지 않는 인도인이었다.
그동안 내가 대화를 나눈 수많은 인도인 중 요가를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10명 중 9.9명이 채식주의자였지만 10명 중 0.1명만이 요가 수련을 한다고 답했다. 한국인이 배달의 민족이듯이 인도인은 요가의 민족이라고 믿었는데 아니라는 사실에혼란스러웠다. 그렇다면 요가는 누가 하는 거야! 요가 철학의 발원지이자 종주국이 인도 아니냐고.
요가는 애초의 만인의 수련이 아니었다. 슈퍼 익스클루시브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귀족 수련이었다. 요가의 초기 역사는 배타적이고 폐쇄적이다. 지금의 서남아시아 지역을 침략한 아리아인들이 원주민들을 지배할 사상교육의 수단으로 요가를 만들어 냈다. 기원전 1천 년 경 아리아인이 법적으로 카스트 제도를 탄생시켰고 요가는 카스트 제도의 꼭대기에 위치한 브라만 계급, 그것도 장자에게만 전해져 내려오던 그야말로 슈퍼 익스클루시브 시크릿이었다. (마치 VVVVVIP에게만 전달되는 명품 브랜드 패밀리 세일 초대장 같은 느낌이랄까) 외국인은 카스트 제도에 포함조차 되지 않는 불가촉천민이니 여자이자 외국인인 내가 시대를 잘 타고나 요기니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몸을 접고, 꼬고, 상체를 들어 올리며 브라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우월한 지위와 더불어 신체적 강인함을 갖게 되어 더욱 우월함에 빠졌을까?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 번이라도 아쉬탕가 요가 수련을 해 본 사람이라면 우월, 권위, 군림 따위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엄청난 몰입이 필요한 매 순간 권위 의식이 낄 자리가 있을 리가 만무하다. 만약 브라만이 장자에게만 전승했더라면 나는 구경조차 하지 못했을 귀한 존재였겠지만 지금 요가는 가장 대중화된 수련이자 철학이다.
유난히 햄스트링(허벅지 근육)이 짧은 나는 전굴 동작이 버겁다. 요가에서 전굴은 앞으로 숙이는 동작이고, 후굴은 뒤로 넘기는 동작이다. 앉아서 하는 자세(seated)는 전부 전굴 동작이다. 전굴의 핵심은 유연성이 아니다. 무조건 손끝이 발끝에 닿는 게 중요한 게 아니란 말이다. 만약 허리를 구부린 상태로 닿은 거라면 말짱 도루묵이다. 반다(복근)를 단단히 잡고 무릎을 굽히더라도 허벅지와 배가 닿도록 해야 한다. 양 어깨가 틀어지지 않도록 몸 전체에 균일한 힘이 들어가 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게 핵심이다. 바닥에서 살짝 뜬 무릎을 내리고자 바들바들 떨어가며 전굴을 유지하고 있으면 숨 다섯 번 쉬는 게 영겁처럼 느껴진다. 아픔이 느껴지면 숨을 더 깊게 쉬어야 한다. 몸이 기억하는 아픔과 불편함으로 수련을 미루고 싶지만 요가는 무해하다. 미루려는 내 마음이 너무할 뿐.
법으로는 폐지됐으나 여전히 카스트 제도의 잔재가 남아 있는 인도에서 요가는 여전히 계급의 전유물일 수 있다. 그러니 요가의 본 고장에서 5,710km 나 떨어진 곳에 살며 마음껏 요가 수련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자.
이렇게 좋은 요가를 혼자만 할 수는 없었다. 미래의 남자 친구, 남편, 반려자 누구든 내 미래에 편입한 사람과 반드시 함께 수련하겠다고 마음먹었다. 10년 전 동네 요가학원에서 처음 요가를 배울 때만 해도 남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나중에 그 학원에서 잠깐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상담받으러 오는 이 역시 모두 여성이었다.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던 시절 근처 헬스장 GX 에는 요가하는 남자들이 꽤 눈에 띄었다. 짧은 점심시간 동안 짬 내서 스트레칭과 자세 교정을 하기 위해 힐링 요가 수업을 찾은 고단한 직장인들 덕분에 GX실 안은 성별 관계없이 꽉 찼다. 10년이 지나 본격적으로 아쉬탕가 요가에 입문했고 요가하는 남자가 이제는 당연하다. 요가는 떡 벌어진 어깨와 기본적인 근력이 타고난 남자들에게 유리하다. 나같이 어깨 근육이라곤 써 본일이 없어 유연성만 믿고 살아온 애는 몸을 들어 올리는 데 3년이 걸릴지 4년이 걸릴지 기약 없는 수련의 연속이지만 떡 벌어진 어깨와 근력을 탑재한 남자분들은 비교적 쉽게 몸을 든다.
안 되는 자세를 연구해 보겠다고 유튜브를 뒤적거렸더니 요가하는 남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만 몰랐지 이미 날고기는 유지태 씨가 수두룩하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배우 유지태 씨는 완벽한 살라바사나를 선보인다.) 아쉬탕가 요가 자세와 원리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는 요기들을 보며 또다시 열의에 불타오른다.
요가 지식으로 무장한 이는 영적인 전사로 탄생한다 ... 요기는 칼과 거울로 무장한 전장의 전사다.
요기는 본디 전사다. 아쉬탕가 요가는 강인한 신체와 유연한 사고를 부여한다. 요가 경전이자 힌두교의 3대 경전 <바가바드 기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요기는 칼과 거울로 무장한 전장의 전사다"
힐링과 명상을 요가의 전부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전신 근력을 써서 몸을 들어 올리는 살라바사나 봐라!
누가 봐도 강인한 전사의 자세다. 요가는 그런 거다. 밖에서 보면 몸을 비틀고, 들고, 던지고, 날아오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짜는 안에 있다. 너무한 동작들이 세상에서 가장 무해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