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나우웬
메시아는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앉아 계시고 한 번에 하니씩 그 분의 상처를 싸매며 자신이 필요하게 될 때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자신의 역할이 필요하게 될 순간을 기다리며 조심스럽게 자신의 상처를 싸매야 합니다. 그는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상처를 먼저 돌보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준비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상처뿐 아니라 남의 상처도 돌보아야 합니다. 또한 자신의 상처를 치유능력의 주된 원천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인간의 가장 고통 스러운 상처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외로움입니다.
기독교적 삶의 방식은 외로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외로움을 보호하여 값진 선물로 소중히 간직하게 한다는 사실 입니다. 때로 우리는 인간의 느끼는 기본적인 외로움과 직면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빠른 민족과 빠른 위안을 약속하는 거짓 신들의 덫에 걸립니다. 그러나 외로움에 대한 뼈아픈 인식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초월 할 수 있고, 존재의 경계 너머에 있는 것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외로움에 대한 인식은 우리가 지키고 간직해야 할 선물 일지도 모릅니다.
그 달콤한 고통을 참아낼 수 있는 사람에게는 약속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참을성을 잃고 외로움을 포기함으로써 단절감과 불완전성을 극복하려고 지나치게 서두를 때
우리는 몹쓸 기대감을 안고 인간 세상에서 살아가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경험을 정말로 이해하는 남자, 우리의 불안한 삶에 평안을 가져다 줄 여자,
우리의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는 일, 모든 것을 설명해줄 책, 그리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장소를 계속 꿈꾸며
이 모든 것을 언젠가는 찾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그릇된 희망으로 인해 우리는 만족을 모르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하며 지쳐버립니다. 어느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절대적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 쓰라린 마음과 위험한 적대감을 품게 됩니다.
많은 결혼이 파국으로 치닫는 이유는 남편이나 아내가 자신의 외로움을 완전히 해결해 줄 것이라는
희망이 실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은 결혼 생활의 친밀성 속에서
자신의 외로움이 사라지리라는 순진한 꿈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자신의 고통을 깊이 이해할 때 사역자는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꿀 수 있으며,
자신들의 고통을 잘못 이해하여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에게 사역자 자신의 경험을
치유의 원천으로 제공할 수 있습니다.
환대라는 미덕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자신의 두려움이 만들어내는 편협한 마음을 깨뜨리고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집을 개방하게 됩니다.
집중 (concentration)
: 먼저 자신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일이 우선 이루어져야 하는데, 자신의 필요와 걱정과 긴장 등에 마음을 빼앗길 때는 그 일이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삶의 중심을 자신의 마음 속에서 발견해야 합니다.
자기 연민이 아니라 겸손의 마음을 가지고 자기 자신 안으로 칩거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이 있는 모습 그대로
행동하고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듭니다.
인간이 뒤로 물러서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외로운 과정입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자신의 상태, 즉 그 모든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비참함도 직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중심으로 들어가서 영혼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살아있는 것은 사랑받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태어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으며,
우리의 삶이 선물로 주어진 것이기에 우리도 줄 수 있고,
우리의 마음보다 훨씬 더 큰 마음을 가지신 분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기에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외로움에 익숙해져 이제 자신의 집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역자는, 손님들을 환대하는 주인입니다.
그는 손님들에게 친근한 공간을 제공합니다. 그 곳에서 손님들은 오고가고, 가까이 있거나 거리를 두는 것, 쉬거나 노는 것, 얘기하거나 침묵하는 것, 식사하거나 금식하는 이 모든 것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인생에서 괴로움을 느끼는 이유는, 자신의 외로움을 완전히 없애 줄 사람이나 사건,
또는 만남을 애타게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환대를 받을 수 있는 집에 들어서는 순간,
자신의 상처가 절망과 비통함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여행을 지속 하도록 해주는 표시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지금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상처가 하나님께서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는 장소였다는 사실을 후에 알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오랜만에 혼자서 걷고 생각하고 앉아있는 시간을 갖았다.
불안감과 초조함으로 온전히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이 줄어들었었다.
책상에 앉아도 성경책을 펴도 내 마음은 '불안'에게 생각을 내어 주고 있었다.
하나님과 오롯히 함께 걷던 오늘 하루,
"심령이 가난한자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의 마음 속에 있는 상처들이 나의 외로움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해주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님이 열어 주신 길로 나아가게끔 하는 원동력이 되어줌을 깨닫는다.
'자기연민'에 빠져있던 구렁텅이에서 이제 나와서
'겸손의 길'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한다.
사랑하는 그 사람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이 되어주고 싶다.
'환대', 내 마음에 공간이 있어서 그 사람이 언제든지 들어올 수 있는 마음이었으면 좋겠다.
Hospitality means primarily the creation of a free space where the stranger can enter and become a friend instead of an enemy. Hospitality is not to change people but to offer them space where change can take place. It is not to bring men and women over to our side, but to offer freedom not disturbed by dividing lines. . . . The paradox of hospitality is that it wants to create emptiness, not a fearful emptiness, but a friendly emptiness where strangers can enter and discover themselves as created free; free to sing their own songs, speak their own languages, dance their own dances; free also to leave and follow their own vocations. Hospitality is not a subtle invitation to adore the lifestyle of the host, but the gift of a chance for the guest to find his 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