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로움을 피하게 하시는 하나님.
9년전 여름, 까미는 축복처럼 우리집에 와주었다.
너무 작은 털뭉치 하나가 꼬물 거리는 모습을 바라보는게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동물을 싫어하는 아빠조차 이 작은 애가 무슨 해가 될까 싶어
무작정 까미를 데려온 우리 자매를 혼내지 않았다.
까미는 그렇게 나의 20대를 나와 함께 하게 되었다.
큰 상실감에 방에 주저 앉아 펑펑 울때도,
원하던 대학에 합격 소식을 듣고 기뻐 펄쩍 펄쩍 뛸때도,
열심히 밤새 공부를 할 때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미드를 볼 때도,
까미는 나의 모든 순간 안에 존재 했다.
난 까미에게 단 한번도 화가 난적이 없었다.
까미가 실수로 아무 곳에나 배변을 해서 힘들게 치워야 할때도,
손님이 올때마다 시끄럽게 왈왈 짖어도,
혼자 있고 싶을 때 놀아달라고 공을 가져와도 짜증나는 순간이 없었다.
까미에 대한 나의 사랑은 절대적인 것이 된 것이다.
까미의 호수 같은 청록색의 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냥 행복하고 웃음만 났다.
"하나님이 보내 준 까만 천사 까미"라고 부를 정도로 예뻐 죽겠다.
나이를 먹어가며 하얗게 털이 변해가는 까미를 보면 아련해서 미칠 것만 같다.
함께 해온 시간보다, 함께 할 시간이 짧아질 수록 나는 까미를 더욱 사랑하기 시작했다.
오늘도 변함없이 사랑하는 까미와 함께 거실에 앉아 있었다.
내가 맛있게 견과류를 먹기 시작하자
까미는 먹고 싶고 애가타서 견과류를 달라고 짖어도 보고, 울기도 하고, 달려들기도 하고,
나를 오랜 시간 가만히 앉아서 바라보기도 했다.
그때 내가 까미한테 말했다.
"까미야, 먹고싶지? 그런데 안돼. 이건 너한테 해로워. 너가 먹으면 안되는거야.
누나가 내일 맛있는거 줄게."
강아지에게 견과류는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해로운 음식이기에 너무나 원하는 까미를 보면서도 나는 단호하게 안된다고 까미에게 말한 것이다.
3시간 뒤, 나는 갓피플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아래 글을 보게 되었다.
"다롱아" 하고 불렀지만 다롱이는 고개를 돌렸다.
내가 자기를 병원에 입원시킨 것을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한 것이다.
화가 나서 자기 몸에 손도 못 대게 했다.
그날 밤 나는 펑펑 울었다.
하나님을 향한 나의 반응이 생각나서였다.
<당신은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유석경
위의 글을 읽는 순간, 마음 깊은 곳에 뜨거운 감정이 분출하고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견과류가 해로운지도 모르고 달라고 조르는 까미의 모습과,
하나님께 합격을 조르는 나의 모습이 닮아 있음을,
까미가 원하는 걸 알기에 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해로운 걸 알기에 주지 못하는 나의 안타까운 마음과,
빨리 취업하여 안정감을 찾길 원하는 걸 아시지만 내 것이 아니기에 합격시켜 주지 못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닮아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지난 6개월동안 합격과 탈락 사이에서 아슬아슬 하게 줄다리기를 하며, 수 없이 면접에서 낙방했다.
"하나님, 합격 시켜 주세요!" 울며 기도도 해보고, 새벽기도에서 '주여!' 외치며 조르기도 해봤다.
이번엔 정말 하나님의 뜻인 곳,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내가 열심히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곳을
달라고 구하고 구하면서도 막상 면접에서 떨어지면 '하나님 뜻이 아니여서 그런거야.'라는 생각 보다는
'후, 또 떨어졌네. 난 이제 진짜 어떡하지. 취업할 수 있을까. 내년이면 서른인데 그때까지 취업을 못하면 어떡하지. 그냥 계약직을 넣을까.'라는 불안과 두려움의 마음이 30초 먼저 들었다.
아직도 나는 연약하고 나약하여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이 반드시 나에게 응답하실 것이라는 기대가
내 모든 사고의 1번이 아니었던 것이다.
세상 적인 기준, 객관적인 기준으로 볼 때는 내가 합격할 수 있는 자리도 많았다.
내 생각에는 분명 합격할 것 같았던 곳에서 낙방했을 때의 마음은 더욱 어렵고 힘들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이 합격시키지 않으셨던 이유를 깨달았다.
"은지야, 여기 합격 하고 싶지? 그런데 안돼. 거긴 너한테 해로워.
너가 가면 또 힘들 거야. 조금만 기다려. 내가 좋은 곳으로 너를 인도할거야."
하나님의 마음을 그렇게 느끼며, 다시 한번 그 분이 이루실 일을 기대하며, 나는 인내할 것이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예레미야 2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