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벚꽃이라도 되었으면

인도와 독일을 넘나드는 일상에세이

by 소시지

이른 아침부터 새소리가 반가운걸 보니 독일에도 봄이 오는 느낌이다.

해가 뜨는 날이 일주일에 고작 하루 더니, 이제 이틀정도는 되는 것 같고,

오후 세시부터 해가 지기 시작하더니, 이제 나름 5시도 저녁 같은 느낌이 든다.

어제 조깅을 하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꽃집에 꽃들도 무척이나 다채로워졌다.

독일에 살아보니, 여름이 몇 개월 빼고는 해가 잘 들지 않고, 을씨년스러운 날씨가 대부분이어서

때문에 집이라는 공간은 아늑하고 따스한 느낌이 많이 나도록 꾸민다.

그중에 꽃은 공간을 채워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봄은 다채로운 꽃으로

집과 정원 베란다를 꾸밀 수 있는 설레는 계절이다.


인도에 살 때도 일 년 내내 보이는 꽃들이 많았다.

에어컨을 밤새 켜도 도대체 시원해지지 않던 싸구려 방에

룸메이트와 머물던 젊은 시절이었다. 인도에는 방마다 베란다가

있었다. 문을 열고 나가 베란다에 앉아 있으면

옆집 정원이 보이곤 했다. 옆집 정원은 정원이라기 보단, 밀림 같았다.

빽빽한 잎으로 덮인 큰 나무들, 사이사이 있던 야자수 나무들

그리고 그 야자수 나무에 열린 야자수를 따러 올라가던 아저씨,

그리고 나뭇잎사이로 피던 주먹만 한 꽃들.

더위에 핀 꽃들이어서 그런지 색깔은 화려했고, 초록잎들

사이에서 피어서 강렬하게 보였지만, 흔했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미치진 않았었다.


어제는 조금 풀린 날씨에 햇볕을 쬐러 조깅을 했다.

조깅을 하다 집에 돌아오는 계단에 오르면 꼭 보이는 나무가 있었는데,

이 녀석은 겨울에도 종종 꽃을 피우는 녀석이었다.

한겨울에도 아주 가끔 해가 드는 날에는 이김었이 피어있는 녀석이어서

남편과 그 나무 앞을 지나갈 때마다, 이 정신없는 나무에 대해 이야기를 하곤 했다.

이놈의 날씨가 얼마나 저나무를 정신없게 했으면 겨울에 피는지,

날씨가 워낙 오락가락하니, 쟤도 오락가락하는 것 같다느니,

해가 너무 안 나와서 해가 나올 때 봄인 줄 알고 피는 것 같다느니,

오락가라가 하는 것 같던 나무를 두고 이놈의 날씨를 탓하며 꼭꼭 씹어댔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겨울에 만개한 그 벚꽃을 보고 기가 차서 인터넷을 뒤적거렸다.

이건 벚꽃이 분명한데 어떻게 겨울에 이렇게 만개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다.

물론 바람에 흩날리는 봄 벚꽃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그 녀석의 최대치라고 단언한다.

검색결과 그 녀석은 겨울에 피는 겨울 벚꽃이었다.

정신이 없는 나무도 아니었고, 오락가락하는 나무도 아니었다.

본인의 계절에 최선을 다해 꽃을 피우고 있던 겨 울 벚 꽃 나무였다,

그때부터는 그 나무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미안하기도 했다.

해가 잘 들지 않고 을씨년스러운 날씨가 이어지는 우울한 날씨에 볼 수 있는 유일한 나무꽃이었다.

어제 조깅을 다녀오다 보니, 그 겨울 벚꽃나무에 한두 개씩 예쁜 벚꽃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 차가운 계절에 듬성듬성 피어있는 꽃이 그렇게나 고귀해 보일수없었다.

이제 중년에 접어들고 나이가 들면서 나는 한번이라도 저렇게 찬란한 시절이라도 있었나 싶은 맘이었다.

인도에서 늘 피던 꽃처럼 젊고 화려한 시절은 있었을 수 있었겠지만,

찬란한 시절은 없던 것 같다.

중년이 되어가는 내 인생의 계절에서 , 나는 어쩐지 겨울 벚꽃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가녀린 꽃을 사진에 담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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