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일상
요즘은 정말 믿기지 않을 만큼 해가 떠있어서
오후에 테라스에서 해를 쐬면서, 글을 쓰는 시간이 많아졌다.
해야 할 일은 조금 뒤로 미뤄두고 해를 핑계로 갖는 나만의 시간이다.
내가 사는 지역은 함부르크로 독일에서도 북유럽에 가까운 곳이라, 이 햇살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일 년에 6개월 정도는 해양성 기후로 날씨가 변덕스러워 해가 뜨는 날이 정말 드물고 밤이 길기 때문이다.
4월부터 이렇게 가끔 내리 쐬는 햇살을 맘껏 볼 수 있는 날에 테라스에 앉아있으면 맘이 참 고요하고 평화롭다.
요즘은 벚꽃이 피는 계절이기도 해서, 집 앞에 있는 벚꽃의 꽃잎들이 바람길을 따라 함께 날아다니다 불시착한 우리 집 바닥이 꽃길처럼 되는 것을 볼 수도 있다.
또 지렁이를 입에 한가득 물고우리집 테라스를 늘 활주로로 사용하는 이름 모를 새가 지나다니는 것도 가끔을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리고 한편에는 제철마다 피는 꽃을 조금씩 심어놓고 감상하곤 하는 내가 마련해 놓은 세상에서 제일 작은 정원이 있다.
얼마 전에는 튤립옆에 같은 종류지만, 색깔이 다른 두 개의 꽃을 심어 놓았다. 그런데 어쩐지 앞에 있는 분홍색 녀석을 꽃을 활짝 피고 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뒤에 있는 주황색꽃은 영 힘을 쓰지 못하고 그야 말도 피던 꽃도 지는 느낌이 들었다.
주황꽃이 더 이쁘다고 생각해서 나름 더 깊이 튼튼하게 심었다고 생각했는데, 저렇게 기운을 못 차리는 걸 보니
앞에 핀 꽃이 너무 화려해서 기에 눌려 필생각을 못하는 건가 싶었다.
늘 화려함에 치여 살아온 내 세월을 보는 것 같아 밉기도 하고 안쓰러운 맘이 들기도 했었다.
예쁘고 아름답지만 차가웠던 엄마, 이제는 세월이 지나 미움보다는 안쓰러움이 남아있는 노모가 되신 엄마와
키도 크고 이쁘고 똑똑해 엄마의 자랑이었던 내 동생.
그 틈에서 내 존재를 늘 증명해 보이려 애쓰고 싶었던 젊은 시절의 내가 뒤에 있는 주황색 꽃 같았다.
그런데 오늘 나와보니 분홍색 꽃은 져버리고 주황색꽃이 싱싱함을 자랑하며 잎에 힘이 들어 가 있다.
앗.. 이제 너도 나처럼 힘을 내기 시작하는 거니 싶어 괜찮다고 토닥여 주고 싶은 맘이 한가득 든다.
곧 친구네 집에 놀러 간 큰 아들이 돌아와 배고파를 외칠 것이고,
여전히 혼자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작은 딸에게는 해야 할 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도 해야 할 것 같고,
해를 핑계로 내팽개쳐놓은 점심 먹은 그릇들도 치워야 할 것이고
화장실청소도 그리고 내일 수업을 대비해 일도 좀 하며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겠지만,
요렇게 나의 생의, 작지만 소중한 시간을 보냈으니까
처음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은 이유에 쓴
이제는 과정이 즐거운 삶을 살고 싶다는 그 말을 실천하고 있는 듯해서
잠시나마 안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