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사람들이 에티켓이 없다고?

독일일상 에세이

by 소시지

독일에서 거리를 지나다 보면,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또한 야외음식점이나 카페에서 피우는 담배연기에 아이들이 코를 막고 힘들어하기도 한다.

담배는 피우는 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라고 생각해서인지, 담배연기에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은 드물다.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울어도 크게 상관없다는 듯 내버려 두는 경우도 많다. 한 번은 서점에 갔는데, 정말 갓 태어난 아이인듯한 아이가 유모차 안에서 10분을 넘게 울고 있었다. 웬만한 엄마 같으면 아이를 들어서 안아줄 법도 하건만, 옷을 갈아입히려고 했던 건지, 사정이 있던 건지 앙상한 팔다리를 드러내놓고 아이가 울고 있는데도 별다를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더욱 놀라운 건 서점에 있는 누구도 그 우는 아이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차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언젠가는 여행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정말 부산스러운 아이들을 두 명 만났던 적이 있다. 기차 앞칸에서 뒤칸까지 던지기 받기 놀이를 하기도 한다. 우리 아이들이랑 비슷한 또래 아이들 같았다. 고된 여행에 자고 싶은 맘 한가득이었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좀 제지했으면 싶은데 아이를 혼내지 않는다. 다만 다른 이슈로 관심을 끌어보려고 아이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흥분도가 너무 높아져 버린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들을 여유가 없는 듯했다. 더욱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눈살을 찌푸리는 승객이나, 아이에게 주의를 좀 주라고 하는 어른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 아이들에게까지 관심을 너무 주시는 바람에, 학부모가 우리 아이들과 함께 보드게임을 하자고 제안하며 훈훈한 마무리가 되긴 했다.


그렇다면, 독일사람들은 정말 에티켓이 없는 것일까?? 방해가 되지 않는 걸까?


난 독일사람들의 높은 집중력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웬만하면, 그들의 집중력이 작은 일로 흩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하고 있는 것에 대한 몰입도가 높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시선이 많이 가지 않는다. 원하는 바가 분명하고, 목적지가 분명하기 때문에 자신의 영역이 침범 당해 위협적인 상황이 되지 않는 한,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다. 그러나 이 부분을 좀 더 달리 해석하자면, 자신의 영역을 벗어난 오지랖은 절대 부리지 않는다는 말과도 일맥 상통할 수 있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집필한 한나 아렌트가 도입한 개념이다. 홀로코스트 대학살을 주관했던 아이히만이 매우 사악하고 악마와 같은 사람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오히려 아주 친절하고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가 스스로를 변론한 부분은, 나는 주어진 임무 이외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는 것이었다. 물론 나의 상상력을 가미한 극단적 예이긴 하다.


이런 환경이다 보니, 오지랖쟁이였던 나는 같은 현상에 다른 시선을 갖게 되었다. 즉 내 집중력을 키우는데 좀 더 애를 쓰게 된다. 아이들에게 교육을 할 때도, 나를 방해하는 것들에 대한 컴플레인이 아닌, 내가 가지고 있는 집중력에 대해 포커스를 맞추어 아이와 이야기를 하게 된다. 또한, 뒤를 돌아봐야 하는 순간은 선한 의지로 남을 도와줄 때뿐이라는 이야기도 하면서 말이다. 여전히 영역의 침범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가 아직 풀리지 않는 이슈이긴 하다. 이 한민족이라는 뿌리를 둔 가족이라는 사람을 어디까지 내 삶에 허용해 주어야 하는가 이다.


독일에 산지 3년이 넘어가고 있다. 한국인으로 산 세월이 너무 길기도 했고, 영역이라는 것이 모호했던 인도에서 보냈던 7년의 세월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내자아가 만들어내는 이질감을 여전히 안고 살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결국엔 이해하고 수용해야 하는 것은 내 몫이기에 오늘도 자잘한 사건들을 경험하며 이 나이에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본다. 아 중년에 머리 너무 좋아지는 게 아닌가 싶다. 냉철한 사고와 판단력을 가진 듯한 독일 사람들 틈에서, 종종 불같은 따스함과 동시에 다혈질인 인도사람들이 종종 생각이 난다. 내가 그들과 섞여있었을 때 왜 그렇게 분노가 치밀었었는지도 종종 되돌아보게 된다. 20대의 인도에 있던 나와, 40대에 독일에 있는 나를 비교해 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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