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일상에세이
농구공을 튀기는 소리가 난다. '쿵쿵쿵'
윗집 라우라네는 아들이 두 명 산다. 지금은 11살 8살 정도인 아이들이다.
층간소음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은 3년 전 처음 이사를 왔을 때부터이다.
모든 것에 낯선 우리 가족은, 밤낮으로 쿵쿵거리는 층간소음을 애써 모른 척하며 지냈다.
3년이 지난 지금, 우리 아이들도 라우라네 아이들도 자랐다. 아이들이 뛰는 소리는 점점 모르척하기엔 견디기 힘든 소음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방봉이 설치 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2층 침대에서 내려올 때 계단이 아닌, 소방봉으로 내려오고 싶다는 아이들의 요구가 있었다고 했다. 한두 명 내려올 때는 괜찮았는데, 그 소방봉을 거실로 옮겼다고 했다. 동네 모든 아이들이 놀러 와 소방봉에 점프해서 내려오는 상황이 소리로 보였다. 우르르 쾅쾅, 그래도 낮이고 30분 정도 놀고 나면 또 잦아드는 소음이기에 견뎠다.
이번에는 일요일 7:30부터 드럼을 연습하는 소리가 났다. 아.. 독일에서는 주말에 정말 어떤 소리도 내는 것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남편이 일요일부터 울리는 드럼소리에 깼다고 했다. 그러나, 그 덕에 일찍 일어났다는 긍정 마인드로 또 한 번 넘겼다.
그런데, 이번엔 공을 튀기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
그러던 중, 앞집 브리타네랑 차 한잔을 마시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브리타가 이야기를 꺼냈다.
"너 소음 괜찮아? 나 사실 오늘 라우라네 집에서 피자를 먹었는데, 애들이 정신없이 봉을 타면서 뛰어놀았어, 그리고 농구공도 튀기던데, 그런데 그 집의 특징이 누구 하나 안된다고 행동을 막는 사람이 없어 ㅜ, 그래서 우리도 그 집을 다녀오면 애들이 좀 많이 들뜨고 흥분해 있거든, 근데 문득 아랫집인 니네 집은 이 소음이 괜찮나 싶더라 "
아... 바로 이거지, 반가운 맘이 들었다.
" 음.. 사실 괜찮지 않지ㅜ, 사실 너무 시끄럽거든, , 어쩐지 공도 튀기는 소리도 들리더니, 그게 농구였다니 너무 놀랍네, 밤 11시에도 쿵쿵 댈 때도 있어서, 사실 얘기를 좀 해야 하나 생각하던 참이야 "
내 얘기를 듣더니 브리타가 대답했다.
" 오마이, 그건 정말 아닌 것 같다. 사실 아침부터 드럼을 친다는 이웃들의 컴플레인 때문에, 드럼도 버렸대. 그리고 아이들이 자꾸만 라우라네 집만 가, 왜냐하면 다른 집은 절대로 집안에서 뛰게 두는 경우가 거의 없거든. 근데 라우라네 집은 뛰게 두니까, 모든 아이들이 라우라네 집에 모인다는 소문이 있어 ㅜ "
나는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 나 어떻게 해야 하니 , 사실 라우라는 너무 착하고 사람 좋다는 걸 알고 있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
브리타는 잠시 생각하더니,
" 내가 생각을 해볼게, 음 일단 남편이랑 얘기를 해서 기회가 있을 때 우리 부부가 너희 집으로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마침 윗집 소음이 들렸고, 그게 얼마나 심했는지 얘기해 주는 거지."
난 고마운 맘이 들었다.
" 오 , 그렇게 해준다면 정말 고마울 것 같아, 나 사실 좀 곤란했거든, 아이들도 밤에 소음이 들리면 잠드는 게 방해될 정도여서 고민 중이었거든 "
하지만, 브리타가 이야기를 하기 전, 남편이 먼저 올라갔다. 일을 하는 중 위에서 쿵쿵 거리는 소리에 도저히 집중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 아이들이 공을 방에서 튀기는 것 같아 "
" 오 그렇구나 확인해 볼게 "
그 이후로 공튀기는 소리가 잦아드는 것도 잠시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엔 아들이 올라갔다. 아이들만 있었다고 했다.
이 미묘한 갈등 속, 나는 라우라를 아래 마켓에서 마주쳤다. 저쪽에서 다가오는 라우라가 보였다. 라우라도 나를 보았다. 라우라의 표정에서 난처함이 보였다. 어떻게 사태를 수습해야 하나 당황하는 기색도 보였다. 불편해하는 기색도 보였다. 그 표정에 나도 어색해졌다. 음, 내가 불편할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라우라는 반가웠지만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상황은 반가운 상황은 아니었다.
" 안녕 라우라 잘 지내지? "
난 웃으면서 말했다. 라우라가 말했다.
" 안녕, 그리고 미안해, 요즘 우리 소음 때문에 힘들지, 사실 마크가 ( 둘째 아들이다 ) 공에 대한 집착이 있어, 하지 말라고 하고는 있는데, 자제가 좀 안 돼 "
라우라가 보이는 미안함에, 순간 안쓰러운 맘이 들었다.
" 에고, 애들 자제시키느라 쉽지 않지? 나도 미안해 상황이 이래서, 그래도 우리 같이 이 상황을 잘 해결해 보자 "
" 아우 미안한 쪽은 나지, 그래 같이 잘해보자 "
서로에 대한 불편함이 서로에 대한 연민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우린 3년 만에 층간소음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만큼 이 지역사회에서 성장했다. 조금은 뿌듯하다. 3년 정도 내린 뿌리가 요 정도로 흔들리진 않을 거라는 확신이 생긴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 상황을 이해해 주며 도와주려고 한 앞집 브리타에게도 감사하다. 나에게 미움대신 미안함을 표시해 준 라우라에게도 감사하다.
이렇게 독일에서의 연말이 지나간다. 아이들과 남편과 집에서 한국말로 한국음식을 먹으며 지내다 밖에 나가면 여전히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그래서 문밖은 유럽이라는 어느 프로그램 이름이 매일 실감이 난다. 요 며칠은 답지 않게 영하 6도로 기온이 떨어졌다. 점점 오르는 난방비에 안에서도 단단히 옷을 입고 지내야 한다. 다만, 문밖에 나가면 느껴지는 시린 날씨가 마치 한국의 겨울 같다. 문밖을 나가도 왠지 덜 낯선 느낌은 이 날씨 덕인지, 3년 반의 세월 덕인지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