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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규민 Sep 18. 2023

단편소설_ 어쩌다가 부조리극 #3

“그 사람한테 연락은 한 거지?”


나는 싱크대 앞에 쭈그려 앉아 프라이팬을 찾으며 물었다. 누나는 찬장에서 도자기 그릇을 꺼내는 중이었는데, 까치발을 하고 이것저것 훑어보느라 대답은 뒷전이었다. 누나가 예약해둔 업체는 파티 음식을 전문적으로 만든다 자부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배달에는 영 전문이 아닌 모양이었다. 비가 오는 관계로 배송이 늦어질 수 있다고 메시지를 보내온 뒤로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우리는 음식을 바로 데울 수 있게끔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기로 했다. 할머니는 손님처럼 테이블에 앉아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정말 저 눈에는 우리가 예전 그 고등학생들로 보이는 걸까? 누나의 말에 따르면 근래 할머니는 매일이 자기 생일이라 여겨서, 저녁에 색다른 음식을 대접하지 않으면 눈에 띄게 실망한다고 했다. 문제는 할머니가 입맛만은 여전히 예민한 터라, 어제 했던 음식을 오늘 또 만들어 바치면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채는 것이었다. 누나가 그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할머니는 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미소를 짓다가도 툭하면 생각에 잠기는 게, 마치 어떤 일을 하려고 왔는데 그 일이 무엇인지 잊어버린 사람 같았다.


“언제 오기로 했는데.”


누나는 마침내 마음에 드는 그릇을 찾아 탁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았다.


“너 지금 뭐 혼잣말하는 거냐? 전화 안 받는 거 못 봤어? 안 그래도 정신없는데 진짜.”


“아니, 음식 말하는 게 아니고…….”


나는 가스레인지에 프라이팬을 올려놓고 누나를 뒤돌아봤다. 어떻게 하면 ‘아버지’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아버지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 궁리를 하다 보니 무슨 심각한 고민을 하는 듯한 자세가 되었다. 해묵은 원한을 품고 사는 건 아니지만, 부모를 뜻하는 호칭이 워낙 끈적끈적해서 입 밖에 내기 껄끄러웠다. 내가 사회생활을 하며 줄곧 불편을 느껴온 지점이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된 게 자기 앞의 사람을 한 명의 사람으로 바라볼 줄 몰랐다. 편의점에서 세트 할인 상품을 구입하듯이 꼭 다른 누군가와 엮어서 파악하는 식이었다. 누구의 후배이고 누구의 제자이며, 무엇보다 누구의 자녀인 게 왜 그렇게 중요한 질문거리인지, 중요한 게 아니라 의례적인 질문이라면 왜 그런 것 말고는 서로 할 말이 없는지 화병이 날 지경이었다. 진지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지 않아 화목한 4인 가정에서 자란 척 떠들어댄 적도 여러 번이었다.


누나는 그 점에서 나보다 편하게 살아왔을 듯했다. 나 역시 이 동네에 살 때는 누구에게도 부모에 관한 질문을 받아본 적 없었으니, 누나는 그런 일로 시달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누나가 아버지에 대해 조금도 적의를 보이지 않는다 해서 이상하게만 볼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런 걸까? 어른이 되기만 하면 유년기의 안 좋은 일이 다 책에서 읽은 이야기처럼 수긍할 만한 것이 되어버리는 걸까? 누나는 내가 아버지에 관해 묻고 있는 걸 알아차렸고, 다시 뒤돌아 선반을 정리하며 전에 한 말을 되풀이했다. 아버지는 요즘도 베트남에서 아이들 장난감을 들여오고 있다고. 그래서 사업 도중에 돌아오기 힘들 텐데, 어쨌든 그 사람이 할머니 아들이니까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웅얼거리는 거였다. 너무 합리적인 주장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누나는 업체에 또 전화해봐야겠다며 부엌을 나가버렸다. 계단을 밟아 2층으로 올라가는 뒷모습을 나는 망연히 바라보았다.


“너도 그냥 이해해주렴.”


쟤가 말은 거칠게 해도 너를 다 이해해, 라고 할머니는 약간의 사이를 두고 말했다. 창밖을 보며 웅얼거렸기 때문에 그것이 나를 향한 말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사방에 가득한 빗소리가 귓가를 건드렸다. 음식점 옆 풀숲에서 빗방울이 흙 두들기는 소리가 일정한 박자로 들려왔다. 대문 앞 처마에는 벌써 작은 폭포처럼 빗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2층을 뚫고 천장 너머의 빗방울을 볼 수 있다는 듯이.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비합리적일 때가 있지. 나는 그럴 적마다 내가 가족과 닮은 것 같아서 인상을 찌푸리곤 했는데, 여기까지 온 이상 내가 아주 합리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하긴 어려울 성싶었다. 상황을 곱씹어볼수록 다 우스운 짓거리 같았다. 우리는 효도라고 할 만한 일을 평생에 딱 하루 했을 뿐이다. 할머니를 그 10여 년 전의 하루에 가둬놓고 있는 게 대체 누구를 위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차라리 이 모든 게 연극이라고 진실을 알려주어야 할 것 같았다. 누나가 뭐라고 하든 간에.


그러니까 나는 할머니를 도와주는 셈이라고, 내가 더 양심적으로 행동하는 거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뭘 알려줄 처지가 아님을 알게 된 뒤로는 그 연극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계속 양복을 입고 있던 게 문제였을지도 몰랐다. 오래전에 우리를 맡겨놓으러 왔던 아버지도 양복을 입고 있었으니까. 그는 언제나 멀끔히 갖춰 입는 사람이었다. 중요한 약속이 있어 금방 떠나야 한다는 듯. 주방에만 전등이 켜져 있었다. 나는 그 불빛 아래 서 있다가 무대에서 내려오는 기분으로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어쩌면 그 동선이 문제였을지도 몰랐다. 혹은 확신으로 가득했을 내 표정이 문제였을지도. 할머니는 내가 맞은편 의자에 앉자 낯선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표정이 여느 때보다 행복하고 인자해 보여, 나는 누나가 왜 이토록 이상한 하루를 반복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그래서 누나가 하자는 대로 며칠 지내보는 것이 나쁘지 않겠다고도 생각했으나, 바로 다음 순간 할머니의 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호칭이 흘러나왔다. 사람을 헷갈려도 단단히 헷갈린 것이었다.     

     



지나간 일을 돌이켜볼 때면, 그 많은 장면 어디에도 나의 얼굴이 없다는 데 새삼 놀라곤 했다. 영화에 카메라가 찍히지 않는 것만큼 당연한 일이었지만, 사람의 기억은 영화와 달리 논리적이지 않아 골치 아픈 법이었다. 2층에서 1층으로 홀로 떨어져 나온 날 이후로 나의 어린 시절은 시간순으로 구성되지 않았다. 밤중에 깨어 주변을 둘러보면 사람의 얼굴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몰아치는 밤바다와 그 앞의 주방 식기들만이 시야를 메웠다. 열한 살짜리 꼬마의 겁먹은 눈길로 보든, 세상의 시시한 윤곽을 훑어볼 수 있게 된 고등학생의 시선으로 응시하든, 곁에 사람이 없을 때의 기억이란 그처럼 특색 없이 서로 뒤엉키는 것이었다. 그맘때 누나는 고교 친구들과 우정을 다지다가 주먹을 다쳐 정형외과에 다녔는데, 동네 노인들과 같이 누워 물리치료를 받다 보니 인생을 돌아보게 된 모양이었다. 누나가 붕대를 풀고 소주병이나 각목이 아닌 국자를 잡았을 때는 정말 나까지 돌잔치에서 눈물이라도 흘리는 기분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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