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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규민 Sep 18. 2023

단편소설_ 어쩌다가 부조리극 #4 (마지막 화)

나는 얼른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10대 후반을 견디던 중이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는 것이야말로 어른이 되는 가장 멋진 방법 같았다. 우리 집에 대학생이 될 사람은 나뿐이었으니, 할머니는 물론이고 아버지 역시 1년 치 등록금은 내주겠다고 전화로 선뜻 약속한 바 있었다. 나는 밤마다 마음속으로 홍대나 신촌 어딘가를 떠돌았다. 그 덕분에 할머니의 생일 파티도 퍽 정성을 다해 준비할 수 있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마지막이 되기에 괜찮을 장면이기도 했다. 우리가 파스타에 의도치 않게 참기름을 둘러버렸으나 할머니는 그마저도 해맑게 웃으며 먹어주었고, 어딘가에 숨겨놓았던 위스키를 꺼내 한 잔씩 나눠주기도 했다. 누나는 술을 처음 먹어보는 척하다가 우아, 확실히 비싼 건 다르네, 라고 저도 모르게 말한 뒤 폭소를 터뜨렸다. 나는 취한 채 케이크를 집어 먹다가 우리가 폭죽을 챙기지 않았음을 알아차렸다. 그러자 누나는 더욱 신나서 밖으로 뛰쳐나가 떨이로 불꽃놀이 키트를 몽땅 쓸어왔고, 우리는 다 함께 바닷가로 나가 터무니없을 만큼 많은 화약을 공중으로 쏘아 올렸다.


몇 년이 지나 나는 계획한 대로 서울로 떠났지만, 대학 술자리에서 흰소리를 떠들면서도 그 파티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해본 적이 없었다. 말도 못 할 만큼 소중해서가 아니라, 말을 하다 보면 자꾸 생각을 하게 될 것 같아서. 스무 살 무렵까지 나에게 남은 기억은 크게 두 종류였다. 표정이 없는 물건들 틈에 홀로 머물던 나날과 폭죽만큼 요란하게 함께 웃어대던 찰나. 둘 중 어디에 무게 추를 달아야 할지는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말없이 할머니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누나는 전화를 마치고 1층으로 내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배달원이 빗줄기를 뚫고 와 문을 두드렸다. 이미 다 조리된 음식이 테이블에 하나씩 놓였다. 그 모습은 마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림이 입체적으로 튀어 오르는 어린이책 같았다. 은쟁반에 담긴 소고기 요리에서 뜨끈하게 김이 올랐고, 샐러드는 방금 밭에서 따온 것처럼 푸르고 신선했다. 평생 음식점을 운영해온 할머니도 이렇게 눈앞에서 뷔페가 만들어지는 건 처음 볼 터였다.


우리는 곧장 접시를 들고 음식 앞으로 향했다. 누나가 말한 것보다 가짓수가 더 많았다. 과하다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지구본을 팽팽 돌리며 몇 군데 무작위로 찍은 뒤 그 나라 음식을 대령하라고 시킨 듯했다. 나는 누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혼자 못 견디겠으니 얼른 오라고 전화하던 걸 나는 분명히 기억하는데, 지금 보니 누나는 할머니를 돌보느라 고생하는 기색이 전혀 아니었다. 언제 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미소를 만면에 띠우고 있었다.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 다 웃으며 식사하는 모습이 나에게는 낯설기만 했다. 사실 누나는 이 상황을 나름대로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때 들었다. 간혹 할머니가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는 양 멍하니 있으면, 누나는 요란하게 농담을 던졌다. 관광객의 주의를 끄는 가이드처럼.


“좀 웃지 그래.”


할머니가 화장실에 간 사이 누나는 나에게 한마디 던졌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부드러웠다. 술기운 때문일 수도 있었고, 향수에 취한 걸 수도 있었다. 누나가 내놓은 레드 와인이 테이블에 놓여 있었지만, 나는 내 잔에 따라놓은 것조차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마셨다가는 너무 많은 걸 납득해버릴 것 같았다. 문득 목구멍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밀었다. 웃으라는 말 같은 걸 함부로 하면 안 되지. 나는 미소를 짓기는커녕 입술을 꾹 다물고, 싸늘하게 식은 소고기를 포크로 하나씩 뭉갰다. 누나는 할머니가 화장실에 너무 오래 있는 것 같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텅 빈 홀에서 계속 음식을 짓이겼다. 할머니의 마지막 기억에 내가 없다면, 나는 어떤 대답을 해줘야 할까? 이제 할머니는 나를 볼 때마다 아버지를 보는 셈이니, 우리 중에서 내가 가장 먼저 죽음을 경험한 셈이었다.


그리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의자 등받이에 체중을 실으며 고개를 젖혔다. 누나가 헬륨으로 부풀렸을 풍선들이 알록달록하게 천장을 장식하고 있었다. 누나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왜 울상을 하고 앉아 아무것도 먹지 않고 오가는 말에 한번 웃지도 않는지. 우리 세 사람이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적막한 분위기를 못 견뎌 와인을 단번에 마셔버린 뒤 2층에 올라가자, 누나가 모든 걸 알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2층 다락방은 순식간에 작아진 듯 보였다. 몇 걸음 안 되는 계단 통로에 양어깨가 닿을 지경이었고, 어릴 적 누나와 술래잡기하던 진녹색 커튼들은 이제 한 손으로 쥐어뜯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 너머에 있는 것을 보고 질겁했다니 한편으론 우스운 일이었다. 하지만 우스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유년기의 한 풍경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알고 있었어?”


이거 말이야, 라고 말하듯 나는 커튼 너머에 가득 쌓여 있는 싸구려 인형들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오른쪽 침대에는 인형이 여럿 뒹굴고 있었고, 왼쪽 창가 테이블에도 반려동물인 양 인형이 앉아 있었다. 언젠가 할머니는 아버지가 왜 빚을 지면서까지 장난감 사업에 열을 올리는지 이야기해준 적 있었다. 네 할아버지는 네 아빠 얼굴도 못 보고 죽었단다. 우리는 늘 가난했고 그맘때 아이들 사이 유행하던 고무줄 총도 살 여유가 없었어. 네 아빠가 처음으로 씩씩대며 떼를 쓰는데 나는 회초리를 들 수밖에는……. 정말 그런 것 때문일까? 누군가의 잘못에 이유를 갖다 붙이는 것은 색칠 놀이와 다름없는 짓이 아닐까? 지금 할머니가 기억을 멋대로 뒤섞어놓은 채 죽어가듯이. 누나는 오랫동안 대답이 없었고,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려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알고 있었구나.”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누나는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그게 어쩐지 추워서 몸을 감싸는 몸짓과 비슷해 보였다. 뺨은 발갛게 달아올랐으나, 왠지 하얗게 질린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누나는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영리한 사람일 수도 있었다. 오히려 내가 아둔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할머니의 머릿속을 비밀에 부칠 수 있다고 믿었는지도 몰랐다. 나는 무슨 거짓말이든 하고 싶어졌다. 누나를 겁에 질리게 한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았다.


“할머니가 혼자 있고 싶으시다는 거.”


“…….”


술 때문인 것 같았다. 그렇게 기억하기로 했다. 일단 입을 열자 내 뱃속에 있는 줄도 몰랐던 이야기가 줄줄이 흘러나왔다. 누나는 평소처럼 인상을 찌푸렸다가 점차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의 기억은 이랬다. 음식이 오기 전, 누나가 2층에서 전화를 하고 있을 때 나는 할머니와 긴 대화를 나누었다. 할머니는 바닥에 떨어뜨린 게 있는 것마냥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한순간 무서울 만치 침착하게 말했다. 더는 가족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고. 이제 이곳을 벗어나고 싶구나. 너무 오래 있었어. 누나는 내 말을 순순히 믿진 않는 기색이었지만, 그렇다고 고개를 홱 돌릴 수는 없는 눈치였다. 우리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애새끼들이었다. 금방이라도 발을 구르며 난장을 피울 것 같았다. 그러면 할머니는 헐레벌떡 계단을 오르겠지. 나는 겁을 집어먹고 커튼 속에 숨어 있는데 누나는 자랑하듯이 자초지종을 설명하겠지……. 그러나 이번에는 1층에서 소란이 일었다. 날붙이들이 와르르 떨어지는 소리. 주방에서 났을 그 소리는 질주하듯 2층까지 올라왔다. 누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달려 내려갔다. 나는 이야기를 끝맺지 못한 채 홀로 서 있었다.     




암전.     




언젠가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람은 어두운 곳에서 잠을 청하고, 밤이 오기 전에는 어둠을 볼 일이 없기 때문에, 어둠이 침무과 어울린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눈을 감으면 모든 소리가 수십 발자국 가까이 다가온다. 오래전 불꽃놀이가 끝나고 내가 경험한 순간도 그런 것이었다. 끝이 없을 듯하던 폭발음 뒤에는 소란 끝에 늘 찾아오는 침묵이 있었고, 눈을 감으니 밤바다 한복판에 둥둥 떠 있듯 묘한 기분이 되었다. 파도 소리가 귓바퀴를 메웠다. 자냐? 누나가 킥킥대며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우리 모두 그런 순간으로 걸어가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10대 특유의 감상에 젖어 있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감상에 젖을 수 있지 않을까. 누나가 내려간 뒤로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실수로 남의 집에 들어온 사람처럼 조심스레 계단을 밟았다. 왜인지 1층 불이 다 꺼져 있었다. 누나는 계단을 끝까지 내려가지도 못한 채 뒷모습으로 서 있었다.


아버지를 불렀다는 말이 거짓말일 줄은 알았지만, 나는 그게 잘한 일이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저녁에 우리는 큰 실수를 저지른 것 같았다. 할머니는 부엌 창문 앞에 서서 바다를 내다보고 있었다. 파도는 시퍼렇게 달려드는데, 그걸 지켜보는 눈빛은 어떨지 알 수가 없었다. 창문으로 보이는 밤바다와 할머니의 뒷모습은 한 장의 사진처럼 잘 어울렸다. 당장이라도 그쪽 세상으로 걸어 들어가 우리에게 손을 흔들 듯했다. 오늘이야말로 마지막인 걸까? 그럴지도. 나는 그래도 좋을 것 같았다. 우리가 우리 생각보다 중요한 존재가 아닐 수 있음을 이제 알았으니까. 할머니가 기억을 잃어버려 우리가 알 수 없게 된 것도, 다른 무엇이 아니라 할머니의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나는 눈을 감고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어떤 농담이 어울릴지 궁리하며 계단을 내려갔다. 여느 때처럼 창문 속 파도에는 소리가 없었다.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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