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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 Oct 26. 2020

그렇게 엄마가 된다.

마음을 안아주는 생각들

삽 십 대 후반이 되면서부터 생긴 버릇이 있다. 그건 바로 손을 닦고 난 뒤 핸드크림을 꼼꼼하게 바르는 것이다.
지금보다 어려서는 그럴 줄을 몰랐다. 손을 씻고 나서도 건조함을 느끼지 않았고 손이 거칠다는 생각을 해보질 못했다. 그러나 서른 후반 즈음이 되면서부터 핸드크림을 바르지 않고서는 손이 너무나 서걱거렸다.  날이 쌀쌀해지면 손부터 건조하고 갈라지다가 피가 나고 아프기까지 했다. 나이가 들면서 손까지 거칠어지니까 조금 서글프기 시작했만 속을 가만 들여다보면 나이는 핑계였다. 손을 많이 써야 하는 내 삶이, 아이 둘을 키우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며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던 그 시절이 서글픈 것이었다.

지난겨울에, 본인이 원하던 시기보다 좀 늦게 결혼을 한 친구가 있어서 결혼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늦게 간만큼 배로 더  잘 살라며 친구의 손을 꼭 잡았을 때 정말 깜짝 놀랐었다. 의 감촉이 찹쌀떡을 잡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보들보들하고 쫀득하고. 같은 나이였는데 친구의 손이 그렇게 아기 손같이 보드라운 것을 느낀 순간부터 며칠 동안 우울감이 가시질 않았다. 뭐하러 빨리 결혼은 해서는. 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모자란 것 같이 느껴졌 거친 내 두 손을 내려다보면 꼭 손들이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너무 힘들다고, 삶이 무겁다고. 그러나 우울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바쁘고 정신없는 엄마란 존재의 일상 우울한 감정을 뒤덮었고 슬프거나 아쉬울 새 없이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버렸다.


얼마 전 그렇게 늦게 결혼한 친구가 드디어 아이를 낳았고 초보 엄마의 대에 들어선 것을 기념하기 위해 친구네 집을 찾았다. 친구가 아기를 낳았던 3월 무렵부터 코로나 경계단계가 1단계까지 내려가도록 기다리느라 몇 개월의 시간이 흘렀으니, 아기는 벌써 포동포동한 6개월의 귀여운 아기돼지가 되어있었다. 얀 두 볼이 토실토실한 아가는 맑은 눈으로 엄마가 아닌 낯선 방문자를 바라보았다.


'어머나, 너무 예쁘다!' 


오랜만에 그렇게 작은 아가를 품에 안 감회가 새로웠다. 애교라곤 없던 친구가 내 품에 안긴 아기에게 우르르 까꿍을 외치며 어찌나 밝게 웃던지. 모자의 모습을 보다가 문득 정신없이 애들 키우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이렇게 예뻐하며 키웠가. 지친 마음만 기억했지 사랑했던 시간을 기억하진 못하고 산거 같아 친구의 아기를 품에 안고서 우리 애들에게 미안한 마음 가슴에 닿아 순간 저릿했다.

친구는 원래 느긋하고 움직이기를 싫어하는 스타일이었다. 만삭일 때 함께 밥을 먹으며 '나 같은 사람이 엄마 노릇을 잘할 수 있겠어?' 하며 걱정하던 녀석이었지만 엄마가 되니 부지런을 떠는 모습이 다른 엄마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잠이 부족하고 손이 바쁘고 몸이 고단한 육아계로 발을 풍덩 담그고선 머리 풀어헤치고 열심히, 열심히 살고 있었다.
그렇게 보드랍던 손을 가진 친구도 아기 엄마가 되니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친구의 집에 도착했을 때 친구는 이유식을 만드느라 한창이었고 이유식을 다 만들어 아기를 먹이고는 또 그릇을 씻고, 이유식으로 얼굴이 범벅이 된 아기를 닦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날은 친구의 손을 만져보지 않았어도 결혼식 때보다 많이 거칠어졌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친구가 안쓰럽긴 했지만 기특한 마음이 앞섰다.


엄마가 되어간다는 것은 참 되지만 분명 세상에서 가장 값진 이다. 사람이 하는 세상의 일은 모두 사람을 위한 것들인데, 하물며 사람 하나를 만들어내는 일은 얼마나 더 고귀한 일인가. 이제 막 그 길로 들어선 친구에게 나는 마음으로 무한한 응원을 보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엔 문득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도 나처럼, 내 친구처럼 나를 키우셨겠지. 유난히 거칠던 엄마의 손이 기억났다. 어릴 적, 내가 등을 긁어달라고 하면 엄마는 손가락을 세워 등을 긁는 것이 아니라 손바닥으로 내 등을 긁어주었다. 엄마의 손은 무척이나 투박하고 거칠어서 손바닥으로도 등이 시원하곤 했다.
 
'아유... 세탁기가 어딨어. 너희 아빠 월급이 제때 나오질 않아서 난 그 흔한 짤순이도 남들 세탁기 장만할 때야 살 수 있었는데. 어떻게 그 빨래를 다 했나 몰라. 한겨울에도 수돗가에 앉아 다섯 식구 빨래를 다 빨아서 짜고. 두 손이 빨갛게 다 터서는... 그때 손이 이렇게 되어버렸어.'


 마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엄마처럼 그렇게 손이 거칠게 변해버렸다. 세탁기가 생겼어도 아이를 씻기고 밥을 하는 일을 맡아 줄 기계는 생겨나지 않았다. 엄마의 역할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제아무리 세상이 발전했어도 엄마의 마음, 엄마의 품, 엄마의 냄새 찾는 아이들은 엄마의 속을 비집고 들어와 엄마의 손길로 커나간다.


'엄마 손은 왜 이렇게 시원해?'


엄마가 내게 해주었던 것처럼 나도 아이의 등을 긁어주어려서 내가 했던 그 질문이 시간이 흘러 똑같이 내게로 돌아왔다. 시간의 순환 속에서 '내리사랑'이라는 그 흔하던, 그러나 이제야 조금 이해가 갈법한 단어를 떠올린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있음을 엄마가 된 두 손 끝에서부터 느끼고 있다. 언젠가 우리 아이들도 똑같은 말을 듣게 되려나. 엄마의 세월은 참... 빠르다.





사진/영화 '82년생 김지영'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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