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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 Nov 04. 2020

그대, 그 고운 마음 부디 다치지 않기를.

마음을 안아주는 생각들

친하게 지내는 선배네가 있다. 부부는 평소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선의를 베푸는데 한 번은 내가 듣기에도 너무 좋은 일을 하셨지만, 왠지 그 이야기를 듣는 내 마음 깊은 곳이 조금은 걱정되던 순간이 있었다.

선배가 하루는 시장에 가려고 아파트 단지에 놀이터를 지나가, 한 아이가 혼자 미끄럼틀 앞에서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을 보았단다.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지나치려는데 아이의 손가락 사이로 피가 철철 흘러넘치는 순간, 선배는 너무 깜짝 놀라서 아이에게 다가갔다. 급히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며 아이의 눈을 보았더니, 다행히 눈이 다친 것이 아니라 눈썹 쪽에 상처가 깊게 파여 있었. 상처가 너무 많이 벌어져서 피가 흐르고 있는 상황이라 선배는 다급하게 집에 있는 남편에게 연락을 했고 남편과 함께 아이를 데리고 근처 응급실로 향했다.

하지만 살고 있는 지역이 지방이라 진료 과가 던 응급실에서는 성형외과 쪽으로 가야 할 것 같다며 아이와 선배네 부부를 돌려보냈고, 그들은 급히 좀 멀리 떨어져 있는 대학병원 응급실로 다시 차를 몰고 달려갔다.

그동안 직장에서 연락이 닿지 않던 아이의 부모 겨우 도착을 했고, 선배 부부는 아이가 무사히 봉합수술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한밤 중이 되어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다음 날, 선배에게 아이의 어머니가 연락을 해 너무나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하였으나 선배 부부는 기여코 사양을 했다. 그래도 무언가라도 답례를 하고 싶어 하는 아이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그럼 차를 한잔 마시자고 선배가 대답을 더란다.

아이는 수술이 끝나자마자 아까 자기를 병원에 데려다주었던 아줌마가 어딨냐고 물었고 집에 돌아가셨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는 '엄마, 그 아줌마 너무 고마운 분이에요. 피 흘리는 날 보고 아줌마는 얼마나 놀라셨을까요?'는 말을 했다고 한다. 자기를 구해주었던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동시에 걱정까지 했다는 아이의 마음이 너무 예뻤다. 아이의 엄마도 인품이 좋은 분 같았고 선배에게 차 한잔밖에 대접하는 것이 못내 아쉬워하며 돌아갔단다.

선배는 무언가를 바라지 않고 도와준 선의의 마음에 그렇게 고마워만 해주는 것으로도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만일 아이가 다친 것에 대해 잘 알지도 모르면서 병원에 데리고 간 선배 부부를 의심하거나 경계했다면  마음의 상처가 되었을 텐데, 도움이 필요한 순간 도움을 주고 또 고마운 인사를 받았으니 그으로도 되었다고 덧붙이며.


선배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전에 내가 살던 동네에서 일어난 일이 생각났다. 부부 싸움을 말리던 대학생들이 부부에게 고소를 당했던 일이었다.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상황에서 대학생들이 용기를 내 아내를 구해주었지만 사건 이후 부부는 합심하여 대학생들을 폭행죄로 고소했고 학생들은 폭행 합의금을 물어주었으며 마음의 깊은 상처를 받았다. 그 일을 전해 듣고는 나도 누군가를 돕는 것조차 겁이 다. 이후로 나는 누군가를 도울 때 솔직히 두려움이 앞섰다. 낯선 이를 돕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게 되어 지하철에서 길을 묻는 아저씨에게 한 발자국 떨어져 길을 가르쳐 드리거나, 핸드폰을 빌려달라는 청년의 부탁을 기꺼이 들어주기가 겁이 나 망설이며 마지못해 핸드폰을 빌려 준 적도 있다. 나도 그 대학생들처럼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 봐 랬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이곳은 나 같이 소심한 두려움을 앞세우는 사람보다 배와 대학생들 같이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많은 사람이 모여 따뜻하고 살아갈 맛이 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길거리의 다친 아이를 돕고, 맞는 여자를 구한 그들의 의지만은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속에 꽃처럼 피어나고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을 거라고 아직은 믿고 싶다.

부디 선배가 앞으로도 좋은 일을 할 때, 혹여 나쁜 마음을 가진 이들로부터 오해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좋은 사람들을 돕고 또 그 마무리도 좋은 마음으로만 끝이 나기를. 선배의 그 고운 마음에 상처가 나지 않기를 바라는, 미담을 듣고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세상에 사는 우리가 조금은 서글픈 날이었다.

 


사진/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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