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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 Nov 09. 2020

나는 너무 예쁜 17살이야.

마음을 안아주는 생각들

17살인 딸아이는 엄마인 나와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졌다. 조용하고 사람이 많이 없는 곳을 좋아하는 나와는 달리 아이는 사람 많고 북적북적한 곳을 좋아한다.

간이 세지  않고 담백한 음식을 좋아하는 나와는 다르게 달고 매콤한 음식좋아하며 생전 춤이란 걸 춰본 적이 없는 나와는 달리 학교 행사에서 늘 대표로 나가 춤을 추고 상을 받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게 활달하고 성격 좋은 딸을 키워 좋겠다고 말을 하고 나도 그 점이 다행이라 여기긴 하지만, 나 우리 딸아이에게 조금 아쉬운 점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살.


우리 아이는 원래 2.6킬로그램의 자그마한 몸집으로 태어났다. 입이 짧고 잘 먹지도 않아 유난히 잔병치례도 많았다. 결국 선천적으로 심장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받게 되어 생후 두 돌 무렵 수술을 하고 나서부터 아이는 무럭무럭 크고 잘 먹고 하더니 6살엔 또래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클 뿐 아니라, 몸무게 또한 훨씬 더 나가기 시작했다.


에이, 설마 비만은 되겠어?라고 생각하며 먹성 좋은 아이를 걷어 먹이기 n차. 이제 우리 아이는 세상의 가장 큰 기쁨은 먹는 것이라 여기는 17살 꽃돼지 여고생이 되었다. 게다가 어느 날은 미용실 아줌마가 머리를 잘못 잘라 망쳐버렸다고 두어 시간을 펑펑 울더니 다른 미용실을 찾아가서는 남자들이 하는 투 블록의 커트머리를 하고 나타났다.


"엄마엄마, 나 오늘 엄청 웃기는 일 있었어. 내가 쇼핑몰 여자 화장실을 갔는데 어떤 언니가 깜짝 놀라면서 여기 여자화장실인데요? 하고 나한테 화를 내는 거야. 그래서 나도 화를 냈어. 저 여자인데요! 하구. 크크크. 그 언니 놀라 갖고 죄송해요! 하고 막 도망갔다?"

청소년을 키우는 엄마라면 알 것이다. 그 나이의 아이는 내 마음대로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잔뜩 받아왔길래, 이러다가 성 정체성에도 영향이 갈까 싶어 머리를 기르라고 별의별 협박과 회유책을 다 써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무슨 걱정을 하는 거야 엄마. 믿기지 않겠지만 나도 남자 좋아해 흐흐."


능글맞게 내 걱정을 대하던 녀석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최근엔 머리를 기르겠다고 선포다. 나는 좀 더 욕심이 나 살도 10 킬로그램쯤 빼보는 게 어떻겠냐 산책을 하던 중에 소심하고도 조심스럽게 물어보다.


"우리 딸, 살 조금만 빼면 정말 이쁠 거 같은데."


"아니? 나 지금도 예쁜데? 살 안 뺄 건데."


마침, 지나가던 여고생이 긴 생머리에 날씬하고 키도 커서 너무 예쁘길래 내가


"우리 딸이 키도 더 큰데. 살 조금만 빼면 쟤보다 더 예쁠 거 같은데."


하고 눈치를 보며 말했더니,


"엄마 이제 나한테 살 빼란 말 좀 그만해. 난 지금 내 모습이 너무 예쁘고 훌륭한데 왜 자꾸 살 빼라고 그러는 거야?"


라고 성을 내며 말했다. 나도 나름 눈치 보느라 힘들었는데 딸아이가 소리를 지르니 나도 화가 났다.


"솔직히 좀 찌긴 쪘잖아. 객관적으로 좀 비만으로 보다고."


"아니, 난 지금 이대로 내 모습이 너무 좋아.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보면 거울 속에 너무 예쁜 17살 내가 있는데? 그러니까 다신 나한테 살 빼라고 하지 마. 엄마 눈엔 저런 말라깽이들이 예뻐 보이는 거 같은데, 내가 더 훨씬 예뻐."


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자기가 자기 모습이 너무 만족스럽다고 하는데 내가 더 무슨 말을 하리.  다가 자신이 예쁘다고 주장하는 모습을 보니, 그 말이 왠지 맞는 것 같기도 했다.

자신에게 만족스럽다는 딸아이의 태도 또한 좀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흔이 넘도록 외모나 삶에 있어서 늘 불만족뿐이었던 나를 돌아보면 그리 행복 모습은 아니었다.


앞으로의 일걱정이 된다. 사회에 발을 딛는 순간, 걸그룹과 케이팝이 최고인 이 나라에서 외모로 인한 차별이나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해서다. 하지만 본인의 선택이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문제다. 것이 차별이고 상처인지도 당사자가 아닌 내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나부터 마음을 좀 바꿔야겠다는 심을 했다. '맞아, 넌 정말 예쁘고 훌륭해!'라고 진심으로 말해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우리 아이가 외롭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아이를 볼 때마다 갖 외모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인 생각을 최대한 지우기로 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아직좀 어렵긴 하다. 유년시절, '여자는 살찌면 못써."라는 말을 듣고 살아왔던 나였기에. 55 사이즈의 옷을 입기 위해 평생 다이어트를 했었기에. 많이 늦었지만 비로소 우리 아이로 인해 알게 되었다. 누구나 고유한 아름다움을 품고 살 수 있다고. 내 아름다움은 외모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님을.

딸아이의 건강을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오늘도 아이를 보고 말해려고 한다.


넌 너무 예쁜 17살이야.





사진/영화 '걸후드'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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