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이었다. 집에 오는 길에 친한 동네 언니를 마침 지하철역에서 만나 같이 가게 되었다.
지하철 역 개찰구 근처에서 언니의 모습이 보였는데 바로 옆의 구세군 냄비도 내 시야에 들어왔다. 잘됐다 싶어 언니에게 손을 흔들며 자연스럽게 구세군 냄비로 다가가 지갑에 있던 5천 원을 꺼내 냄비에 넣고 언니에게로 갔다. 근데 언니의 반응이 좀 의외였다.
너 지금 구세군 냄비에 돈 얼마 넣었어?
응? 5천 원. 왜?
야, 무슨 5천 원이나 넣고 그래. 그냥 천 원짜리 한 장이면 되는 거지. 너 엄청 오지랖이다.
음. 그런가? 5천 원 넣으면 오지랖인 거야? 냄비 안에 만 원짜리도 많던데. 오늘은 지갑에 돈이 없어서 그렇지 만 원짜리 넣었던 해도 있었는 걸.
너 저번에 나랑 같이 다이소에서 2천 원짜리 겨울 양말 사는 거도 망설였으면서 5천 원이 웬 말이냐? 너나 잘 챙겨.
흐흐. 생각해 보니까 그렇네. 근데 물가를 생각하면 기부도 5천 원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천 원만 넣어도 괜찮긴 하지만 일 년에 한 번 넣는 건데 5천 원 그렇게 큰돈은 아닌 거 같은데.
난 암튼 반대야. 요즘 다들 어렵고 힘든데 남 돕는 일에 그렇게 나서는 건 난 오지랖이라고 봐. 나 살기도 힘든데.
평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을 추구하는 언니에겐 어쩌면 나의 오천 원은 꽤 쓸모없는 비용으로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언니가 인색한 사람도 전혀 아니다. 늘 자신이 할 수 있는 적당한 선과 예의를 지키며 타인을 돌보는 부담스럽지 않은, 그러나 따스한 사람이기도 하다.
언니의 조언을 서운하게, 고깝게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한 생각일 수도 있고 서로의 생각과 의견이 차이가 날 수도 있음도 인정한다.
나는 내 오천 원이 그렇게 큰돈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오히려 만원의 반토막을 내는 게 좀 머쓱하기도 했다. 평소 언니의 의견엔 귀를 기울이고 맞장구를 치는 편이었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잉? 오천 원이 그렇게 놀랄 일이라고?
부끄럽지만 일 년에 한 번 구세군 냄비에 돈을 넣는 행위를 해마다 하고 있다. 부러 어딘가에 기부를 하지도 않는 내게 그 행위는 어쩌면 그나마 착하게라도 살고 있다는 증표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선한 행위를 하며 나 자신을 위로하는 것 같은 기분에 드는 게 사실이니. 이 것이 정말 불쌍한 사람들을 위한 마음인지 나를 위한 마음인지도 솔직히 헷갈린다.
그러나 나는 내년에도 구세군 냄비에 돈을 넣을 것이다. 이왕이면 유명 작가가 되어 봉투에 한 100만 원쯤 넣는 상상도 해본다. 오지랖이면 어떻고 자기 위안이면 어떤가. 그 작은 마음들이 모여 힘든 이들의 연탄을 사는데 한 장이라도 보탬이 되면 그만인 것을.
사진/ 중부일보
많은 분들이 관심 갖고 읽어주시고 댓글도 남겨주셔서 덧붙이자면,
언니에게는 미리 글을 보여주고 허락을 받았답니다.
지금의 모든 반응도 아주 재미있게 지켜보고 계세요.( 자기 편도 많은 것 같아 기쁘다 합니다)
구세군과 기부 방법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사전조사가 없었던 데에는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부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나누기보단, 그저 일상적인 일에서 마음의 조각을 발견하는 글이려니 생각하시고 가볍게 읽어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