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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 Sep 30. 2021

마흔의 오지랖

퇴근 후 내가 타는 버스는 언제나 만원이다. 어떤 날은 거짓말을 조금 보태어 100미터의 줄이 생기기도 하는데, 때문에 자리 경쟁은 언제나 치열할 수밖에 없다.

그제는 그 버스에 초등 형제가 탔다. 퇴근시간에 아이 둘이 버스에 타 앉을자리가 없어 두리번거리는데, 3, 4학년으로 되어 보이는 작은 아이를 보자, 그 앞에 앉아있는 내 마음이 흔들렸다. 집에 있는 우리 둘째 아이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올라 아마 그랬을 것이다.


아이를 불러 내 자리에 앉게 하고 나는 일어났다. 아이가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다가 내가 ' 넘어지면 다쳐, 여기 앉아.' 하며 일어나자 공손히 감사하다 인사를 했다. 녀석, 꽤나 의젓하구나. 저절로 엄마미소가 지어졌다.


어쩌면 내가 오지랖을 부린 것일지도 모른다. 버스 안에 아이를 보고 아무도 일어나는 사람은 없었고 조금 멀리 떨어진 내가 아이를 불러 앉혔으니, 누군가는 '어우 왜 저래' 하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엄마 된 입장에서 서 있는 꼬마가 흔들리는 버스를 타고 가게 둘 수는 없었다. 아이는 다섯 정거장 즈음 가서 인사를 공손히 하고 내리는 바람에 나는 남은 시간을 다시 앉아 편안히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아이를 보내고 앉아있자니, 오래전 방송일을 하던 때가 생각이 났다. 옆팀이 메디컬 다큐를 하는 팀이었는데 전날 방송에서 병마와 투병하는 아이가 예쁜 여자아이면 사무실 전화기에 도와주고 싶다는 사람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아이의 외모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날엔 전화 한 통이 없이 잠잠했다.


하필이면 내가 자리를 양보했던 순간, 그 기억이 났다. 예쁜 여자아이가 버스에 탔다면 누군가는 나보다 더 먼저 양보를 했을까? 같은 버스에 탄 사람들의 검은 머리가 버스 진동에 덜컹 일 때마다 내 마음 함께 흔들다.


억지로 착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자리를 양보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 아이라면 당연히 서서 갔을 내 마음이 불편하기 싫어서 나도 내 마음을 위해 욕심을 낸 것이었다. 그러나  자리를 양보하고 특정하지 않는 누군가에게 조금은 서운한 생각이 드는 날이었다. 사람들의 야속한 마음이 얄궂게 내 마음을 흔드는 퇴근길이었다.


마흔의 오지랖이라고 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여태껏 살아보니 '아이'라는 생명체는 그냥 타인으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어느 날은 내 아이의 얼굴이 겹쳐 보이고 그런다. 그리고 아줌마들은 안다. 이런 관심, 오지랖 하나가 어느 날엔 꽤나 유용하기도 하단 걸.


버스에서 내려 집에 걷다 우리 집을 올려다보았다. 둘째 녀석의 방 창문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만일 언젠가 누구라도 우리 아들을 본다면 다 컸다고, 혹은 남자아이라고 아니면 약해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도움이 필요할 때 기꺼이 손을 내밀어줄 어른을 만나게 되길 기도했다. 그건 오늘의 내 마음이 부디 우리 아이에게도 한 번은 돌아와 주길 바라는 엄마의 작은 욕심이었다. 



사진/ 영화 '어느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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