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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 Oct 05. 2021

마흔둘, 퇴사를 결심하다.

"마지막 퇴사일 지도 몰라, 어쩌면 마지막 이직일 수도 있겠지."


5년 전, 언니가 마흔 둘일 때 했던 말이었다. 여자 나이 마흔둘. 이직을 결심하며 언니는 어쩌면 그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언니는 더 좋은 조건의 회사로 마지막 이직을 했고 다행히 지금까지도 다니고 있는 중이다.


그때, 언니의 이직을 접하며 나는 부러운 마음을 가졌다. 나에게도 이직이란 새로운 세계가 열릴 수 있을까? 내가 일하고 있는 분야에서, 나의 보잘것없는 스펙에서의 이직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5년이 흘러 언니와 같은 말을 하게 됐다. 퇴사. 그리고 이직이라고.


결심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15년간 해왔던 일을 그만두고 다소 다른 분야의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나란 사람 자체가 현 직장의 매뉴얼로 똘똘 뭉친 기계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내 몸 어느 한구석에 버튼이라도 달린 듯, 달달 외운 구구단처럼. 나는 기계적으로, 아주 상투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건, 너무 지루하고 또 지긋지긋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그만큼 너무나 편하고 익숙한 일이라는 증거기도 했다. 어느 순간에서 어떤 일이 생겨도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일. 그런 일을 한다는 건 참 편한 거니까. 그래서 지금의 편안함을 버리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좀 다르게도 한번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내가 할 수 있는 새로운 일자리가 나기도 했고, 늘 제자리였던 지금보다 미래가 나아진다는 좋은 조건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이렇게 익숙한 일을 포기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아쉬움이 아직도 남아있다. 늘 아메리카노를 먹었는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 캐러멜 마끼아또를 먹었다가 목이 따가운 달달함에 금방 후회를 해버렸던 기억처럼, 이 일도 그러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이.


그러나 나는 내 나이를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어쩌면 이직에 있어 너무나 불안한 여자 나이 마흔 줄에 잘못 옮겼다가 큰 코를 당할 수도 있겠지만, 이 나이 되어 보니 세상 사는 거 그렇게 대단할 것도 없다는 걸 알았기에. 내가 겪었던 어떤 큰일도 지나고 나니 별 것 아니었고, 폭풍 같던 시간도 흘러가 보니 그저 바람이었다는 걸 느껴버렸기에 그렇다.


"응원해줘!"


친구들에게 이직 소식을 알리며 응원의 부탁을 했다. 그러나 그건, 새로운 기대와 포부를 다짐한 나 자신에게 하는 당부와 지지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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