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친정에 들렀다가 집에 돌아오려는데 아빠가 내 등 뒤에 이 말을 던졌다. 대답 대신 아빠를 한껏 째려보고는 나는 문을 쾅 닫고 나왔다. 아빠가 정말 , 아주 정말 미웠다.
학창 시절 내가 제일 부러웠던 아이는 차를 가지고 학교 앞으로 데리러 오는 아이였다. 우리 아빠는 운전을 할 줄 몰랐다. 그나마도 엄마가 오십이 다되어, 그러니까 내가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면허를 취득해 구입한 소형 마티즈가 우리 집의 첫 차였다.
"직진! 쭉쭉 가라고!"
아빠는 운전도 못하면서 늘 엄마에게 빨리 가라고 타박이었다. 엄마는 입을 삐쭉 내밀며 그 성미를 다 맞춰주었다. 어렸을 적 내 기억 속의 아빠는 늘 불같이 화를 내던 사람이었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무서워했다. 아빠는 자주 밥상을 엎었고 엄마는 엎드려 그것을 치웠다.
그렇지만 아빠가 밉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고 애정 어린 눈으로, 그 착한 눈으로 언니와 나를 바라보곤 했다. 그런데, 난 그게 정말 싫었을 뿐이다. 아랫집에 사는 내 친구의 아빠같이 양복을 입고 운전을 하고 차가운 얼굴로 출근을 하는. 그런 아빠가 부러웠으니.
서른 무렵까지의 나는 아빠의 그런 성미를 다 맞췄다. 마치 예전의 엄마처럼. 아빠가 전화를 해 용돈을 달라 하면 부쳐주고 아빠의 겨울 외투를 고르고 다정한 말을 했다. 그런데 마흔이 넘은 나는 변해버렸다. 우리 집 찬장 속에 있던 오래된 인삼주처럼 마음이 어둡게, 짙어져 버렸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내게 더 이상 아빠가 아니었다. 대체 공휴일도 쉬지 못하고 출근하는 내가 불쌍하고 고등학생 딸을 기다리며 밤 11시에 저녁 밥상을 차려야 하는 내가 가엾고 오늘 아침에도 만원 버스에 시달려야 하는 내 다리가 애처롭다.
아빠의 외롭단 말을 애써지우며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착한 딸이 아니어서, 불효를 해서 나중에 지옥에 갈 수도 있겠다고. 하지만 그 마음도 또 애써 지워버렸다. 내겐 더 아빠를 견뎌낼 힘이 남아 있지 않으니.
마흔의 마음은 그렇게 나를 생각한다. 나만 생각한다. 뭐 나쁘지 않았다. 난 많이 큰 것이다. 정말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아빠도 어른이니 우린 이제 좀 떨어져도 될 것 같단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