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팥 Oct 08. 2021

마흔의 여자, 때론 여자가 제일 싫다.

"나 공황 장애 약 먹은 지 오래됐거든. 난 세상에서 여자가 제일 싫어."


직장 건물 청소를 하시는 여사의 고백은 좀 충격이었다. 가끔 복도에 앉아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하며 건물 청소의 애로를 들어오긴 했지만, 그로 인해 공황 장애까지 새겼다니. 얼마나 힘드셨던 걸까 가늠할 수 없었다.

전해 들은 여자 화장실 청소 스토리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변기 위에 신발 신고 올라가 볼일을 본 뒤 또 발로 변기 레버를 눌러 온 변기에 신발 흙을 다 묻히고 나오는 여자, 자기 집의 쓰레기를 다 싸서 화장실 휴지통에 버리는 여자, 생리대를 벽에다 붙여놓고 나오는 여자 등. 더러워서 차마 적지도 못할 일들이었다.


그녀의 힘듦은 뿐만이 아니었다. 여기 치워라 저기를 치워라, 건물에 입주한 입주민 중 청소에 관한 요구 사항이 가장 많은 것이 여자들이라고 했다. 복도 구석에 앉아 좀 쉬려는 참이면 관리실로 전화를 해 '건물 이미지 떨어지게 아무 데나 앉지 마라'며 불만을 표했고 잠시 물을 마시러 들어갔던 입주 병원의 여자 원장은 '다음부터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했단다.


그 말을 전해 듣는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가 같은 여자인 것이 창피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여자'란 단어와 사람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여자란, 여자란 대체 뭘까.


좀 생뚱맞은 말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여자는 위대하다. 이 사회의 모든 인간은 여자를 통해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기에 여자는 욕심이 좀 많다. 아이를 낳고 키워야 하는 모든 과정을 온전히 자신의 몸으로 지켜내야 하고, 또 한 인간을 키워내야 하기에 그렇다. 여자로 엄마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는 구구절절 쓰지 않아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 않은가.

한때는 어린 소녀였을 우리 여자들이 험한 그 모든 일을 헤쳐나가며 습득한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은근한 이기주의'일 것이다. 내 자식을 위한, 내 몸을 위한 이기주의. 그래서 대중교통에서의, 공공장소에서의 아줌마들이 그렇게도 무서운 것이다. 겪어 봤으니까, 자식도 키워 봤으니까 '이렇게 하는 것이 나와 내 자식에게 좋더라'를 알아서다.


내가 동네에서 너무 싫어하던 한 아줌마가 있었다. 멋지게 차려입고 빨강 립스틱을 바른 그 입으로 자기보다 못 사는 동네 사람들을 무시하는 말을 쏟아내곤 했다. 늘 자기 자식만이 최고라고 외치던 여자. 그 여자의 딸은 내 친구기도 했지만 난 늘 그 아줌마가 싫었다.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 저렇게 말하지 않아야지 늘 다짐을 했다. 내 앞에서 자기 엄마가 너무 좋은 엄마라고 말하는 그 아이의 말이 끔찍하게 싫었다. 아닌데, 너네 엄마 최악의 인간이야.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마흔이 넘어보니 나도 여자인데 가끔은 그런 여자들이 싫다. 살아 봤으니 겪어 봤으니 더 알아야 할 텐데. 함께 하는 우리가 더 아름답고, 타인을 배려할 때 더 멋진 여자가 된다는 것을. 남의 자식도 내 아이처럼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할 텐데 너무 안타깝다.

 

하루는 지하철에서 술 취해 우는 청년을 일으켜 세운 뒤 등을 쓸어내리며 다독이는 한 아주머니를 본 적이 있다. 마치 자신의 아들을 돌보듯 다 큰 청년에게 다정히 다가가 먼저 손을 내밀었던 분. 그분이 먼저 손을 내밀자 주변의 다른 아주머니들이 함께 도와 청년을 일으키고 말을 걸어주었다.


"집이 어느 역이야? 여기서 이럼 큰일 나. 집에 가야지."


역시 엄마는 위대하여 다행히 청년은 다치지 않고 무사히 열차에서 내려 걸어갔다. 청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그 여인들의 따스하고 온화했던 눈빛을 기억한다. 그날 난 내가 여자인 것이 자랑스러웠고 그녀들과 같은 엄마여서 기뻤다.


늘 다짐한다. 내가 싫어하는 그 여자들처럼 늙지 말아야지. 난 다른 여자가 될 거야. 말도, 행동도 아름다운 그런 여자가! 하고.


사진/ 영화 '마더'


이전 06화 마흔, 나쁜 딸로 살기로 결심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