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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 Oct 18. 2021

마흔, 55에서의 해방

늘 나를 괴롭히던 숫자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55. 거의 모든 여성복의 기준이 55 아니면 66이기도 하고. 163이라는 평범한 키의 여자가 대한민국 표준에 들어가기 위해 지켜야 하는 숫자 기도 했다.


그러나 마흔이 넘어 그 55라는 숫자를 지키는 데는 매우 한계가 있었다. 출산을 했던 탓일까. 두둑이 붙은 뱃살을 55 사이즈의 바지에 구겨 넣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


어린 시절, 우리 삼 남매가 남긴 밥을 다 모아 남은 반찬을 싹싹 비벼 드시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 것은, 큰 아이의 본격적인 이유식이 시작됐을 무렵이었다.


한 시간을 꼬박 걸려 재료를 다지고 쌀을 불려 만든 되직하고 간이 안된 죽을 아이가 반쯤 남기고 고개를 돌렸을 때, 내 성과 재료에 들인 돈이 너무 아까워 나는 자연스럽게 아이의 이유식 그릇을 핥고 있었다.

어릴 땐 그럼 엄마의 모습이 짜증스럽고 궁색해 보였는데. 왜 난 시간이 흘러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 피식 웃음이 나다가도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도 정말 엄마가 된 것 같았고 우리 엄마를 조금은 이해를 할 수 있어서였겠지.


그렇게 가족이 남긴 밥을 모두 해치우다 보니 어느덧 내 뱃살은 두둑해졌다. 이상하게 나이가 들면서는 살이 빠지면 볼품없이 얼굴살만 빠지고 뱃살은 빠지지도 않는다.


그래도 55 사이즈는 포기하기가 힘들었다. 억지로 55 사이즈의 옷을 사서 입지도 못하고 옷장에 넣어 모셔놓기도 했고, 불편함을 감수하고 55 사이즈의 옷을 입기도 했다.


하지만 마흔이 넘자 내가 왜 그렇게 55 사이즈에 집착했나 싶은 자조가 밀려왔다. 누가 본다고, 누가 인정해 준다고. 약해진 소화기능과 구겨진 뱃살이 그렇게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야, 우리 이제 좀 편하게 살자!라고.


어쩌면 또래의 여자들보다 난 좀 늦게 55에서 해방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도 괜찮았다. 나도 삼십 대까지는 55도 입었던 여자야! 나 자신에게 나도 허세 좀 부릴 수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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