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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 Oct 19. 2021

마흔, 갱년기를 대비하다

매일 저녁 아홉 시 무렵, 약통에 미리 배분해 둔 약을 한 움큼씩 입에 털어 넣는다. 이렇게 약을 먹기 시작한 지는 한 이년 정도 됐다.

물론, 나도 삽 십 대 후반까지는 약을 챙겨 먹지 않았다. 어디에 뭐가 좋다더라 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사서 먹어보려 결심을 하다가도 어느 순간 약통이 찬장 저 안에 처박히기 일쑤였다.


그러나 마흔이 넘을 무렵, 하나둘씩 찾아오는 질병에 맞춰 약을 구비하다 보니 지금 먹고 있는 약의 종류는 서너 가지가 넘는다. 보통의 체형이지만 어릴 때부터 고기를 좋아했던 식습관 때문인지 고지혈증 약을 먹기 시작했고 앞으로 치매에 걸리면 안 되니까 오메가 3도 먹어주고, 머리카락이 점점 얇아지고 숱도 없어져 비오틴도 먹는다. 거기에 종합비타민과 유산균까지 더하면 목구멍이 터지도록 약을 삼켜야 한다.


친구 중에는 뭐 벌써부터 약을 그렇게 먹냐며 아직까진 건강에 자신감을 보이는 애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원래부건강할 때 내 몸은 미리 챙기자 하는 주의다. 어릴 적부터 갖고 있던 척추 측만증 때문에 30대 후반부턴 수영도 열심히 했으며 요즘은 코로나 거리두기로 인해 수영장이 문을 닫은 탓에 필라테스를 하는 중이다.

적고 나니 내가 무슨 건강 염려증이라도 걸린 사람 같아 보일까 봐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어찌 보면 이런 나의 건강에 대한 애착은 갱년기 증상을 심하게 겪은 친정엄마의 영향이 크다.

고등학교 시절 밤에 자가다 '쿵쿵'하는 소리에 놀라 잠을 깨 보면, 엄마는 벽에다가 머리를 박으며 진저리를 치곤 했다.


"머리가 너무 아파. 병원에선 아무 이상이 없다는데도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파."


CT, MRI를 다 찍어도 나오지 않던 엄마의 두통 원인은 바로 갱년기 장애였다. 힘들게 삼 형제를 키워낸 엄마의 종착지는 너무나 끔찍했다. 갱년기 장애는 근 3년이나 지속됐고 결국 동네 아줌마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며 그 증상은 자연스럽게 마무리가 됐다. 동남아, 중국, 일본. 엄마의 갱년기는 그렇게 해외여행으로 치유가 됐다.


시기를 겪은 엄마도 힘들었겠지만, 늘 집에 가면 머리를 박고 있는 엄마를 봐야 하는 나의 사춘기도 힘들었다. 짜증이 가득한 엄마의 미간, 힘이 없는 눈빛은 사춘기 여고생이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엄마는 사는 것이 바빠 운동이나 자기 관리를 하지 못했던 것이 난 내내 기억에 남는다. 그래도 엄마보다 나은 시대를 사는 나는 운동이니 약이니 접할 수 있는 것이 많아 다행이다.


지금 내가 이렇게 건강을 염려하며 아프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도 어찌 보면 우리 아이들을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딸만큼은 예전에 내가 느꼈던 그 우울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하니까.

사람이 살면서 어떻게 될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고 하지만, 일단 사는 동안만큼은 건강하게 살고 싶다. 그래야 나도, 우리 가족도 행복할 테니. 그것이 내가 마흔에 시작한 갱년기를 대비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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