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최근 마음에 상처를 아주 깊이 받는 일이 생겼다. 회사에서 몇 년간 아끼고 잘해주던 후배가 퇴사하며 이런저런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워낙 아이 같고 욕심이 많은 후배라 동생처럼 예뻐하고 더 챙겼던 탓에 지인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마음을 주는 것도 두렵다고 했다. 그래서 신입 직원에게 더 거리를 두고 경계하는 마음도 생겨버렸단다.
그가 평소 '정'이 많은 사람이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사람은 짧게는 석 달 정도에서 반년 이상 만난 사람에겐 '정'이란 게 생긴다. 매일 보는 얼굴을 마음속에 각인시키고 그 사람의 취향과 성격을 기억하고 또 내 마음을 조금씩 나눠주다 보면 알아서 생겨버리는 것. 그게 바로 '정'이다.
그렇게 관계 맺기를 한번 하고 나면 웬만해선 내 마음 밖으로 정을 내치기가 쉽지 않다. 마음이 약하고 여린 사람일수록 마음 정리는 더 어렵고 힘들다. 한번 생긴 상처는 쉽게 아물지를 못한다.버리지 못하는 관계는 강박과도 같은 생각을 만들어 낸다.
잘해주지 말걸.
그 사람 하곤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지?
지인과 통화를 할 때마다 반복되는 이야기를 하는 지인에게서 세 가지의 물음만이 맴돌았다. 그녀에겐 아직 시간이 필요한 듯 보였다. 그녀의 모습에서 예전의, 아니 어쩌면 지금도 갖고 있을 내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 나 또한 제대로 매듭짓지 못한 관계를 놓지 못하고 같은 생각만을 종종 반복하니까.
늘 타인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다고 착각하며 했던 나의 호구 짓은 끝이 좋지가 않았다. 결국은 상대방이 나와 같지 않음을 느끼고선 내가 먼지처럼 작아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마음 정리가 되고 나면 좀 늦더라도 그 일에 대한 객관적인 정리가 되는데, 여기서 내가 한 가지 얻은 교훈이 있다.
상대방은 나의 호의를 먼저 원하지 않았다는 것.
결국 내가 좋아서 내가 잘해주고 그 마음이 나와 같은 크기로 돌아오지 못하자 상처 받았다는 거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가 좋아질 때 꼭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이 감정은 나 혼자만의 착각일 수 있고 영원하지도 않을 거라고.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 마음 또한 괜찮아질 것이라고. 그러면 그 부풀었던 마음이 조금은 진정이 된다.
하지만, 참 사람은 생긴 대로 사는 거라서 정이 많은 이 성격은 쉽게 바뀌지를 않는다. 어쩌면 내가 만든 상처는 스스로 만든 구덩이일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정이라는 삽질을 한 구덩이.
정이 많은 자들이여, 비록 그 구덩이에 풍덩 빠져 허우적거릴 날이 올지라도 좌절하지 말자. 어차피 이렇게 생겨 먹은 거, 또 삽질할 거잖아, 정 주는 거 그만 두지 못할 거잖아! 그러니, 내가 그저 착하고 괜찮은 사람이라 누군가를 좋아하고 품어주었고 그 마음을 튕겨낸 상대방의 마음이 딱 거기까지였던 것뿐이라고 위로하며 자책일랑 하지 말고 그저 내가 날 푹, 안아주면 좋겠다.
'난 정이 많은 사람이고 또 상처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난 참 괜찮은 사람이야!'라고그 정이 많은 마음으로 나를 먼저, 그리고 항상 다독여 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