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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 Nov 29. 2021

그럴 거면 김장하지 말지

마음을 안아주는 생각들

"엄마 이번에 김장하지 말라고 해. 내 말은 도통 듣질 않아. 네가 좀 말해 봐."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하지만, 난 언니가 보낸 문장을 다 읽기도 전에 이미 내가 보낼 답을 알고 있었다.


"소용없어."


엄마에게 있어서 김장은 일 년에 한 번 치르는 성스러운 의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내 새끼들 일 년 먹일 김치를 정성스레 담아낸다는 것에 그 첫 번째 의미가 있다. 친구 엄마 중에는 김장을 하지 않는 엄마도 있다는 얘길 오래전에 꺼냈을 때 엄마는 말했다.


"그게 엄마냐?"


엄마에게 김장은 곧 엄마 노릇을 잘하는 것이란 등식이 성립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갖춰야 할 미덕 중 하나로. 그렇게 김장과 엄마는 떼어내야 떼낼 수 없는 것이겠지.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엄마에게 있어 김장이 갖는 두 번째 의미를. 그건 바로 자신의 자존심이었다. 자신이 평생 가지고 있었던 몇 가지의 엄마라는 자존심. 내 새끼들 밥은 꼭 새 밥을 해 먹어야 하고 남의 손에 절대 맡기지 않으며 살림은 반들반들 윤이 나도록 쓸고 닦는다는 엄마의 철칙에서 김장이 빠져서는 절대로 안될 일이었다.


그런 엄마 밑에서 자라 그런지, 나는 늘 내 아이들이 먹을 것을 내 손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곤 했다. 유기농 밀가루로 빵을 구워 먹이고 모락모락 김이 나는 따끈한 밥을 아이들이 후후 불어가며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이 행복했다. 한데, 그럼 뭐하나. 아이들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편의점에 가 불닭볶음면을 사 먹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커가면서 나는 내가 불필요하게 들이는 '공'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엄마의 손이 가지 않으면 안 될 일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내가 피곤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며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지 않는 것이 서로의 관계를 위해 더 옳은 일이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하지만, 엄마의 고집은 70이 넘어서도 쉽게 꺾이지가 않는다. 김장을 마치고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너희 집에 가져갈 김치 네 통과 깍두기, 총각김치도 담아놓았다는 자부심 어린 목소리 끝에 극도의 피로감이 전해졌다. 입 안이 다 헐고 허리가 쑤셔 옴짝달싹 못하겠다는 엄마의 끙끙거림과 함께.


"엄마 너무 고마워. 정말 맛있겠다!"


엄마가 바랄 것 같은 대답을 늘어놓으면서도 마음속으로 짜증이 밀려왔다. 이렇게 아플 거면서, 힘들 거면서 왜 김장을 굳이 하는 거냐고 그냥 먹고 싶으면 내가 좀 담아 먹어도 되고 요즘은 사 먹는 것도 맛있다고 제발 엄마 몸 좀 아끼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마치 커다란 알약을 삼키듯, 그 말은 꿀꺽 삼켜버리고 말았다. 내 말이 가져올 이휘 파장이 더 무서웠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로, 내가 가진 사랑의 무게가 너무 무겁고 큰 것을 상대에게 보여줘선 안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게 다가온 엄마의 사랑은 때로 너무나 버겁다. 난 이제 엄마가 조금 덜 아프고 덜 힘들었으면 좋겠다. 그리 오래 남지 않은 엄마의 인생에서 우리 삼 남매를 조금은 떼어놓고 엄마 스스로의 삶을 지키는 인생을 살길 바란다. 어쩌면 사랑이란 무게의 부담을 덜고 싶은 나의 조금은 비겁한 마음이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가 아프고 또 내가 아픈 것보단, 서로가 가진 사랑의 무게를 가볍게 하고 밝은 얼굴로 서로를 마주하는 모녀관계를 꿈꾼다. 내년엔 엄마의 김장을 좀 더 적극적으로 말려볼 생각이다. 쉽진 않을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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